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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만약에

존경할만한 동료들이 가득했던 6번째 회사

by 마이즈 Jan 02. 2025

백수 기간이 생기는 것은 곤란했다. 동생의 유학 예정이 코 앞이었기 때문이다. 등록금은 낼 수 있었지만 일본에서 지내기 위한 집을 구해야 했다. 따라서 다음 회사의 조건은 단 하나, 연봉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순진하게 원상 복구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연봉 삭감을 수락한 대가였다. 원하는 수준을 받으려면 다시는 만들고 싶지 않던 슈팅 게임으로 가야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레벨 업은 해야 하기에 언리얼 최신 버전을 사용하는 회사에 지원했다. 구직은 수월했다. 이미 언리얼로 FPS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론칭한 이력이 있었고, MMORPG 이력까지 더해졌으니까. 그렇게 합격한 팀은 밀리터리 TPS를 개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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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후 3개월 간의 수습 기간. 그저 방치되었다. 애초에 어떤 직무로 채용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평소 자신 있는 시스템 기획을 하려고 했는데, 부팀장님 혼자서 충분히 감당하고 계셨다. 시나리오를 하려고 살펴보니 팀장님이 그쪽으로 유명한 분이셨고 심지어 밀리터리 덕후였다. 두 분 다 실력이 뛰어나셔서 전문성에서도 필력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레벨 디자인은 그래픽 팀에서 담당하고 있었고, 콘텐츠는 모두의 공통 영역이었다. 대체 왜 뽑은 거지?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왜 일을 주지 않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일을 충실히 했으며 실력 또한 좋았다. 개발실 안에서 혼자 뒤처지고 따돌림당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3개월 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람들을 관찰했고 그 결과 나만이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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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료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그들보다 잘해야만 할까? 여러 분야에서 2인자, 3인자로 남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그곳에 길이 있었다. 깊이와 전문성은 얕지만, 게임 개발의 전 분야를 모두 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지난 회사에서 프로그램팀과 기획팀이 싸우는 모습을 봐왔기에 여러 직군 사이에서 연결 고리를 자처하기로 했다. 그래픽 리소스와 프로그램 모듈, 기획 데이터 등을 받아서 연결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링크 매니저였다. 각자의 전문성이 담긴 작업물들은 결국 누군가가 하나로 합쳐야 한다. 보통은 회사마다 담당하는 부서가 다른데, 대체로 강력한 발언권을 갖게 된다. 정치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서 그 역할을 전담하는 제3자가 있다면 힘의 균형이 무너지지도 않을 테고 부서들이 충돌하는 일도 없지 않을까? 남들보다 빛나고 튀는 일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고, 팀장님은 수습 통과를 선언하셨다.


