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일교차가 큰 4월이었다. 해가 머리끝에 가 닿을 만큼 쨍쨍히 떠오른 낮에는 긴 소매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대지를 달군 열기는 해가 떨어지고 나면 급격히 사라졌다. 퇴근할 때 점퍼나 자켓은 필수였다. 여름이 오려면 먼 4월이었지만 이것이 바로 환절기라고 정훈은 생각했다. 약간 맹맹해진 코를 풀며 현관을 연 정훈은 ‘아빠’를 부르며 다리에 엉긴 아이를 웃으며 떼어내고 장갑을 챙겼다.
“저녁 회사서 먹었지? 쌀쌀한데 목에 뭐 좀 두르던가.”
카레 끓는 냄새가 풍기는 현관에서 아내는 아빠를 따라나서려는 아이를 잡으며 말했다. 정훈은 현관입구에 세워둔 자전거를 끌고 현관을 나섰다. 묵직하고 검은 자전거를 이끌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을 했다. 돈을 더 주더라도 접이식의 가벼운 것을 살 걸. 그러나 언제까지 탈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이내 그 후회를 덮었다. 매일 밤 쇳덩어리를 끌고 집을 나선지 한달 째, 여전히 그에게 자전거는 걸리적거리고 무거운 짐덩어리였다.
건물 중앙에 켜진 몇 개의 조명 외에 학교 운동장은 적적한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자전거 바퀴가 바닥을 스치며 왕모래를 밟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는 고무창이 얇게 발려있는 장갑을 끼고 기압을 넣듯 박스를 쳤다. 안장을 보며 짧게 한숨을 쉰 그는 두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다리를 올려 안장에 엉덩이를 걸쳤다. 한쪽 다리로 패달을 밟으며 중심을 잡은 후 두발을 굴러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몇미터 못가 그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땅에 내딛고 그 자리에 섰다. 두 개의 바퀴로 땅을 지탱하는 일이 이렇게 힘든 것이었나.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스트레칭을 했다. 4월 밤의 찬 공기가 머리끝을 스쳤다. 쌀쌀한 밤의 틈새로 그의 긴 한숨이 퍼졌다. 내년이면 일곱 살, 아들은 친구들처럼 바퀴가 두 개 달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다. 그 어린 것이 왠지 아득한 눈을 하고 정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민규는 가족들이랑 강릉에 갔다 왔대요. 경포대에서 자전거를 탔는데... 너무 재밌었다고 자랑하잖아요. 나도 자전거 배워서 경포대 가서 타고 싶어요.”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훈은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아니, ‘못’탔다. 어린 시절 유난히 둥그랗고 둔한 몸을 가졌던 그는 그 통통한 몸을 말고 책을 보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밖으로 나가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 보다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았다. 어느날, 뽀얗게 살이 오른 그를 보며 그의 아버지는 결심한 듯 그의 손을 잡고 학교 운동장으로 나갔다. 어머니가 시장 볼 때 쓰던 낡은 자전거와 함께였다. 운동장 한 켠에 자전거를 세운 아버지는 비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자전거 안장을 탁탁 두드렸다.
“걷거나 뛰는 건 혼자 할 수 있지만 자전거는 또 배워야 탈 수 있는 거다.”
비장한 표정으로 아버지는 장바구니가 달린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고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아버지를 바라보던 그는 쭈그려 앉아 엄한 모래만 손에 쥐고 내던졌다.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자전거를 배우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과 노는 것 보다 집에 앉아 책을 보거나 공상에 빠지는 일이 더 좋았다. 책 속에는 새로운 사건들이 가득 담겨있었고, 그 이야기를 이어서 그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힘을 써서 자전거를 갖고 나와, 힘들게 운동장을 달리지 않아도 그가 만든 멋진 세상 속에서 이미 그의 날개달린 자전거는 어디든 돌아다녔다. 그는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저편에서 이미 이마에 땀을 뚝뚝 흘리며 아버지가 달려오고 있었다. 무척 힘들어보였다.
“자, 이제 타보자. 여기 올라가봐. 일단 방향만 잘 잡으면 돼. 내가 뒤에서 꼭 잡고 있을테니까.”
주저앉을 듯 숨찬 목소리의 아버지에게 집에 가자고 할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둔탁한 몸을 놀려 몇 번의 헛발질 후 안장에 간신히 몸을 얹었다. 고무챙이 발라진 손잡이를 꼭 잡았다. 페달을 돌려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분명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앞바퀴는 자꾸만 방향을 잃고 흔들렸다. 몇미터 못 가 그는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다시 해보자. 처음이니 그렇지.”
그는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다시 더 여러번의 헛발질을 하고 안장에 올라 페달을 굴렀다. 역시 못 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는 왼쪽 발을 내렸다. 그렇게 계속 그는 나가지 못하고 다리를 내렸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그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씩씩거렸다.
“사내자식이, 왜 앞으로 나가질 못하는 거야? 다칠까봐 그래? 아버지가 잡고 있다고 했잖아!”
온 힘이 다 빠져버려 너덜너덜 해진 상태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안장에 올랐다. 쥐어박은 것이 미안했는지 아버지는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외쳤다.
“자, 한바퀴만 제대로 돌아보자, 파이팅!”
