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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시딘 Feb 13. 2020

양키캔들 트루로즈

분노에 타오르는 두 손이 녀석의 목을 감싸쥐었다. 

파라핀이 심지를 타고 오르듯 혈관을 타고 울리는 심장박동에 흥분한 느낌이 들만큼 생생했다. 

두려움, 그리고 조바심에 심장박동이 빨라질수록 손엔 더욱 힘이 들어갔다. 터져 나가버릴 듯, 팽팽하게 장미색으로 물든 얼굴을 하고, 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호흡이 멈추었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손을 땠다. 힘이 빠진 사지를 간신히 가누며 밖으로 나왔다. 손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몸과 분리되었다고 느낄 만큼 강렬하고 부자연스러운 떨림이었다. 정수리를 태울 듯 8월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골목에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


세상은 한 번도 내 편인 적이 없었다. 빠져나갈 곳 없는 모퉁이로 늘 내몰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녀석에게 진심으로 물어본 적이 있다. 최선을 다해 나를 죽일 듯 괴롭히길래, 정말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할 줄 알았다.


“생긴 대로 해주는거야. 얼굴에 써 있거든.”

이 말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상황은 똑같았다. 생긴건 변하지 않았을테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와 같은 학교에 간 이유가 더 클테지만. 용돈은 패거리들의 간식비로 모두 빼앗겼다. 학교에서 한 시간 걸리는 집까지 매일 걸어다녔다. 맞거나 욕을 듣는 일과 함께 늘 반복되는 일이었다. 인생이 왜 이렇게 고달픈지 가끔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집이나 학교에 말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았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 가지 않을 생각도 했다. 일단 가지 않으면 고통 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버텨! 고등학교까진 졸업해야 뭐든 할 수 있어.”

중학교때부터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던 창식이 녀석이 내 말을 듣고 싸늘하게 덧붙였다. 바보같은 자식. 졸업은커녕, 고등학교에는 다녀본 적도 없으면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창식이는 오토바이를 툭툭치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없어. 그냥 나쁜 놈과 당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그래도 주변에서 가장 진심어린 조언을 해 줄 친구라고 생각하고 나는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진짜 괴로움은 고3때 시작되었다. 정신과 육체의 괴로움이 한꺼번에 몰려온 지랄같은 순간이었다. 내가 다닌 공고 전기과는 3학년 1학기가 되면 허접하든 좋은 곳이든 거의 취업이 되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나를 비롯해 학교에 남아있는 녀석들은 그저 그런 잉여들이나 다름없었다. 그 녀석도 거기에 있었다.     

 

시간이 많아진 녀석은 좀 더 창의적으로 괴롭힐 방법을 찾아다녔다. 일주일에 두 번,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나는 학교 뒤, 아무도 없는 창고로 끌려갔다. 전선으로 묶인 몸을 죽지 않을 만큼 때리고 딱 고통을 줄만큼 몸에 전류를 흘렸다. 몸에 전기가 흐른날은 잠을 자지 못했다. 밤새 머릿속에 부푼 풍선이 펑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침대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침대 아래로 발을 디디기조차 힘든 날들이 계속되었다. 창식이의 조언을 따를 수가 없었다. 방 밖으로 나는 나가지 않았다. 단념한 엄마는 출근 전 문 앞에 간단히 먹을 것을 두고 나가기 시작했다.      


2학기가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6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멍하니 침대와 바닥을 오가던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조금은 궁금해졌다. 포털 사이트 뉴스를 대강 훑다가 생각없이 메일함을 열었다. 나에게 메일을 보낼 사람따윈 없다. 광고로 가득찬 메일함을 비워나가다가 문구 하나에서 시선이 멈췄다.     


- 나는 그의 심지가 되어 조금씩 뜨겁게, 타올랐다. 


향초를 파는 사이트였다. 유명하다는 양키캔들, ‘트루로즈’라는 장미향초를 재고 정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사이트에 가입했었나 싶었지만 메일주소가 팔리고 넘겨져 가 닿았을 것이다. 붉은 향초가 문득 궁금해졌다. 시선을 끈 카피에 댓가를 지불한다는 의미로 제일 저렴한 초를 담아 결재했다. 


다음날, 식사 쟁반 옆에 놓인 누런 박스를 풀었다. 붉은 유리병엔 굳은 피로 담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초를 켰다. 심지가 타오르자 강렬한 인공장미향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싸구려 향수 냄새 같기도 하고, 어린시절 먹던 싸구려 쭈주바 맛처럼 느껴지는 묘한 향이었다. 그리고 질척대며 뒤 끝에 남는 불온한 장미향. 왁스냄새 섞인 그것은 나를 각성시켰다. 박스에 든 광고 전단지에는 향초와 어울리는 글이라며 로맨스 웹소설 사이트 무료 이용권이 들어 있었다. 약간은 각성된 기분으로 시시껄렁한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 없었다. 하나같이 똑같은 캔디같은 여자들, 정말 매력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향초의 심지가 퍽 소리를 내며 불꽃을 키우기 시작했다. 장미향이 좀 더 짙게 퍼져나갔다. 좀 더 화끈하고,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그런 여자. 나는 그런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이를테면 채찍을 들고 모두를 굴복시키는 그런 강한 여자 말이다. 순종적인 여자는 순종하는 대상을 제외하고 주변 모두를 힘들게 한다. 순종과 약함은 폭력을 부르기 십상이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아버지, 그리고 학교의 그 모자란 녀석들, 자신의 한심한 모습을 주변의 약자들에게 투영하는 그런 놈들.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들이 가장 우습게 여기는 상대, 그래, 여자에게 당하는 그들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장미향이 짙게 퍼져나갔다. 파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심지는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한글창을 열었다. 촛농이 떨어지며 향이 더욱 짙어져가고 있을 때 나의 소설이 시작되었다. 베트맨을 연상케 하는 암울한 도시의 청소부, 섹시하고 달콤하지만 서늘하고 음울한 나의 그녀. 부와 채찍을 쥐어주고 세상이 놀랄만한 멋진 외모를 갖게하는 거다. 무릎 꿇리는 거다. 이유 없는 악한 것들. 그렇다고 정의만을 추구하면 매력이 없지. 은행을 털어 자금을 마련하기도 하는 나의 영웅 ‘파라핀’. 소설은 시작되었다. 손도 대지 않던 밥상을 방안으로 가져왔다. 채소죽, 매실짱아찌, 씻은 김치와 팥버터빵, 그리고 보온텀블러에 보리차가 들어있었다. 엄마는 이렇게 먹을 것을 챙겨 놓고 일을 하러 갔다. 


