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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시딘 Mar 03. 2020

아편처(阿片悽)

-베르나르 뷔페 'La barricade'

친애하는 S 선생님!     


지금까지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저희 가족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애씀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습니다. 거리가 십수만리인 개성에서 경성까지 오가실때마다 들러주시고, 때로 들르는 이 있을 때 유익한 양식과 서책을 들려 보내시는 점,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단, 이러한 배려가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만은 아닌, 저희 가족을 진심으로 대하시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감동의 마음은 몇 배가 되어 더 깊이 와 닿습니다.    

  

각설(却說) 하고,     


이러한 긴 서신을 띄우는 건 바로 저희 오라비 때문입니다. 몇 달전 저희 오라비가 경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아, 저와 가족이 오라비를 찾아 수소문한건 선생님도 잘 아실겁니다. 은밀하게 돈을 전달하던 식당 미가옥의 주인이 총독부로 잡혀가고 하얼빈에 있다는 오라비의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 후로 일년여 간간이 전해지던 서신도 자른 듯 끊어지고 그는 사라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장 하얼빈으로 만주로 오라비를 찾으러 나서고 싶었지만 혈혈단신 여자의 몸으로, 그리고 홀로 남겨질 노모가 걱정되어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옥사 이후 그의 사상과 육신은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잡지 <광명>의 편집자였던 아버지는 꾸준히 조선어로 된 시와 소설들을 가려 실었습니다. 기준 없는 검열에 아버지가 실은 글들이 문제가 되고, 그가 이끌던 독서모임 ‘창조회’가 문화호텔 폭동에 가담했다는 누명으로 투옥 후 고문으로 세상을 등진 건 선생님도 잘 아실겁니다. 그 이후에 오라비는 만주에서 온 아버지의 지인들과 접촉하며 눈빛이 변하여 갔습니다.      


“영애야, 세상은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날 오라비의 눈빛을 기억합니다. 온 몸에 불이 붙는다는 것, 분노로 사람이 후르륵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달 후 그는 만주로 떠났습니다. 가끔 급전을 요구하는 애닳는 편지를 보내왔고, 어머니는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그 돈을 마련해 보냈습니다. 여학교에 다니던 저였지만 다방 ‘기러기’에서 두 어시간 일을 봐주며 버는 돈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뚝하니, 연락이 끊어졌던 그가, 우리 두 모녀의 애가 모두 닳아 녹아 없어질 즈음에 경성에 나타났습니다. 그의 모양새는... 다시 떠올리려니 눈물이 흐릅니다. 핼쑥하니 마른 얼굴은 청백색을 띄었습니다. 깡마른 몸은 얼룩덜룩 반점과 멍이 자욱했습니다. 온몸에는 찢겼다 꿰메거나 대강 붙여논 자국이 무수했고, 수상한 바늘구멍들이 틈틈이 감염되어 누렇고 검은 딱지가 나서 피부는 노랗게 곯고 종기위해 하냥 또 종기가 돋아 일그러지고... 누렇고 붉은 고름 투성이로 하냥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콜레라, 임질, 매독.. 이건 살아있는 게 이상할 지경이라오.”

동네 병원의 의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오라비는 우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뭉그러진 발음으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머리까지 타고 올라간 매독균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와 전 그저 밥 속에 병원에서 준 한웅큼의 약을 섞어먹이며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있잖우, 영애 학생, 이거 봐봐.”

기러기 다실의 주인 여자가 제게 내민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한 요즘 경성에서 인기있는 잡지였습니다. 그녀가 내민 페이지에는 만주 등지에 비밀스런 군부대가 있는데 동물대신 인간을 잡아서 실험을 한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병의 균을 사람에게 넣거나 사람을 자르고 오리는 등, 상상 이상의 고약스런 일들이 펼쳐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실험당한 사람들이 가끔 부대를 빠져나와 귀(鬼)처럼 떠돌다가 근처 마을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고도 했습니다. 

“혹시, 학생 오래비도 여기서 빠져나온게 아닐까?.... 아니, 여기 사진에 실린 사람이 비슷하네.”


어수룩한 흑백사진은 오래비와 비슷해보이기도, 아니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는 감사한 마음에 바닥에 주저 앉아 고개를 조아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습니다. 실제 ‘귀(鬼)’가 아닌 귀처럼 떠돌다 사람으로 와준 것이 말입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부터 밤마다 집을 나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상을 물리고 어둠이 한참 깊어진 후 그는 소리없이 조용히 집을 나섭니다. 언제나갔는지 알수도 없도록 말입니다. 무척이나 지친얼굴로 해가 뜬 후에 오던 그가 언제부턴가 하루, 혹은 이틀 후에야 집에 돌아옵니다. 그를 놓치거나 너무 늦은 밤이어서 나는 오래비를 따라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한껏 지친 얼굴로 들어온 그의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을 보며 그가 밖에서 하고 오는 일들이 불의한 것임을 느꼈습니다.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문득 그의 골수 끝까지 치밀어 올라 치료가 힘들다는 매독균이 생각났습니다. 매춘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오래비의 안위도 그렇지만 사실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반 송장의 몸인 그를 밤새 버티게 하는 것은 무엇일지 말입니다.      


