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원 Oct 30. 2015

프로세스를 아는 몸으로 교육하기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까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책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세 가지 관점에서 본다.

첫째는 자원, 둘째는 프로세스, 셋째는 우선순위.


#1 자원에는 경제적, 물질적 자원, 시간과 에너지, 지식과 재능, 관계 등이 있다. 이것들은 대체로 지원의 대상이지 교육의 대상은 아니다.

#2 프로세스는 사고방식, 질문하는 방식, 문제 해결 방식, 타인과 협력하는 방식, 팀워크, 기업가 정신, 준비와 연습 방법 등을 포함한다. 프로세스는 비교적 무형적인 것이어서 측정이 어렵기 때문에 소홀해 질 가능성이 많다.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다.

#3 우선순위는 어떤 것이 중요한지, 어떤 것을 뒤로 미룰지, 어떤 것을 하고 싶어할 지를 결정한다. 우선순위는 프로세스처럼 교육의 영역이긴 하지만 의도적인 교육이라기보다 부모가 일상적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영향을 받는다.



자원에 관해서라면 기꺼이 투자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사전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많은 사교육은 대개 자원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것이다. 얼마 전에 방문한 빨간펜 학습지 교사는 시종일관 사전 지식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오랜 시간 얘기를 들었지만 빨간펜 교사는 우리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러한 방식은 사실상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교육의 핵심은 프로세스에 있다. 타고난 재능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성취를 보이고 싶을 때, 주어진 환경에서 재능을 펼치고 싶을 때, 어떤 시도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 몸으로 알게 하는 것이 내가 교육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프로세스가 중요한 이유는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갖고 태어났는지, 살아가면서 어떤 종류의 흥미를 갖게 될 지, 얼마나 많은 것들에서 흥미를 느끼게 될 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세스는 일회성이 아니다. 나중에라도 특정한 영역에서 흥미나 필요가 생겼을 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프로세스다. 어린 시절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프로세스를 몸에 익혀 두면 차후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연습을 강조하는 것도 프로세스 교육의 일환이다. 무엇을 잘하고 싶다면 우선 꾸준한 연습과 의도된 훈련의 효과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실행하려면 효과적인 동기부여 수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연습이 습관으로 이어지고 성취를 맛볼 수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한 달 동안 윗몸일으키기나 팔굽혀펴기를 연습하도록 할 때는 근육이라는 '자원'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매일 지속되는 훈련이 어떤 향상을 가져오는지 몸으로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첫째로 중요한 것은 연습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것, 둘째는 매일 연습을 이어가고자 할 때 어떤 방식이 아이에게 효과적인지 실험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프로세스 관점에서의 교육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는 우선순위다. 경쟁이냐 협력이냐, 안정이냐 도전이냐, 재능이냐 흥미냐, 사명이냐 열정이냐 하는 딜레마에 관한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매일같이 이러한 갈등을 겪는다. 우선순위는 의도적 교육의 범주라기보다는 부모가 일상에서 행동과 선택으로 보여야 할 문제이다. 더욱 어려운 것은 우선순위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기도 하며 상황에 따라서도 가변적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우선순위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일 지도 모른다.



세 가지 요소와 관련하여 피아노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상대음감 혹은 절대음감을 타고났다거나, 집 앞에 좋은 피아노 학원이 있다거나, 피아노 곡을 즐겨 듣는 부모가 있다거나, 집에 야마하 디지털피아노가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 자원에 해당한다. 주로 재능이나 환경에 관한 것들이다.


피아노의 경우 프로세스는 단순 반복이 아니라 어려운 부분을 의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하는 것이다. 한 곡을 외워서 치게 하는 것보다 악보를 보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이들이 뽐내듯 빠르게 연주할 때 칭찬하기보다는 박자를 정확히 아는 것과 느낌에 따라 리듬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해 주는 것을 말한다. 또한 피아노가 치기 싫을 때 어떻게 연습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실험해 보는 것이 프로세스의 영역이다. 우선순위는 피아노를 왜 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관련이 있다. 피아노를 전공할 것도 아닌데 즐기면 그만이지 하기 싫은데 왜 연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올 때 우선순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피아노에 재능이 없지만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할 때, 혹은 타고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쉽게 포기하려 할 때의 선택 또한 쉽지 않은 우선순위의 문제다.


나는 지금 프로세스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자원 역시 중요한 변수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자원에 있어서 의외로 중요한 부분은 제공 시기에 관한 것이다. 한글을 막 뗀 아이 손을 잡고 피아노학원에 데려갈 것이냐, 아이가 유치원 친구에게 피아노 학원 이름을 물어 올 때까지 기다리느냐의 문제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아이에게 곧바로 피아노를 선물할 것이냐, 장난감 건반을 띵똥거리던 아이가 양손으로 치고 싶다며 피아노를 사달라고 조르고 조를 때까지 기다리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다. 자원의 양이 아니라 단지 시기를 조절함으로써 우리는 우선순위에서 이득을 본다. 자원을 컨트롤함으로써 아이의 열망을 확인하고 북돋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프로세스도 선순환 구조로 돌아간다. 연습을 통해서 실력이 늘고, 아이가 스스로 향상됨을 느낄 때 프로세스도 한결 쉬워 진다.


아이에게 교육을 통해 주어야 할 것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이런 것들은 하나의 자원에 불과하다), 연습을 하면 점점 잘하게 된다는 단순한 매커니즘에 대한 신뢰, 그리고 연습을 지속적으로 이어간 성공 경험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