-김희윤 '해피엔딩'
오픈까지는 아직 세 시간이 남았다. 관리실에선 진한 믹스커피 냄새가 풍겼다. 김이 풍성하게 오르는 커피잔을 쳐다보는 훈석에게 경비는 전시실 열쇠를 건네며 쑥스럽게 웃었다.
“아침 커피는 세봉지입니다. 그래야 먹은 것 같고 정신도 듭니다.”
경비는 열쇠와 함께 새 믹스커피를 몇 개를 내밀었다. 훈석은 얼결에 열쇠와 커피믹스를 받아쥐었다.
“세 봉지는 좀 많은데요. 조금 줄여보세요.”
훈석은 웃으며 경비를 바라보았다. 웃는 그의 얼굴엔 굵은 주름이 표정 그대로 패였다. 당뇨가 있던 아버지에게 믹스커피는 금단의 사과 같았다. 두 봉지씩 진하게 타서 하루 세 번을 마셨다. 나중엔 자신의 당뇨를 잊고 자신이 좋아하던 믹스커피도 지워져 낯선 물건이 되었다. 손에 쥔 커피 스틱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전시실로 올라왔다. 늦은 밤까지 사진을 걸던 공간이 몇 시간 사이 훈기를 지우고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조명을 켜자 벽에 걸린 사진들이 일시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감색 니트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아버지가 나무 아래서 어색하게 웃고 있다. 시선은 렌즈보다 위로, 그에게만 보이는 먼 곳을 향해 있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은 흐릿했다. 그리고 그 옆에 걸린 사진, 아버지는 카페에 앉아 컵을 쥐고 웃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웃음의 비밀을 그는 안다.
그의 컵 속에 든 건 노란 봉지의 믹스커피였다. 문득 경비에게 받은 믹스커피가 생각났다. 종이컵에 부었다. 아버지처럼 두 개, 물은 조금. 진한 단맛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믹스커피를 잊은 아버지에게 달콤한 커피는 아들, 그러니까 산책을 강요하는 먼 친척사내가 왔을 때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감로수였다. 카메라 조감독인 훈석의 사진들을 보고 전시를 제안한 프로덕션의 오 대표는 이 사진이 마음을 흔들었다고 했다. 사진만을 위한 공간에서 조명을 받은 아버지의 한 계절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남은 커피를 마시며 전시실을 둘러보던 그는 모퉁이에 걸린 사진 앞에 섰다. 야산 입구 온갖 잡동사니가 버려진 공터, 쭈그려 앉은 그는 소중한 듯 무언가를 닦아 쥐고 행복하게 웃고 있다. 피노키오. 그가 들고 있는 건 낡은 동화책이다. 조명보다 환한 그의 웃음이 사진 밖으로 계속 흘러 넘치는 것 같았다. 훈석은 부서지려는 마음을 부여잡았다.
*
그는 두려운 얼굴로 훈석을 바라보았다. 훈석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두 손에 든 물건을 내보이는 일 뿐이었다. 카메라와 노란 믹스커피.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의 손에 든 물건을 만져보곤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그를 요양원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아들을 낯설어하던 아버지는 2년 전 치매 판정을 받았다. 정신이 없을 땐 낮선 곳이라 할 말이 없고, 기억이 돌아오는 순간엔 자신이 부끄러워 말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순간에나 타인일 아들을 두고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요양원에 오던날, 그는 조용히, 미동도 없이 아들이 든 가방을 따라 차를 타고 내렸고, 하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신이 있는 5층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간호사들도 고개를 흔들었다. 훈석이 병원을 찾았을 때도 그는 병실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단념한 훈석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무심히, 스마트폰으로 편집할 영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는 평소와 다른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보실래요? 자, 이렇게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작은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했다. 영상이 끝나자 훈석은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켜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사진도 찍고... 움직이는 영상도 찍을 수 있죠.”
눈을 빛낸 그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훈석과 병실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훈석은 카메라로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병실의 꽃을 찍어 보여주었다.
“자, 이렇게요. 어때요? 신기하죠?”
그렇게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병실 밖으로 나왔다. 훈석은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들고 병원을 찾았다. 아버지는 좋은 냄새와 음악이 흐르는 카페를 좋아했는데 원두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는 믹스커피를 준비해 주인에게 부탁했다. 당뇨가 있는 아버지에게 좋지 않았지만 이렇게 가끔은 어떠랴 싶었다.
“병이 다 나으면 나는 다시 책을 팔러 가야합니다. 그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아버지는 가끔 허리를 깍듯이 굽혀 그에게 인사를 했다. 훈석은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하고 익숙한 포즈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책 외판원이던 70년대의 젊은 가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명민한 그는 잠시 병으로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으로 자신의 현재 상황을 설득하고 있었다. 아내와 아들은 잘 있다고 훈석은 그를 거듭 안심시켰는데, 그는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책에서 본 주인공에 이입하여 자신을 설득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었지만, 70년대로 돌아가 있을 때 그의 모습은 무척 슬퍼보였다.
