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만 채울 수 있다면 뭔들
“오빠는 솥밥 좋아하잖아.”
“내가? 아 그렇구나. 수리에게는 솥밥이군.”
신기한 일이다. 주변 사람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다르게 생각한다. 돈가스, 떡볶이, 장어, 스파게티, 깐풍기, 메밀, 비빔밥, 규카츠, 라면, 설렁탕, 햄버거, 쭈꾸미, 치킨, 순두부, 곱창, 순댓국 등. 이쯤 되면 스스로도 헷갈린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뭘까? 친구에게 묻자,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너 음식에 관심 없잖아? 정답! 딱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호불호가 없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연애를 할 때면 상대의 입맛에 맞출 수 있고, 고깃집에서 양파와 상추만 먹어도 만족하기에 딱히 음식으로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즈니스나 회사 생활도 편하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는 척하면 되니까. 어느 정도냐면 전문 용어로(?) 맛치에 가깝다. 심지어 예전에는 빨간색 찌개를 먹으면 이 것이 김치찌개인지 된장찌개인지, 부대찌개 혹은 순두부찌개인지 구분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애초에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시절이었으니까.
집이 어려워진 중학교 시절.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다. 아니, 가져가지 않았다. 학폭을 당했기 때문이다. 나의 도시락은 당연히 빼앗기거나 버려졌다. 어차피 못 먹을 텐데 동생이 조금이라도 더 먹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해서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단순히 사춘기의 반항이라고 생각하셨겠지. 점심시간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매점으로 달려갔다. 지금처럼 급식이 없던 시절의 점심시간 매점은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매점 아주머니는 항상 힘들어했고 그 틈을 파고들었다. 점심시간의 폭풍은 초반 10분 정도이다. 그때 일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초코파이 하나를 요구했다. 매점 아주머니는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매점에 있는 동안은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석 이조의 효과였다. 매일 초코 파이로 점심을 때우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급여(?)가 종종 빵으로, 때로는 라면으로 변화했다. 동정심인걸 알면서도 일해서 번 음식이라는 합리화를 하며 뻔뻔하게 받아먹었다.
매점 안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라면을 먹는 친구들이 있었다. 사발면 포장지로 깔때기를 만들어 들고 돌아다니며 한 젓가락씩 받아먹었다. 가끔은 먹기 싫은 반찬인데 버리기 아깝다며 깔때기 위에 부어 주기도 했다. 역시 동정심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내가 먹어줌으로써 음식 쓰레기를 줄여 환경을 보호한다는 합리화를 했다. 매점에서의 알바 아닌 알바는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집 근처 편의점 알바생 형님은 날짜가 지난 폐기 음식들을 챙겨두었다가 건네주곤 했다. 종종 도시락을 받는 대박 날이 있었기에 조금 돌아오더라도 귀갓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괜찮은 반찬이 있는 도시락이 남을 때면 오는 길에 사 왔다며 동생과 어머니에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날짜가 지나긴 했지만 유통 기한과 유효 기간은 다르니 괜찮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폐기를 챙겨주던 형님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날카로운 인상의 대학생 누나가 일을 했는데, 형님이 말을 해둔 것인지 계속 폐기 시간이 된 음식을 챙겨주었다. 나중에 편의점 알바를 하는 누나를 사귄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매번 남는 음식을 챙겨주었고 20대 초반에 춤을 추던 시절에도 폐기 삼각 김밥을 챙겨주는 팬들이 있었다. 내가 직접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폐기 음식들을 먹기도 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참 신세를 많이 졌구나. 왠지 편의점 점주님들에게 한턱 쏴야 할 것 같네.
대학생이 되며 음식점에서도 알바를 했다. 못생긴 외모 탓인지 대체로 홀이 아닌 주방으로 보내졌는데 주로 설거지를 했다. 다 먹은 식기가 들어올 때면 아예 손을 대지 않은 밑반찬들이 종종 있었기에 허락을 받아 반찬 통에 담아 왔다. 왜 그런 구질구질한 짓을 했냐고? 대학 시절은 가장 돈이 쪼들리던 시기이다. 가족 생활비뿐 아니라 동생의 대학 등록금도 준비해야 했으니까. 심할 때는 천하장사 소시지 하나를 5 등분해서 일주일을 버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버리는 반찬을 조금만 모아도 충분히 끼니가 되었으니까. 뭐, 환경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치자. 어찌 보면 웬만한 환경 운동가보다 내가 나을지도?
음식에 대한 열정(?)이 생길 일은 오랫동안 없었다. 첫 회사에 취업한 이후, 월세를 내며 돈을 모았다. 어머니와 동생을 서울로 데려오려면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식사는 대부분 개굴 소대 빵과 우유 하나. 하루 한 끼였다. 가끔은 큰 마음을 먹고 짜장면을 주문하기도 했다. 알고 있는가? 짜장면은 무려 다섯 끼를 먹을 수 있다. 면 절반과 짜장 절반으로 고급스럽게 반그릇 짜장면 한 끼. 두 번째는 남은 면에 간장이나 고추장 같은 것을 뿌려서 한 끼, 세 번째는 남은 짜장 소스를 죽처럼 떠먹는 한 끼, 네 번째는 단무지만으로 한 끼, 다섯 번째 양파로 한 끼. 가끔 국물을 주는 중국 집이면 여섯 끼를 먹었다.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2년 만에 동생과 어머니가 함께 살 수 있는 빌라를 구할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다소 비굴하게 느껴졌을까? 뭐, 다 지난 이야기이다. 이제는 한 끼에 수십 만 원짜리 오마카세나 파인 다이닝 까지 가기도 하니까. (물론 가끔이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한 번씩 비싼 음식을 먹게 되었다. 똑같은 메뉴인데, 어디는 5천 원이고 어디는 8천 원, 만 이천 원짜리 가게도 있었다. 같은 메뉴면 당연히 저렴한 가게가 인기가 많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비싼 가게에 사람이 더 몰리는 것에 의문을 느꼈다. 이 차이는 무얼까? 예능에서 자주 나오는 맛의 차이라는 걸까? 인기의 비결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맛에 집중하게 되었다. 게임 기획 지망생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나의 기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기준이 중요하다고. 내가 재미있는 게임보다 타인에게 재미있는 게임을 학습하라고. 내가 보기에 더 나은 판단이나 결정이 타인에게는 아닐 수 있다고.
나에게는 별로인데, 인기가 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한동안 그것만 먹는다. 타인의 기준을 파악하는 것이 게임 기획자인 나에게는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몇 년 전부터는 조금씩 맛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덕분에 이제는 눈을 감고 후루룩 마셔보면 이 빨간 국이 부대찌개인지 순두부찌개인지 김치찌개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못 느껴온 만큼 새롭고 좋은 맛을 많이 경험해 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좋아하는 음식 메뉴가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