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두시의 카페엔 애매한 자리만이 남아있었다. 오랜만에 이곳을 찾은 그는 넓지 않은 곳이었지만 신중히 자리를 잡기 위해 카페를 둘러보았다. 주인이 그에게 눈길을 주었다. 어쩔 수 없이 여러 사람이 앉을 수 밖에 없는 커다란 테이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와 플레인토스트를 주문한 그는 깊이 숨을 들이 쉬었다. 오늘분의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카페에 자리잡고 백팩의 지퍼를 여는 일, 그것은 그에게 직장인들의 출근 타이머와 같았다. 노트북을 꺼내 테이블에 올리고 세팅을 한다. 잠시 커피를 마셨다. 역시, 이 곳의 커피는 정말 맛있다. 그는 눈까지 감아가며 커피 맛을 음미했다. 시내에 나와서 카페를 오는 일은 한 달에 두 세번 정도였다. 글쓰는 일을 직업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카페 출입을 삼가게 되었다. 커피에 케익까지. 그렇게 만원 가까운 돈을 쓰는 날은 글이 써지지 않아도, 잘 써져도 깊은 자괴감에 상처받았다. 글이 잘 써져도 그렇다는 사실이 더 우울했다. ‘아, 나는 이렇게 돈을 들여야 글이라는 걸 쓸 수 있는 사람인가’ 이런 느낌으로 풀이 죽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그에게 한 달에 두어번 있는 특별한 날인 셈이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갑’이 되어 자신을 훈장질하던 그가 실체있는 ‘갑’을 마주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날인 것이다. 소설을 쓰는 그는 정기적으로 공공기관의 외주 원고를 쓴다. 그들의 요구에 맞춰 철저히 ‘주문자’에 맞춰 글을 ‘제작’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이라고는 하지만 기관명을 이야기하면 아는 이가 거의 없는 그런 곳이다. ‘중앙부처의 산하기관의 연구소의 부속기관’ 이런 느낌이랄까. 세금으로 그런 곳들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처음엔 놀랐고 심란하다가, 이제는 일을 주는 그곳이 그저 감사했다.
- 이영의 아침 의식이 시작되었다. 결혼과 동시에 혼자 먹게 된 아침식사의 의식이다. 빵과 치즈, 커피의 곁에 민트색 상자가 놓인다. 엠보싱된 민트박스를 열고 반짝이는 반지를 꺼내 낀다.
우아하고 고고한 티파니 웨딩링이다.
“야, 여기서 글 써? 오랜만이다!”
경훈이었다. 거의 삼 년만에 만난 그는 양복차림에 닌자 거북이처럼 부푼 몸을 하고 역시 터질듯한 백팩을 매고 있었다. 그와 같은 모양의 샘소나이트 스쿼드 백팩이었다. 경훈이 백팩을 의자위로 내려놓자 툭, 소리를 내며 쿠션을 누르고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진짜 오랜만이네. 너도 많이 변했다. 일하다 들른거야?”
“거래처가 요 옆건물이야. 살 많이 쪘지? 아주 미치겠다.”
경훈은 불룩해진 배를 쓰다듬고 멋쩍게 웃었다.
그와 경훈은 한때 함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대학동기였고 같은 동네에 살았고, 자연스럽게 동네 도서관에서 마주치며 둘이 같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함께 하루 두 번의 식사를 했고, 영어 단어를 외웠다.
“우리에게 스물 여덟은 없는 나이인 거지.”
허공으로 흩날리는 담배 연기를 보며 경훈은 자조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는 스물 여덟을 지나고 있던 그 해에도 자신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잃지 않는 법, 그에겐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의 글쓰는 시간은 점점 늘어갔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시작한 메모였다. 행정법, 공무원 국어 책을 밀쳐둔 채 필기 노트에 소설을 위한 메모들이 채워져 갔다. 짧은 메모는 단편이 되고, 중편 분량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연히 넣은 소설 공모전에 당선이 되었을 때 도서관의 경훈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어두운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나에겐 말을 했어야지. 약간은, 배신감이 든다.”
생크림에 초코시럽이 뿌려진 모카커피가 경훈의 앞에 놓였다. 스트레스를 받을 땐 어쩔 수 없다며 그는 높이 올려진 생크림을 단번에 흡입했다. 단 것을 좋아하는 취향은 여전했다. 도서관에서 노란 커피믹스를 세 개씩 넣어 진하게 마시던 그였다. 머리를 돌릴 땐 당분이 최고라며 한입에 털어넣던 경훈은 엄청난 믹스커피를 먹고도 시험에 붙지 못했다. 그는 그해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공모전으로 이백만원의 상금을 손에 쥔 그는 경훈에게 소주를 사며 누가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는 그들의 스물 여덟을 잔에 담아 씁쓸히 삼켰다. 경훈은 그해 바로 제약회사 영업부에 취직을 했다.
“넌 정말 글을 쓰면서 살고 있구나. 부럽다. 진짜 작가 같아.”
“작가면 작가지 진짜 작가는 또 뭐야? 진짜 작가인데 먹고 살 걱정이 태산이다.”
성글게 이어진 대화사이로 경훈은 끊임없이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끊임없이 손가락을 움직이건 경훈은 심드렁하게 그러나 진심이 느껴지는 적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을 하잖아.”
