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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드맥스 Jul 15. 2024

Tea time

전에 살던 곳에서 이사할 때 시부모님이 화분 식물들을 옮겨주려고 벤을 몰고 오셨다. 나는 당장 사용하는 것들만 빼고 모든 짐을 싼 상태였고 이사 전날 마지막 부엌짐을 싸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당장 가서 쓸 부엌짐은 짐차에 말고 승용차에 실어서 가져가는 게 편할 거라 조언해 주셨다.

내 생각에도 짐이 한꺼번에 도착하면 복잡할 테니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근데 당장 필요한 부엌짐이 뭘까 생각해 봐도 알쏭달쏭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모호했다.

밥은 시켜 먹기로 했고... 물컵? 물컵정도를 따로 빼놀까 생각했는데 정답은 물컵이 아니었다.

타임을 위한 도구들이 정답이었다. 이사하는 날이니까 티를 머그에 마시는 게 물을 마시기에도 좋으니 머그와 티를 우리기 위한 도구들을 간단한 비스킷과 따로 두는 게 시어머니가 생각하신 당장 써야 하는 필요한 짐이었다...! 티가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었다.


나의 동거인은 해외 지사 생활을 오랫동안 해 온 터라 사실상 딱 영국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반면에 시어머니는 평생을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영국 토박이다. 그래서 시부모님과 지낼 때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이런 영국스러움이 재미있다. 둘이서만 지낼 땐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놀러 오실 때 내가 매일 해야 하는 주요 임무 중에 하나는 차 준비다.


집 앞에 작은 공사현장이 있었다. 보통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공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소머즈 귀를 갖은 나도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근데 그 공사장은 묘하게 나를 그렇게 매일 일찍 깨우면서도 10시가 좀 넘으면 이, 삼십 분 간 잠잠해졌다. 점심시간도 따로 있어 처음엔 이유를 짐작조차 못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건 아마 티타임이었던 거 같다.

- 그렇지. 그렇게 중요한 티 타임을 놓쳐선 안 되는 거지.


나를 가끔 헷갈리게 만드는 단어 tea는 지역에 따라 이른 저녁의 가벼운 식사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늦은 오후에 It's time for tea 하면 차를 마시자는 건지 저녁을 먹자는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하여간 여기서 차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인 것 같다. 얘기가 필요할 땐 티를 먼저 준비한다. I'll put the kettle on 은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 영국에 이사 왔을 때 길에서 카페보다 티룸을 더 많이 볼 수 있어 이색적이라 느꼈던 기억이 난다. 티룸에는 크림티라는 메뉴가 있다. 크림을 티에 올려 마시나? 어지간히 크림쟁이들 인가보다 싶었다.

하지만 추측은  정답이 아니었다. 크림티는 버터, 잼이나 처트니, 크림이 올려진 스콘 + 차를 뜻한다. 


잼을 올려 먹는 티는 sweet cream tea, 치즈스콘에 크림 치즈와 처트니를 올려 먹는 티는 savoury cream tea라고 한다. 우리 집에선 스위트크림티를 먹을 때 스콘을 둘로 나눠 버터링 한 후 잼을 바르고 휩트 더블 크림을 얹는다. Devon에서는 클로티드 크림을 덮기 때문에 그 위에 잼을 얹어 먹는다고 한다.

나는 보통 스위트크림티보다는 세이보리크림티를 선호한다. 내가 집에서 직접 처트니를 만들 땐 매운 고추도 추가하기 때문에 정말 맛있다. 밭에서 토마토가 익어간다. 다음 레시피는 크림티로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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