“방치되어서 당황하셨죠? 저는 원래 수습 기간 동안 내버려 둡니다. 스스로 자기 일을 찾아서 만들어 내는지가 중요하거든요.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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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의 문화중 가장 특별한 것은 매주 전체 테스트를 한다는 점이었다. 일주일간 작업한 내용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모두가 기대하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누구나 아이디어가 있다면 소규모 팀으로 목업을 개발할 수 있다. 오히려 권장한다. 드론을 띄워서 상대의 위치를 확인하는 기능이나 공중 폭격을 요청하는 시스템,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출렁다리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렇게 소규모 팀에서 구성한 데이터를 전체 테스트에 반영해 보는 것이다. 덕분에 매주 독특한 아이디어들을 기대하는 맛이 있었다. 나 또한 동료들과 함께 여러 번 새로운 것을 만들고 테스트했다. 다만, 이 아이디어 구현을 위한 시간은 업무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업무 시간 이후에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는 정책이었는데, 많은 사람이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그만큼 즐겁게 게임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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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개발실의 서버 팀장님을 동경했다. 여성 분이셨는데, 언제나 긍정적으로 웃으며 사람들을 대해 주셨다.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 주시려는 부분에서 첫 회사의 김 부장님을 떠올리기도 했다. 사실 나는 다른 직군 스킬에 비해 서버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탄흔의 회사에 함께였던 오타쿠 동료에게 잠시 배운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서버 팀장님은 나에게 테스트 서버를 맡기기도 하셨고, 내가 조합한 데이터를 서버에서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해 주셨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다. 클로즈 베타 테스트가 있던 날,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장담하시며 천천히 출근하겠다고 하셨다. 실제로 그랬다. 오픈 첫날에 이렇게 안정적인 서비스는 본 적이 없었다. 여유롭고 밝고 긍정적이며 실력까지 좋은 여성 프로그래머.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있다니. 이 팀장님은 현재 모 기관의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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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은 그동안 겪은 술자리 중 최고였다. 첫 차가 다닐 때까지 마셨음에도 전혀 취하지 않았다. 존경할 수 있는 팀장님과 부팀장님. 실력이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있으니 한 마디 한 마디에 배울 것들이 넘쳐났다.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과 한 팀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레벨업 하고 싶었다. 동시에 이 게임은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데 실패할 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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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연예인들이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한다는 말이 돌았다. 미남 배우로 유명한 S*S와 SS*. 그들이 오는 날이면 여직원들이 복도에 줄을 섰다. 나중에는 TV 예능에서 간접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다양한 도전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나 역시 매주 토요일마다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멤버 중 하나가 우리 회사에 투자를 했고, 방송 중에 다른 출연자에게 투자하라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연예인 투자는 계속되며 이번에는 미녀 배우가 회사에 방문한다고 했다. 관심 없는 척하던 남직원들도 그날이 되자 복도를 기웃거렸다.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다며 놀이 공원으로 워크숍을 가기도 했다. 경영진의 실력이 대단한가 보다 싶었다. 직원들에게 스키장에 가는 차량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매번 동료들이 함께 가자고 했지만, 동생이 일본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터라 돈이 많이 드는 상황이었다. 거절하기 힘들 때에는 스키를 탈 줄 모른다고 변명하며 저렴한 워터 파크를 갔다. 어째 매번 스키장 옆 워터 파크만 가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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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개발을 하던 중, 갑자기 급여가 끊겼다. 연봉만 보고 온 회사였는데, 급여가 연체된다고? 동생 월세는 어떻게 하지? 바로 투 잡을 시작 했다. 더 이상 아이디어 개발 활동은 할 수 없었다. 당장 돈이 급했으니까. 두 달, 세 달, 9개월까지... 연체는 점점 더 길어졌다. 당시 회사에서 자판기 음료와 컵라면이 무료였는데, 급여가 없으니 이걸 가지고 나가서 파는 분들까지 생겼다. 존경할만한 높은 수준의 동료들은 위기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러했을까? 서버 팀장님은 집에서 가져온 과일을 깎으시며 우리를 불렀고, 종종 너 댓 명이 모여 도란도란 둘러앉아 잠시나마 위기를 잊고 따듯한 시간을 보냈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사람들을 안정시킬 수 있다니. 또다시 감탄했다. 세상에 이런 멘털과 성숙함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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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앞둔 급여 일. 우리는 모두 기도했다. 제발 도넛 배달이 오지 말기를.  급여가 나오지 않는 소식을 전해야 할 때면 실장님은 미안한 마음인지 꼭 도넛을 사주셨다. 왜 하필 크리스피만 사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날도 급여 대신 도넛이었다. 암울한 심정으로 연휴를 보내야 하나 싶었는데, 우리 투자자인 S 배우님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스케줄 마치고 갈 테니 직원 분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소소한 추석 선물이라도 드리고 싶다고. 작은 희망을 가졌다. 혹시 밀린 급여를? 아니, 거기까지 아니더라도 연휴를 보낼 작은 보너스라도? 기다림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저녁이 다 되어서야 S 배우님이 도착했다. 이번만큼은 여직원만이 아닌 남직원들도, 심지어 나 조차도 복도에 나가서 맞이했다. S 배우님의 추석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친필 사인을 한 본인 사진엽서와 라면 박스였다. 놀리는 건가 싶었는데, 급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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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두 개의 건물에서 각각 2개의 층을 사용했다. 세미나에서 우연히 옆 건물에 근무하는 사우 분을 만났다. 그리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의 스튜디오는 연체된 급여가 일부 지급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이상했다. 모든 개발실 중 게임이 완성되어 출시 준비를 하는 곳은 우리뿐이었다. 사내 서비스 조직과 함께 운영 툴과 로그 시스템을 논의하며 마케팅 이야기까지 나오는 단계였으니까. 반면, 다른 스튜디오 들은 아직 개발 중인 상황. 이런 말하면 안 되지만, 밀린 급여를 준다면 우리부터 주는 게 맞지 않나?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이번에도 사내 정치 문제였다. 팀 내 정치가 아닌 스튜디오 간의 견제였기 때문에 일반 직원들의 눈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프로젝트를 다른 스튜디오로 이관하라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말이 되나? 처음부터 거의 다 만들고 클로즈 베타에 프리 오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인데. 모두 한 마음으로 뭉쳐 수없이 밤을 지새우며 만든 게임이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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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님은 정말 좋은 분이셨다. 평소에는 자상하고 따스한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회의실에만 들어가면 쌍욕을 시전 하는 파이터로 변했다. 우리 기획팀과도 정말 많이 싸웠다. 그래서 짜증 나고 싫었냐고? 그럴 리가. 진심으로 게임을 아끼고 있기에 싸우는 것이다. 고집이 있었지만, 때로는 굽힐 줄도 알았다. 본인이 애정을 갖고 몇 개월 간 밀어붙이던 시스템을 포기한 일도 있었으니까. 뭐, 10시간이 넘는 릴레이 회의가 필요하긴 했지만. 고백하자면, 이후 내가 처음으로 디렉터를 맡았을 때 이 분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개발팀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신뢰가 가는 분이셨다. 하지만 회사 경영진의 입장은 달랐던 것 같다. 자신들의 의견이나 지시보다 게임이 우선인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겠지. 경영진과 사업부를 앞에 둔 시연 자리에서 부당한 요구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뒤의 내가 했던 질문은 기억한다.