가느다란 초승달이 이울어가는 어두운 밤, 저는 작정하고 그를 따라나섰습니다. 낙엽을 밟으며 휘청거리는 제 존재를 알 수 없을 만큼 충분히 부주의했습니다. 막차임을 알리는 종소리가 여러번 울리는 전차에 그는 몸을 실었고, 돌아올 길이 염려 되었지만 저도 따라 탔습니다. 덜컹대는 전차가 쇳소리를 내며 서는 정류장마다 그는 뚫린 듯한 눈으로 창밖을 응시할 뿐이었습니다. 제 존재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 싶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가 내린 곳은 서소문 중국인촌이었습니다. 어둡게 깔린 거리를 지나니 흐린 불빛의 작은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진 곳이 나타났습니다. 수상한 약초냄새와 향신료 냄새, 돼지고기 비린내를 잔뜩 품은 기름진 냄새, 그리고 은근한 불에 태우는 역한 풀냄새가 사방에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좁게 난 골목길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나는 그를 따라 갔습니다.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중국인들이 말을 걸며 소매자락을 잡기도 했지만 맵찬 눈길을 주며 뿌리쳤습니다. 무서웠지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오래비의 뒤통수만 살피며 걸었습니다. 이윽고 그가 골목길 끝에 난, 불빛도 없는 샛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다가간 저는 그 샛길의 끝, 아주 흐린 불빛의 점방을 목격하고 주저앉아 입을 막았습니다. 거기엔 마굴(魔窟), 그중에서도 최악이라는 아편처가 있었습니다. 반은 나신인 어느 늙은 여인이 아편을 말아주면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곰방대에 넣어 피웠습니다. 땟국에 절고 낡아서 구멍난 가마니가 드리워진 구석 모퉁이에 짚단처럼 널펴진 오래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곰팡대에선 이미 메케한 연기가 혼곤히 피어올랐습니다. 어찌 할 줄 몰라 골목 입구에서 입술을 깨물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때 아편을 말던 반 나신의 여인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흐린 눈의 여인은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연기가 자욱한 그곳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비현실적입니다. 매웁고 독하게 골목을 채우고 있는 아편 연기 속에서 나는 여인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고 애원했습니다.      


“제 오라비에요. 데려갈 수 있게 도와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여자는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무표정하게 있어도 주름진 얼굴에 더 깊은 주름을 만들며 웃어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괴기스럽고 아물러진 감정들을 불러모아 저는 두려워졌습니다. 웃기를 멈춘 여인은 고개를 돌려 굴속의 오라비를 문득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눈길에서 쓸쓸함과 슬픔이 느껴져, 저는 다시 한번 정신을 바짝 세워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저까지 아편 내음에 취하면 남매가 함께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마음이 들어서입니다.     


“네 오라비는 죽고 싶은 거야. 아편으로 매일밤 죽었다가 다시 괴롭게 살아나지. 햇볕아래를 걸을 땐 온 몸에 붙은 물렁한 종기와 곯아터진 상처가 염복상천의 송장냄새를 풍기지. 그는 그게 마음에서 풍기는 걸 알아. 만주에서 사방에서 풍겨나오는 걸 안다고. 자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다행이야.”

저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좀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 여인이 혀를 끌끌차며 덧붙였습니다.

“청결하게 그만 죽을 수도 없음이라. 사는 게 그렇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거든.”


살아도 사는게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오라비의 삶. 여인은 잘 말은 아편을 한 대 넣은 곰방대를 건냈습니다. 저는 고개를 흔들고 뛰어 골목을 나왔습니다. 이튿날 들어온 오라비는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히 어둡게 만든 방에서 죽음처럼 고요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그의 상처에 연고제를 바르고 종기에 검은 고약을 붙일 때 그는 잠시 몸을 뒤척이지만 이내 미동도 없습니다.      


희망도 믿음도, 이제 슬픔도 없는 자신귀(刺身鬼)가 된 오라비의 모습을 봅니다.  겉과 속이 모두 썩어 문드러져 가며, 마굴의 죽음을 찾아다니는, 이미 사람이 아닌 그를 어떻게 해야 돌려 놓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이라면 명료한 의학적 지식과 세상에 대한 혜안으로 답을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조만간 경성에 오시겠다 하셔서, 그 전에 자세한 연유를 여쭙는게 도리에 맞을 것 같아 이렇게 서신을 드립니다.      

오시는 그날까지 별 일 없이 건강 하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경성에서 주영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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