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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시딘 Feb 07. 2020

티파니 웨딩링

그녀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결혼과 동시에 혼자 먹게 된 아침식사 의식이다. 햇살이 은은하게 비쳐들도록 레이스 커튼을 달았다. 빵과 치즈, 커피와 함께 엠보 처리된 민트색의 가죽 케이스가 놓인다. 우아하고 고고한 다이아몬드가 그녀를 바라본다. 간소한 식사에 사치스러운 방점을 찍는 기특한 그것은 바로 ‘티파니 웨딩링’이다.


'평온'과 '평범', 그녀가 살아온 27년을 말해주는 단어이다. 회사원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는 여유있고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경제적 어려움 없는 중산층 가정에서 무난한 성격의 아이로 자랐다. 특별한 재능이나 열정은 없었지만 욕심이나 우울감이 있는 아이도 아니었다. 다만 성실한 부모를 닮아 학교 공부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해 냈으므로 성적은 어느정도 상위권을 유지했다. 무엇이 되겠다거나 갖고 싶다는 욕심을 부린 적도 없었다. 늘 웃었고 성격좋은 아이로 통했다. 적당히, 무난하게. 그녀는 자신의 일상이 대체로 만족스러웠고 평온하고 조용한 일상이 익숙했다. 그렇다, 호불호가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무난한 상황이 '익숙했을'뿐이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녀를 좋아했던 대학동기가 제대했고, 역시 무난하고 사람 좋은 그와 연인이 되었다. 먼저 졸업한 그녀는 동네 보습학원에서 일주일에 세 번, 국문과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국어와 논술, 작문을 가르쳤다. 원장은 학생들과 학부형들과 무난히, 문제없이 지내며 적절한 스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녀를 만족스러워했다. 졸업과 동시에 준비했던 공기업에 취업한 남자친구가 프로포즈 했다. 그때 그가 끼워준 것이 바로 티파니 웨딩링이었다.

“너를 위해 준비했지. 다들 이 정도는 해야 할 거라고 해서.”


참 멋없는 멘트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그의 성격 탓이고, 어쨌든 마음은 진심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수없이 돌려보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기억하고 선물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그녀는 기뻤다. 명품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심플하고 멋진 반지는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민트색 케이스도 사랑스러웠다.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생각한 것 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쑥스럽게 팔을 내미는 그의 품에 기꺼이 꼭 안겼다.


결혼 생활은 무난하고 평화로웠다. 이른 새벽에 운동을 하는 남편은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일어나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일주일에 세 번, 정오에 출근하는 그녀는 햇살이 얼굴에 비쳐들 때 일어났다. 평온한 일상의 가장 큰 방점이 바로 늦은 아침 식사였다. 그리고 그 아침은 ‘티파니’와 함께 했다. 결혼 후 반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반지를 끼고 외출한 적이 없었다. 반짝이는 웨딩링의 아름다움을 오전 햇살아래, 그저 혼자 즐기는 것이 좋았다. 살면서 물건에 대한 애착을 가져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반지가 그녀의 부족한 어떤 것을 채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드리 헵번의 날렵한 등라인을 닮은 심플한 웨딩링의 곡선을 보며 존재 자체로도 가진 사람을 만족시키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좋아? 다음 기념일 때 세트로 목걸이 사줄까?”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주말, 반지를 들여다보는 그녀를 남편은 신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니야. 소중한 건 하나면 충분해.”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반지를 어루만졌다.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입을 쭉 내밀고 반지케이스를 화장대 서랍에 소중히 넣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바꿀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유난히 햇살이 좋은 겨울 아침이었다.

남향 아파트 깊숙이 들어온 오전 햇살이 잘 세팅된 다이아 반지를 더욱 영롱히 비췄던, 그런 날이었다. 진한 커피를 마신 그녀는 더욱 찬란히 반지를 감싼 빛에 이끌려, 감상만 했던 반지를 손에 끼워 보았다. 조금 컸지만, 살짝 헐렁한 반지는 손가락을 더 가늘고 여리해 보이게 만들었다. 반지 낀 손을 빛이 퍼지는 방향으로 들어보았다. 다이아에서 반사된 엷은 무지개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반지를 화장대 서랍에 넣지 않았다. 대학 동창들과의 저녁모임에 반지를 끼고 외출 한 것이다. 그렇게 한 몸이 된 다이아 반지는 그날 하루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자신이 다른 날과 달리 반지를 끼고 외출했다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말이다. 편한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취하도록 술까지 마신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씻고 남편 옆에서 잠이 들었다. 약간의 일탈이 있었으나,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의 출근기척에 일어난 그녀는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케이스는 텅 비어있고 어젯밤에 반지를 뺀 기억이 없었다. 해가 중천에 뜨고, 지상을 달구며 다시 서쪽으로 기울어질 때까지 침대 구석에 앉아 자신의 어제, 그리고 오늘을 반추했다. 슬며시 빠져나간 그 작은 물건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27년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상실'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처음 느낀 낮선 감정은 그녀의 심장을 조이게 했고, 눈물이 흐르며 급기야 흐느껴 울게 만들었다. 남편의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간신히 눈물을 닦고 부엌에 섰다. 남편, 남편에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문득 그녀는 모파상의 단편소설 '목걸이'가 생각났다. 뜬금없이 그 가짜 보석 목걸이가 왜 생각난 걸까.


“여보, 티파니 웨딩링 있잖아, 진짜 맞지?”