“실장님, 설마 저 말대로 고칠 건가요? 그럼 다른 게임이 되어 버릴 텐데요.”

“그럴 리가 있나요? 저를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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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회사 앞 카페에서 디렉터님과 단 둘이 면담을 했다. 어머니와의 생활비는 투잡으로 어느 정도 감당이 되었지만 일본에 유학 중인 동생을 위해 돈을 더 벌어야 했다. 예전처럼 쓰리 잡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럴 수 없었다. 급여가 나오지 않더라도 자리는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이 프로젝트를 다른 스튜디오에 빼앗길 것 같아 매일이 불안했으니까. 게임을 인질로 잡은 회사를 상대로 농성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이직을 결심했다. 그 말을 들은 디렉터님은 며칠 뒤, 나를 회사 앞 카페로 불러낸 것이다.


“마이즈 씨 상황은 잘 알겠어요. 제가 말릴 수 없다는 것 알아요. 가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도 마이즈 씨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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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업무는 모든 직군, 모든 팀원의 작업물을 중간에서 연결하고 관리해서 구동시키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일 욕심 탓에 업무 영역을 계속 늘렸갔다. 스케일 폼을 사용한 UI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고, 총기와 아이템, 스크립트, 서버와 연동된 커뮤니티 시스템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빠져서 곤란하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탓에 고민이 길어졌고 9개월의 임금 체불을 겪으며 생활을 위해 카드론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그 부분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인수인계를 확실히 할게요. 문서도 만들 거고요.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몇 번이든 직접 와서 고치겠습니다.”


디렉터님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예금 통장이었다.


“이거. 제가 그동안 살면서 모은 돈이에요. 이걸로 마이즈 씨 급여는 제가 개인적으로 따로 챙겨줄게요. 그래도 안 될까요?”


문득, 지금 이 장면을 평생토록 돌이키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어느 디렉터가 평생 모은 돈을 일개 직원에게 건네며 프로젝트를 지키려고 할까? 이 순간 게임에 진심인 그분의 마음마저 존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게다가 이런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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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이후, 후임자를 뽑았고 인수인계를 위해 몇 번이나 방문했다. 내가 하던 업무는 한 사람이 하기에 범위가 너무 넓었다. 데이터 테이블과 로그 분석은 직접 만든 VBA 툴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도 전달해야 했고 담당 업무마다 매번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존감이 높아졌다. 내가 해온 업무가 5인분 이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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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는 결국 다른 스튜디오로 넘어갔다. 게임의 정식 서비스는 알파 버전부터 클로즈 베타, FGT, 프리 오픈까지 진행한 우리 팀이 아닌 다른 스튜디오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개발실은 해체되었고 존경할만한, 실력이 좋은 동료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이 전까지는 게임을 개발하는 실력과 마음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알 수 있었다. 리더에게는 조직을 지킬 수 있는 정치력과 숙일 줄 아는 용기 또한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만약에 이 회사에 끝까지 남아 있었더라면,

만약에 디렉터님이 게임보다 생존을 택했더라면,

만약에 연예인들이 복지가 아닌 급여 지원을 해주었더라면,

만약에 내가 링크 매니저가 아닌 다른 업무를 했더라면,

만약에 우리 중 누군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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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에 미련을 갖지 않는 성격임에도 이 회사에 대해서는 자꾸 ‘만약에’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존경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서였을까? 9개월의 임금 체불에도 버틸 만큼 좋은 개발팀이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만약에"라는 단어. 그것이 회사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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