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외삼촌

퐁 - 1975

by 마이즈

내가 좋아하는 사촌 형이 있다. 일명 불곰이라고 부른다. 불곰 형의 가족은 총 다섯이다. 둘째 외삼촌과 외숙모, 그리고 백곰, 불곰, 꽃곰 3남매. 그날도 놀러 간다는 사실에 잔뜩 들떠 있었다. 활동적인 불곰 형과 놀이터에 갈 수 있을까? 집에서는 금지된 장소지만 형과 함께 간다고 하면 허락해 주실지도 몰라! 하지만 그날은 상상과 달리 완전히 새로운 놀이에 심취하게 되는 날이었다.

둘째 외삼촌은 게임 사업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셨는데, 당연히 가장 선진국이었던 미국 시장을 바라보고 계셨다. 다섯 아이가 모이자 삼촌은 우리를 TV 앞으로 불러 모으셨다. 그리고는 이거 한번 해봐라 하시며 이상한 기계를 TV에 연결했다. 한참 뒤에 알게 되었지만, 아타리라는 물건이었다. 세계 최초는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초기 콘솔 게임이었다. 화면에 까만 공이 움직였고 양 쪽 끝에 벽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아주 단순했다. 공이 내 뒤로 넘어가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날아오는 공에 벽을 대면 튕겨서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삼촌은 우리가 이 게임에 얼마나 빠져드는지 궁금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방으로 들어가서 스케치북을 펼쳤다. 삼촌이 실망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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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후 다시 삼촌에게 아까 그 장난감을 TV에 연결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몇 시간 동안 준비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TV에 붙이는 다양한 그림이었다. 골대를 그리기도 했고 중앙에 테니스 코트처럼 네트를 그려 붙이기도 했다. 공과 벽도 다른 모양으로 그리고 싶어서 다양한 캐릭터를 그렸지만, 계속 움직이는 것에는 그림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까워하기도 했다. 나는 먹구름을 잔뜩 그려 붙였다. 공을 가리는 요소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단순한 게임에 우리의 그림이 더해지며 점점 더 흥미롭게 변했다. 물론, TV는 엉망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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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타리 쇼크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일 수도 있지만 이 날로부터 수년 뒤, 삼촌은 일본 닌텐도로부터 패미콤을 정식 수입하는 사업을 하시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게임이 아닌 그림 그려 붙이기에 더욱 열중하던 모습도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산업 극 초기의 게임을 사업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둘째 외삼촌. 돌아가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분의 삶과 시야 역시 내가 게임으로 삶을 틀어가는데 큰 영향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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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 1985까지

퐁. 1975. 아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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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게임은 아니지만, 세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게임. 그것을 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습니다. 게임의 역사를 다루면 무조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퐁’이라는 게임인데, 저는 이 화면을 볼 때마다 그날 둘째 외삼촌 집에서 함께 플레이하던 사촌들의 모습과 그림을 오려 붙이며 즐거워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제가 플레이한 퐁은 아타리라는 콘솔로 이식된 1975년 버전으로 고전 아케이드 버전과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지금에 와서 바라보면 별 차이를 못 느낄 것 같긴 하네요. 이 게임을 실기로 직접 해봤다는 면에서 자부심과 함께 삼촌에 대한 감사를 자주 느끼고 있습니다.

SE-fead1ac1-3ec8-43da-94ff-01b55457f74d.jpg?type=w1 그날 기억하는 콘솔은 이 버전. 다이얼만 있는 초 단순한 기가였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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