자전거를 밀며 달리는 아버지의 발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는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갔다. 앞바퀴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쓰러지고 어딘가로 튕겨나가 버릴 것 같은 공포가 그를 짓눌렀지만 꾹 참았다. 공포 속에 반바퀴를 돌았다. 중심이 잡히고 이제 페달에 의지해 서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 그는 보조석을 잡고 함께 달리던 아버지가 손을 놓았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고 그는 울먹이며 눈을 감았다. 순간, 튕겨나간 자전거는 화단을 들이 받고 오른쪽으로 한껏 밀려나갔다. 그는 왼쪽다리가 체인에 말리며 발목이 꺾여나가는 통증을 느꼈다.
넘어지는 순간, 그는 혼자 저 먼 우주로, 학교와 다른 차원의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혼자 달리고 있던 그는 아마 가족들과 떨어져 알 수 없는 사차원의 공간을 헤메게 될 것이다. 지난달 소년중앙에서 본 ‘사차원의 통로는 우리 곁에’라는 글이 생각났다. 다른 차원으로 가는 입구, 눈앞에 아득해지고 깜깜해지는 이것이야 말로 통로가 열리는 그때일 것이다. 그 외롭고 무서운 차원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혼자, 아주 외롭게.
“괜찮아?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봐.”
감긴 체인을 풀기위해 꿈틀대던 그의 눈에 뒷바퀴에 낀 다리를 억지로 빼고 흙투성이 몸을 일으키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는 약속을 지켰다. 내내 그의 보조석을 잡고 운동장을 함께 달린 것이다. 그의 다리에 감긴 체인을 빼는 아버지를 보며 그제서야 그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사차원으로 빠져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맥이 풀린 것이다. 아버지는 그의 옷에 묻은 흙을 털고 피식 웃었다.
“아이고, 엄마한테 혼나겠다. 자전거 꼴이 저게 뭐냐.”
아버지는 자전거를 세우려고 했지만 고정쇠가 풀린 자전거는 자꾸만 넘어졌다. 머슥해진 표정으로 아버지는 자전거의 핸들을 잡아 끌었지만 체인이 빠진 자전거는 헛돌며 움직이지 않았다. 바퀴가 돌아가지 않는 자전거는 그 자리에서 다시 쓰러졌다.
쓰러지려는 자전거를 왼발을 내려 잡고 세웠다. 역시, 오늘밤도 쉽지 않았다. 중심을 잡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다. 헬스와 검도, 달리기로 단련된 몸은 마흔에 들어섰지만 그럭저럭 운동으로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게 되었다.
“자전거나 수영처럼 몸으로 익히는 건 어릴 때 배워두면 한참을 지나도 할 수 있게 되더라고.”
동료의 말에 그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꿀꺽 삼켰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 다시는 그에게 자전거를 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성인이 되어서도 자전거를 탈 일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운전면허를 땄는데, 네 바퀴의 자동차는 그에게 달리는 쾌감과 함께 몹시도 바람직한 안정감을 함께 선사했다. 자전거에 대한 기억은 까맣게 잊고 살았다. 자전거가 아니라도 즐길 수 있는 레포츠와 운동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이 문제였다. 눈부신 첨단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자전거는 아직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존재하는 자전거를 가르쳐줄 수 있는 아버지이고 싶었다. 보조석을 잡아주는 것 말고 끝까지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아들이 제대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서고 달리고, 긴장이 반복된 몸은 금새 땀투성이가 되었다. 주먹을 불끈 쥔 그는, 어떻게든 한바퀴를 완주하고 귀가하리라는 의지에 불타올랐다. 페달을 올려 자전거를 바로 세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검색한 대로 긴장을 풀고 가볍게, 중심을 잡으려고 애써봤지만 자꾸 넘어지려는 몸에는 힘이 들어갔다.
“힘을 빼고 핸들을 자전거가 기울어지는 반대방향으로 조금씩 돌려봐. 균형을 맞춘다고 생각해봐.”
어린시절의 통통하고 겁 많은 그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플라스틱 장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뒷바퀴에 달린 작은 보조석을 잡고 굽힌 허리를 펴지 않은 채 온 힘을 다해 달리는 한 남자가 보였다. 아버지였다. 그는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으며 중심을 잡고 운동장을 내달렸다. 페달에 스치고 눌려 정강이에 난 상처가 짓이겨지지는 통증 때문 일거라고 생각했다. 중력과 평행한 몸에선 이윽고 힘이 빠졌다. 부드럽게 바람을 가르고 그는 달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보조석의 의자를 잡고 있을까.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성근 어둠만이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을 뿐이었다. 중심을 잃은 그는 자전거와 함께 운동장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바닥에 쏠린 손바닥이 아려왔다. 그대로 힘을 잃고 하늘을 향해 누웠다.
검은 하늘엔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모를 흐린 빛들이 잘게 반짝이고 있었다. 달리는 그의 기억에 남은 것은 자전거가 아닌 뒤를 잡아주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시절의 아버지와 조금 더 자전거를 함께 탔더라면, 좀 더 선명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을까.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자전거를 세우며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나란히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때까지. 몸으로 익힌 기억은 오래간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을 닮은 아들은... 아마 자전거를 쉽게 탈 수 없을지도 몰랐다. 상관없었다. 함께 한 그 시절이 서로의 기억에 즐겁게 남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손에 묻은 흙을 털며 내일 저녁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그는 학교 운동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