식탁 앞에 턱을 괴고 앉은 아내의 생뚱맞은 질문에 그는 피식대고 웃었다. 멸치볶음을 집어들며 그는 귀엽다는 표정으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계속 보니 가짜같아? 자기한테 내가 가짜를 선물하겠어?”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편이 좋아하는 소세지 부침을 접시에 더 올렸다. 휘파람까지 신나하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상실감에 가슴속에 횡한 바람이 불었다.


나흘째 티파니 없는 아침을 맞은 그녀는 결심한 듯 백화점으로 향했다. 도시 안에 작은 성곽 같은 강남의 명품관은 쾌적한 온도와 습도로 그녀를 감쌌다. 좋은 냄새와 부드러운 조명, 폭신한 양모카펫이 깔린 복도 끝에 티파니 매장이 있었다. 천천히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매장안의 반짝임에 그녀는 동요했다. 가질 수 없는, 아름다운 반짝이는 것들의 향연! 모든 것들을 걸치고 쥐고 ,끼우고 걸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처음 느끼는 낯선 욕망에 현기증이 일 지경이었다. 서둘러 명품관을 나왔다. 아스팔트가 쪼개질 듯한 한겨울의 칼바람에도, 뜨겁게 풀무질된 욕망은 식지 않았다. 코트도 여미지 않은 채 두 시간 거리의 집까지 걸어 온 그녀는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일주일 넘는 시간을 온 몸에 열꽃까지 잔뜩 피워 올리며 몸살을 앓았다.


“자기야 도대체, 이게 무슨일이야.”

병원도 가지 않고 음식도 입에 넣지 않은 그녀는 일주일을 꼬박 앓고 난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엇이든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 가져야 했다. 땀으로 열기로 모든 것들을 빼낸 기분이었다. 몸엔 가져야 겠다는 욕망, 하나만이 남았다. 내 힘으로, 그 폭신한 양모 카펫을 밟고 매장을 들어가리라.


돈을 벌기 위해서 일단 하던 일을 늘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수업을 하던 그녀는 중등, 그리고 고등학생까지 수업을 확대했다. 오랜시간 지켜보고 그 근면함과 성실함을 아는 원장이 그녀를 도와주었다. 잠을 줄여 공부하고 일을 했다. 원장이 권하는 대로 논술 수업을 시작했다. 수험서를 분류하고 분석한 그녀는 국어와 논술입시의 패턴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분류와 패턴을 정리하는데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슴이 벅차는 기쁨이 느껴졌다.


밤새워 일을 하고 성취해내는 기쁨, 더 잘하고 싶어 노력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바로 '열정'의 정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후 4년간, 그녀는 자신이 알게 된 열정을 온전히 느끼며 매 순간을 뜨겁게 보냈다. 지치도록 일하고 공부했다. 학위의 필요성을 느껴 일하는 틈틈이 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치기도 했다. 대형 학원으로 스카웃된 그녀는 국어와 논술 분야의 입시 일타강사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정밀한 패턴에 자신의 노하우와 학술적 이론까지 더한 그녀의 강의는 단순한 입시수업에서 나아가, 논술의 철학과 진수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른 둘의 그녀는 이제 하나의 움직이는 소형 기업으로 학원가의 화제로 떠올랐다.


입시 시즌이 마무리된 그해 겨울, 영동대교를 건너 청담동을 지나는 길엔 퇴근길 정체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긋한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본 그녀의 눈에 티파니 매장이 있는 성처명품관이 보였다. 한때 그토록 견고해 보였던 그 성곽은 유치한 모조품같았다. 거리를 천천히 빠져나오며 건물을 오래도록 지켜본 그녀는 씁쓸히 웃었다. 그날 이후 남편과 한 번도 결혼반지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온전히 일에 집중하느라 남편과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신경도 못써주고 미안했어.”

오랜만에 그녀가 직접 요리한 파스타와 간단한 샐러드를 사이에 두고 그녀는 남편에게 맥주를 건넸다. 그는 특유의 싱거운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애도 아니고 신경은 무슨! 힘들고 바빴을 텐데, 집안일을 많이 못해놔서 내가 미안하지.”

둘은 흰 거품이 몽글하게 피어오른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잔에 흐르는 거품을 바라보던 이영은 미안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나... 사실 결혼반지 잃어버렸어. 벌써 5년 전이네. 잃어버린 것도, 말 안한것도 다 미안해.”

남편은 무심히 아몬드를 입에 던져 넣으며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고 있어. 괜찮아. 또 사면 되지.”

“뭐야, 나 배려하느라 말 안한거야? 알면서?”

감동한 듯 웃는 이영을 바라보며 남편은 뒷통수를 긁고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사실 그거 가짜거든. 엄마 단골 금방에서 맞춘거야. 알도... 큐빅이고. 근데 너무 진짜같지? 거기 참 잘하드라.”


잠시 멍한 기분으로 남편을 보던 그녀는 잔에 담긴 맥주를 한껏 들이켰다. 미안하다며 싹싹 비는 시늉을 하는 남편의 등짝을 있는 힘껏 후려치고는,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멍하니 식탁에 기대 섰다.

“인간아, 그거 불법이야... 그나저나 내가 얼마나 한심했을까.”

“아니야 늘 미안했다니까. 이야기하고 꼭 진짜로 사주려고 했어. 정말이야!”

‘진짜’로 착각한 그 열에 뜬 욕망. 실체모를 그것을 잡기 위해 달린 5년 이었다. 통장의 잔고는 이제 명품 따위는 아쉽지 않을 만큼 두둑해 졌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안다. 진짜를 갖기 위해 달린 시간들, 손에 쥔 것들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열정과 진심을 다한 그 과정만큼은 진짜일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쨌든 진짜를 갖기 위해, 기억에 남을 만큼 강렬하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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