속을 버릴까봐 매번 새로 죽을 끓이는 마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여전히 기억하고 챙기는 마음에 공연히 가슴이 저려왔다. 그러나 나는 방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에 접촉할 수 있는 촉수가 달린 채찍을 들고 도시의 영웅 파라핀은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빴다. 학교 폭력, 왕따, 뇌물수수, 부정부패, 파렴치한 사기꾼들.. 아름다운 그녀의 매운 채찍이 닿으면 범죄현장은 참회의 전당이 되었다. 로맨스도 잊지 않았다.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순수남 ‘캔들마스터’와의 아슬하지만 뜨거운 사랑! 당신같은 여자가 왜 나를 좋아하냐는 그의 질문에 파라핀은 답한다. 


- 사랑에 이유는 없어요. 당신은 불꽃처럼 나를 타오르게 만들 뿐이에요.     


꽤나 유치하고 뻔한 설정이었지만 나름 열정적인 독자들을 만나 연재를 진행했다. 노트북을 열기 전, 의식처럼 트루로즈 향초의 심지를 돋우었다. 불을 켜고 향이 퍼지면 홀린 사람처럼 글을 써나갔다. 연재가 거의 마무리 될 무렵 메일을 받았다. 출판제안 메일이었다. 연재까진 약 20회 정도의 분량이 남아있었고, 마무리 후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알 수 없는 아득한 나락에 조금씩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이제, 나는 밖으로 나갈 것이다. 나는, 햇살의 한가운데로 걸어갈 것이다.     


그날 아침, 막바지에 달한 원고를 쓰기 위해 향초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유리병에 붉은색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심지엔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주문을 하기 위해 사이트 창을 열었다. 주소가 유효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떴다. 다른 쇼핑몰을 찾아봐도 제품은 구할 수가 없었다. 한 쇼핑몰에 전화하자 단종된 예전 제품이라 구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금단증상처럼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원고가 써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연재물들을 보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였다. 평소보다 댓글창의 숫자가 두 배는 올라가 있었다. 댓글창을 열었다. 각각 다른 아이디를 사용하여 넣은 같은 댓글이 100개 이상 걸려 있었다. 눈앞이 아득해지는 문구. 오랜 어둠을 떠올리게 하는.     


- 생긴대로 썼네.      

쩍 갈리지는 소리를 내며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리해서 돋운 향초의 심지가 사라지며 과열된 유리병이 박살났다. 그들이 내 몸에 전기를 통과시키던 그때,  짧은 죽음을 경험하고 눈을 뜨던 그때가 생각났다. 잊었던 감각이 살아나며 나는 진저리를 치고 울부짖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나를 고문하고 망쳐놓았다. 침대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나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녀석의 집을 찾아갔다. 옆 동네의 연립주택, 재개발 단지로 지정된 그곳엔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삐걱이는 연립주택의 유리문을 열고 그의 집 앞에 쪼그리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담배냄새를 풍기며 추리닝을 입은 그가 계단을 올라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던 그는 조소와 비열함을 가득 담은 예전의 그 표정을 지었다. 잊을 수 없는 얼굴. 무시하듯 어깨를 치고 현관으로 다가간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병신, 생긴대로 놀고 있네.”     


분노가 나를 커지게 했다. 그리고 손을 올려 악력을 더했다. 있는 힘을 다해 녀석의 목을 졸랐다. 나를 무시하는 건 상관없지만 내 소설속의 영웅들을, 내가 만든 세계를, 사랑을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당황한 그가 버둥거렸지만 왜소한 그가 내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는 나보다 작고 말랐으며 힘이 없었다. 그 사실을 왜 몰랐을까. 힘주면 끊어지는 전선에 묶여 매일 여러번 죽음을 맞으며 왜 절망해야 했을까. 붉고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주저 않은 녀석을 보며 뒷걸음질 쳤다. 절규하는 나의 몸속에서 빠져나오는 붉은 색을, 장미향을 맡았다.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구급차와 경찰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휘청거리는 발을 아무렇게나 딛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와 가까이 있는 한여름의 태양을 몸 구석구석에 받아들였다.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나의 영웅들이 태양 뒤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왔다. 모니터도, 장미향도 없는 햇빛 아래로. 모든 것이 증발될 것 같이 타오르는 한여름의 가운데서 나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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