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처럼 사는 법

- 김소연 '반대말'

by 후시딘

슬리퍼를 끌고 탕비실에 들어선다. 손에 쥔 컵 바닥엔 다갈색 커피가 말간 얼룩을 남기며 말라붙어 있다. 컵을 씻는 일은 하루 일을 마감하는 그녀의 의식과 같다. 블라인드가 반쯤 걷힌 창문 밖으론 푸른색 실선 사이로 다홍빛 노을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다.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마 퇴근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개수대에 컵을 놓고 물을 튼다. 차가운 물은 천천히 미지근해진다. 컵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 불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마른 얼룩을 보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커피를 보충할 틈도 없이 회의가 길어졌다. 같은 말의 반복, 그러니까 실적이, 그러니까 거래처가, 그러니까, 그러니까.. 부장은 누군가의 발언에 쉼 없이 토를 달았다. 가장 듣기 싫은, 반대말도 없는 접속사,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싫어진 부사어.


초록색 세이렌이 그려진 하얀 머그컵엔 이내 연한 갈색 액체가 차오른다.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컵의 동그란 입구에 수세미를 넣고 꼼꼼히 닦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프렌차이즈 카페의 로고가 박힌 컵이다. 컵. 이 명료한 단어가 좋아 그녀는 뜬금없는 미소를 짓는다. 컵, 역시 반대말이 없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지만 그 무엇에도 반대하지 않는 단정한 단어다.


하루 일과를 떠올려 본다. 지하철, 버스. 반대말은 없다. 그저 자신의 상태로 존재하는 단어들. 다만 나를 태우고 이동할 뿐이다. 발이 되어주는 단어. 엄마, 멀리서 훔쳐보는 하얀 와이셔츠의 김대리, 보송하게 말린 캐시미어 터틀넥 니트, 선명한 붉은 빛의 립스틱, 연어아보카도 샌드위치, 이 모두에 반대말은 없다. 그녀의 존재를 선명하게 해주는 단어들.


여자가 칠칠치 못하게, 라고 ‘남자’인 김과장은 그녀의 옷에 손톱만큼 스친 아이보리색 샌드위치 소스를 보며 온 얼굴을 구겼다. 여자, 칠칠치 못한. ‘남자’인 그가 ‘칠칠하게’ 흘려대는 가래 끓는 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반대말을 내뱉어 주고 픈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다. 다만, 재무팀 회사원이라는 먹고사는 일 앞에, 그 모든 반대말은 무용해 질 따름이었다.


출근의 반대말 퇴근. 어두워진 창밖을 보며 그녀는 반대말 없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으로 가야 하리라. 말끔해진 컵을 들어 막 선반에 올릴 때였다. 탕비실에 들어온 오대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김이사님이 재무재표 다시 정리해서 달라 십니다. 숫자가 틀어졌나 봅니다.’ 살짝 깨문 입술의 힘이 손 끝에 실렸다. 초록 세이렌의 테두리가 엄지손가락을 벗어나며 컵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산산조각난 하얀 도자기, 그 사이로 보이는 초록 세이렌의 살점들.


물기가 마르도록 엎어둘 틈도 없이 컵은 깨진다. 출근의 반대말은 야근인가. 깨진 컵을 치우기 위해 바닥에 쪼그려 앉은 그녀의 어깨는 깨어진 컵의 파편처럼 날카롭지 않다. 반대말 없는 회사원의 감정과 의지는 그저 무용하다. 반대말 없는 컵은 깨지고 하루의 완료엔 금이 간다.








반대말



김소연



컵처럼 사는 법에 골몰한다

컵에게는 반대말이 없다 설거지를 하고서

잠시 엎어 놓을 뿐

모자의 반대말은 알 필요가 없다

모자를 쓰고 외출을 할 뿐이다

모자를 쓰고 집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게 가끔 궁금해지긴 하겠지만


눈동자 손길 입술, 너를 표현하는 너의 것에도 반대말은 없다

마침내 끝끝내 비로소, 이다지 애처로운 부사들에게도 반대말은 없다


나를 어른이라고 부를 때

나를 여자라고 부를 때

반대말이 시소처럼 한쪽에서 솟구치려는 걸

지그시 눌러주어야만 한다


나를 시인이라고 부를 때에

나의 반대말들은 무용해진다


도시에서

변두리의 반대쪽을 알아채기 시작했을 때

지구에서 변두리가 어딘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뱅글뱅글 지구의를 돌리며

이제 컵처럼 사는 법이

거의 완성되어간다


우편함이 반대말을 떨어뜨린다

나는 컵을 떨어뜨린다

완성의 반대말이 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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