초가을에 접어든 그날도 아버지와 함께 요양원 뒷산을 걸었다. 주로 그가 아버지를 찍고 가끔 아버지가 카메라를 조심스럽게 들어 훈석과 풍경을 담기도 했다. 아버지는 꽃과 나무, 바위, 그리고 여자들의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다. 산책 나온 아주머니들을 찍기도 했는데, 점잖은 아버지의 모습과 장비를 갖추고 양해를 구하는 훈석 덕택에 그들은 기꺼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젊은 학생들은 기꺼이 사진을 찍고 자신의 카메라로 아버지를 찍기도 했다. 훈석은 카메라에 대해 사람들이 호의적이라고 느꼈다. 몰래 촬영하거나, 찍지 말아야 할 것을 담지 않는다면 자신을 표현하며 소통하는 일에 사람들은 꽤 긍정적이었다.
“부탁하나 해도 될까요?”
아버지의 느닷없는 제안에 훈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나중에, 우리 애엄마랑 아들이랑 찍어줄 수 있을까요? 내가 찍고 싶은데 그쪽이 찍은 게 더 멋있어서... 부탁 좀 합시다.”
아들을 본지 한참 되었다는 그는 공부를 안해서 걱정이라는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먼 산을 바라보다가 그는 천천히 훈석을 바라보았다.
“가난해서, 내가 책을 팔면서 책도 잘 못 사줬어요. 잘못되면 내 책임이지. 그쪽처럼만 훌륭하게, 좋은 사람으로 자라면 바랄 것이 없겠어요.”
훈석은 가만히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 노을이 지는 야산을 향해 셔터를 누르고 벤치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아버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훈석은 거리를 두고 뒤를 따르며 길게 그림자 진 그의 뒷모습을 담았다. 환자의 옆에 남은 이는 환자와 함께 하는 순간 그림자처럼 살게 된다. 그를 비추는 그 시간 햇살의 각도와 모양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처럼, 나의 모습도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나란히 걸어갔다. 야산과 평지의 경계 즈음엔 동네 사람들이 폐기물을 버리는 공터가 있었다. 해가 천천히 내려가며 유난히 붉은 노을을 만들던 날이었다. 무언가를 발견 한 그는 문득 공터 한가운데로 들어가 노끈으로 묶은 책더미를 끄집어 냈다. 힘들여 매듭을 끌러내고 맨 위에 있던 책을 소중히 닦기 시작했다. 훈석은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거 우리 아들 줘야겠습니다. 좋은 출판사 책이에요.”
거의 들춰보지 않은 새 책처럼 보이는 빳빳한 표지를 그는 여러번 소매로 닦고 손바닥으로 어루 만졌다. ‘피노키오’ 코가 뭉툭한 나무인형이 제페토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는 표지를 그는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훈석은 눈물이 흐르려는 걸 감추기 위해 얼른 카메라를 들었다. 붉은 저녁노을이 아버지와 피노키오를 둘러싸고 아름답게 흘렀다. 모드를 바꿔 원테이크로 그의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책을 손에 쥔 그가 훈석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노을이 점멸할 때까지 그의 밝은 미소는 계속 되었다.
*
‘Happy, Anding'
전시회장에서 상영된 영상의 마지막에 제목 자막이 올라가자 누군가는 짧은 탄식소리를 냈다. 마지막 산책을 다녀오고 삼주 후,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투병 없이 간밤의 평온한 마지막이었을 거라고 의사는 훈석을 위로 했다. 심근 경색으로 사망할 때 엄청난 고통이 몇 분간 지속된다고 했다. 그 고통의 시간동안 아버지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그냥 순수한 통증 외에 힘든 기억은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훈석은 생각했다.
오픈 행사로 떠들썩한 전시회장을 나와 훈석은 담배를 꺼내들었다. 피노키오. 그는 스마트폰을 들어 피노키오의 결말을 검색했다. ‘모든 일을 반성하고 인간이 된 피노키오가 목수인 제페토와 행복하게 산다’고 나와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어린 훈석에게 주고 간 책을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담배를 끈 그는 기억과 대화의 흔적이 가득한 전시실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김희윤
당신을 피사체로 잡아두고 가는 길
모퉁이에서
당신의 고독이 점멸한다
오늘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기에
원테이크로 당신을 기억해 본다
할 수 있는 건 고작
클로즈업 된 탄식을 쏟아내는 일
여전히
당신은 앵글에 잡히지 않는다
당신의 스크린을 거닐며
주변을 배회해 본다
끊임없이 돌고 돈다
우리의 황금률을 찾기 위해
그리고
이어지는 카메라 무빙
그러다 문득
당신과 나의 장면에서 멈추고 싶다
(큐)
둘은 마주본다
(NG는 나지 않는다)
손을 붙잡는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둘은 웃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