하고 싶은 것, 이것이 하고 싶던 일인가. 속으로 반문하며 그는 씁쓸히 웃었다. 스마트폰 메시지를 뚫어지게 보던 그가 심각한 얼굴로 샘소나이트 백팩의 지퍼를 열었다. 패드를 꺼내 숫자가 가득 적힌 엑셀 파일을 들여다보았다. ‘서른 둘의 나이에 잘 어울리는 모습’ 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텅빈 한글파일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그럴듯한 모습이었다. 파일을 보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푸는 친구의 모습에 그는 약간의 부러움까지 느꼈다. 황망히 식은 커피잔을 들어 입에 댔다.
“어우 골치 아파. 늘 실적 맞추며, 이러고 산다.”
경훈은 길게 한숨을 쉬며 미간을 구겼다.
“돈이 안돼도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야지. 아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경이로울 지경이야. 난 그런게 없었어. 사실 공무원도 하고 싶어서 준비한 게 아니잖아.”
지퍼가 벌어진 경훈의 가방 속엔 서류와 샘플용 제품, 회사 이름이 새겨진 판촉물 따위가 비좁게 들어차 있었다. 생각난 듯 가방을 뒤적여 그의 앞에 길죽한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작가니까 메모 많이 할거 아냐. 하나 써봐.”
“멋지다. 이런 것도 척척 줄 수 있고.”
회사 이름이 새겨진 일제 삼색펜이었다. 경훈은 뿌듯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커피잔을 들었다.
“나도 카페에서 혼자 일하고 싶다. 의사들 너무 힘들어. 돈이 다가 아닌거야. 인간처럼 살아야지.”
“인간처럼 살려면 돈이 필요한거고.”
그의 말에 경훈은 웃었다.
“임마, 넌 잘 살고 있는 거야. 취미가 직업이 되니 얼마나 좋아.”
남은 커피를 털 듯이 입에 넣은 경훈은 시계를 보았다. 밝은 조명에 멋진 시계가 번쩍이며 존재감을 뿜었다. 한눈에 봐도 비싼 제품이었다. 경훈은 느슨해진 넥타이를 정리하고 백팩의 지퍼를 닫았다. 회의 시간이 뜬 사이 거래처의 간호사가 추천한 카페에 와 본 것이라고 했다. 카운터로 간 그는 카페 라벨이 붙은 쿠키 상자를 종류별로 집어 들었다. 그중 하나를 그에게 내밀었다.
“여기 온 것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여기 와 봤는데 너무 좋다고 쿠키도 주고 그러면서 얘기 거리를 만들 수 있거든. 언제 한잔 하자.”
명함을 건넨 경훈은 카페를 나갔다. 그는 약간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화면보호용 사진이 뜨고 오른손 약지를 올려 암호가 해제되자 겨우 쓴 한 문장이 보이고, 아직 채워야 할 공간이 막막한 한글 문서,
- 이영이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는 바로 커피와 빵과 치즈를, 매일 다른 빛을 띄는 창밖 풍경을 보며 이 간소하고 기특한 아침식사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티파니와 함께!
첫문장엔 저절로 한숨이 나왔고 두 번째 문장은 너무 길다. 그는 잠시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경훈이 놓고 간 볼펜과 쿠키를 살펴보았다. 볼펜은 부드럽게 잘 써지는 좋은 제품이었고 쿠키는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오렌지색 곰이 포효하는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경훈의 명함을 집어 들었다. 경훈은 힘들고 피곤해 보였다. 누구나 일을 하는 건 힘든 것이다. 일을 해서 힘든 것, 일이 없는 순간을 견디며 고통에 빠지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힘들까.
글을 쓰기로 결심한 후 그를 통과한 지난 삼년의 시간을 떠올렸다. 출판과 글로 생활비 수준의 돈을 벌기 힘들다는 사실을 지독히도 느낀 시간이었다. 논술학원과 편의점을 오가며 일을 했다. 노동의 틈에 글을 끼워 넣었다. 잘 써지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며 꾸준히 글을 쓴다는 작가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다른 일을 하며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절실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다. 사는 건 점점 고달파졌다.
- 민트 상자속에 누워있는 티파니 반지를 꺼내들었다. 오늘 저녁엔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그래, 이럴 때 한번 바깥공기도 쐬는 거지. 그녀는 반지를 조심히 들어 약지에 끼웠다. 심플한 링이 손에 착 감겨들었다. ‘육발’위에 고고하게 놓인 다이아가 영롱하게 빛났다.
‘영롱하게’... 낮선 단어였다. 그는 쿠키 하나를 집어 입에 넣으며 자신의 생에 ‘영롱’이라는 단어를 쓸 순간이 한번이라도 찾아올지 궁금해졌다. ‘중앙부처의 산하기관의 연구소의 부속기관’에서 원고를 쓴 인연으로 다양한 원고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작가에 걸맞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했다. ‘문학’이나 그 비슷한 원고는 가뭄에 콩나듯 청탁이 들어왔다. 원고료는 무안하게 적었지만 청탁하는 이들은, 그가 무안할 정도로 원고료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자신이 작가라는 직업군에 속한 것인가, 아니면 경훈의 말처럼 그저 취미에 지나지 않는 노작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옆자리에 놓인 샘소나이트 백팩의 지퍼는 열려있고 그는 아직 근무중이었다. 작가라면, 이런 마음도 모른척하고 원고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는 자문했다. 경훈이 영업을 하듯 그는 글을 쓴다. 경훈과 그 둘다 샘소나이트 백팩을 단단히 등에 이고 자신의 일을 해낼 뿐이다. 소설은 계속 된다
- 그녀는 자신이 젊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쌓여있을 기억, 추억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별도의 기억이 필요 없을 만큼 편하게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그녀는 모든 것에서 진짜를 갖추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댓가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진짜를 갖기 위해, 기억에 남을 만큼 강렬하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