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사에 면접을 보러 선릉역에 내렸을 때, N사 로고가 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최고의 게임 회사. 언젠가 반드시 들어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매일 출근하면서 N사의 존재를 느꼈다. 어쩌면 그 때문에 김 부장님의 여러 제안을 받아들이며 성장했을 지도 모르겠다. 시나리오로 입사했지만, 기획과 밸런스, 프로그램과 세미 네트워크까지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사에 입사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내가 만드는 것은 모바일 게임. 하지만 당시 N사에는 모바일 게임 부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될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력서를 냈고, 탈락했다. 첫번째 탈락이었다.
온라인 게임 경력을 갖기 위해 합격한 탄흔의 회사는 FPS를 개발하는 곳이었다. 멀미를 극복하며 게임에 열중했고 언리얼 엔진을 익혔다. 서버에 대한 개념과 함께 시스템 기획, 그 중에서도 물리 엔진에 관련된 스킬을 얻었다. 퇴사 후 콘솔 게임을 만들고 싶어 잠시 PSP 개발 교육을 시켜주는 회사를 다녔고, 콘솔 게임 프로그래밍 스킬도 얻을 수 있었다. 이 쯤이면 N사에 도전할만 하지 않을까? 시간을 두고 도전했지만, 또 다시 탈락했다. 내 수준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네번째 회사는 구름 속에 있었다. 처음으로 프로젝트 팀장을 담당했고 중간 관리자의 고통을 이른 연차에 느낄 수 있었다. 팀을 이끌기 위해 서버 공부를 했고, IP 게임을 준비하며 콘텐츠에 대한 감각도 배웠다. 이제 적당한 직급도 생겼으니 N사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그럴리 없었다. 세 번째 탈락이었다. 역시 내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구나.
검은 왕궁의 왕자님이 되어 회사를 다녔다. 이번에는 사내 정치의 한 가운데 였다. 어떻게든 사내 정치를 막아보려고 고군분투 했지만, 선을 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지긋 지긋한 주도권 싸움. 그 과정에서 3D 그래픽과 스케일 폼을 배웠고, UML과 VBA, 디자인 패턴, LUA 등을 스터디 했다. 유일한 약점이었던 그래픽 스킬까지 얻게 되었다. 조금 더 업그레이드 된 자신감으로 N사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네 번째.
언리얼 엔진으로 밀리터리 TPS 게임을 만드는 회사로 이직했다. 링크 매니져라는 직군으로 기존에 알던 각각의 기술들을 중간에서 통합 관리하고 머지하는 일을 담당했다. 직원 한 분 한 분이 나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졌기에 선택한 업무였다. 그 과정에서 각 모듈과 리소스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가 생겼다. 서버 팀장님에게 어설프게 알던 서버를 조금 더 배웠고, 테스트 로그를 분석하는 일도 담당했다. 조금 더 전문성이 생겼다. 이쯤이면 N사 수준이 되었을까? 아무리 N사라고 해도 이 회사 직원 분들 보다는 못할 거라는 이상한 자긍심이 있었다. N사에 다섯 번째 지원을 하려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던 중에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N사 인사팀 ㅇㅇㅇ 입니다."
여섯 군데 회사를 다니며 꾸준히 레벨업을 해온 나. 하늘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일까? 꿈에도 그리던 N사에서 먼저 연락이 오다니.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서 답장을 전송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어느날. N사 지하 미팅 룸에서 당황한 채 계산기를 두드렸다. 설마 직군 면접에서 수학과 통계를 물어볼 줄이야. 이미 모르겠다는 답변을 여러번 한 뒤였다. 면접을 망쳤다는 생각과 함께 이상한 도전 의식이 생겼다. 역시 N사의 벽은 높다. 그렇기에 이 벽을 넘었을 때의 쾌감은 더할 나위 없이 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