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계곡
보유한 게임 중에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한 제목이 있었다. ‘킹스밸리’라고 쓰여 있었는데, 젤리 이름 같기도 하고 과자 이름 같기도 했다. 한참 뒤에야 그것이 ‘왕가의 계곡’의 영어 이름 임을 알게 되었다. 이 게임에서의 나는 탐험가가 되어 각 스테이지에 있는 보석을 모아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미이라다. 그 놈들은 나를 끝까지 따라오는데, 닿는 순간 죽기 때문이다. 보석은 종종 땅이나 벽 속에 묻혀 있기도 하다. 그럴 때면 곡괭이로 파야 하는데, 스테이지마다 주어지는 숫자가 정해져 있다. 따라서 조작 실력이 좋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무리 미이라를 잘 피하고 움직여도 곡괭이를 낭비하는 순간 클리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항상 막히는 스테이지가 있었다. 매번 곡괭이가 부족해서 실패했는데, 당시에는 이어 하기가 없었기 때문에 죽으면 무조건 처음부터 해야 했다. 이것을 반복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쉬운 스테이지는 거의 다 외워져서 재미가 없어졌다. 고민 끝에 꾀를 냈다. 초반 스테이지를 동생에게 시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려운 스테이지에서만 내가 받아서 하면 되는 것이지. 문제는 동생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결국 내가 원하는 스테이지까지 갈 수 있도록 동생이 하는 게임에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켜보다 보니 깨닫는 점이 있었다.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 거리를 두면 오히려 맵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번 실패하던 스테이지에 도달한 동생에게 그대로 계속 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스케치 북에 스테이지를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게임을 하지 못하는 시간에는 스케치북에 그려둔 스테이지 지도를 보며 퍼즐을 풀었다. 곡괭이가 몇 개인지, 미이라의 위치는 어디인지를 꼼꼼히 기록해 두고 이리저리 머리를 썼다. 해법이 나오면 다음 날 직접 게임을 하며 풀이 법을 검증했다. 한동안 열심히 하던 게임이지만 결국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 게임을 하다 보니 결국에는 스케치북에 그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크고 복잡한 맵이 나왔기 때문이다. 만약 요즘처럼 사진이나 스크린 샷을 찍을 수 있었다면, 끝까지 할 수 있었을까? 킹스밸리는 나에게 게임이라는 것에 조작뿐 아니라 머리를 써야 하는 방식도 있음을 알려준 첫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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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5까지
왕가의 계곡. 1985. 코나미.
고고학자가 되어 미이라들을 피해 보물을 찾는 게임입니다. 단검을 던져 미이라를 없앨 수 있지만 잠시 후 다시 부활하며, 곡괭이로 바닥을 팔 수 있지만 잠시 후 다시 바닥이 채워집니다. 이 두 가지를 이용해서 퍼즐처럼 풀어가야 하는 게임이에요. 점프도 가능하지만 아이템을 가진 상태에서는 점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머리를 꽤 써야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머리를 쓰는 게임이 많지 않아 더욱 인기를 끌지 않았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