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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드맥스 Jul 24. 2024

마을 오케스트라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작지만 있을게 다 있다. 가든센터도 있고 여러 가지 DIY 용품과 재료를 파는 곳도 다. 대형슈퍼마켓도 있지만 이 지역에서 자란 식재료들을 파는 파머스 마켓도 일주일에 두 번 열린다.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파는 갤러리도 있어서 구경하거나 작품을 살 수도 있고 내 작품의 표구나 액자를 맡길 수도 있다. 여름엔 크고 작은 이벤트 많다. 지난 일요일 점심엔 푸드 페스티벌이 열려 지중해 음식과 마을 농장에서  고기로 바비큐를 즐겼다. 저녁땐 교회에서 하는 동네 오케스트라 공연에 다녀왔다. 오래된 교회들은 예배시간을 제외한 평소에 공공장소로 쓰이기 때문에 실내악 연주회 장소로도 많이 쓰인다.


교회는 시장 보러 갈 때 왔다 갔다 지나다니긴 했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매주 화요일과 일요일, 특별한 날엔 교회에서 종이 울린다. 화요일 저녁엔 종 치는 연습에 참여할 수 있는 세션이 있어 사람들의 종 치는 소리가 다채롭다. 우리 집에서 교회까지는 걸어서 십분 거리라 창문을 열면 종소리가 잘 들린다. 그래서 그냥 거기에 교회가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연주회 시간에 맞춰 교회에 갔더니 연식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육중한 나무문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장식된 건물이 보였다. 검색해 보니 13세기 후반에 지어진 1등급 등재 건물로 오랜 시간 동안 확장되고 보수되어 왔다고 한다. (영국에서 등록 건물이라 함은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등급을 나눠 법정목록으로 지정하고 특별한 보호를 하는 특정한 건축 또는 보호 구조물을 뜻한다.)


이 교회는 팔만대장경이 완성되고, 삼국유사가 편찬되던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1등급 등재건물이라는 싸인 하나 없이 아직도 주일마다 예배가 있고, 축제기간에 공연도 하며 평소에는 마을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공공건축물로 운영되고 있다. 운치 있고 예쁜데 모두를 위한 공동체에서의 쓰임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클알못이지만 들으면 그냥 좋다. 우리 마을 오케스트라는 연령 제한 없이 구성되어 있고 1년에 3번 봄, 여름, 가을에 공연한다.



일요일에 다녀온 여름 콘서트는 Gordon Jacob로 시작되었다. 목관 악기와 금관악기가 아른하게 연주하며 시작되는 작품이. 영국 민요를 작가의 색으로 재탄생시킨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어디가 영국민요스러운 건지 모르겠지만, 동거인 말로는 아주 영국스러운 곡이라고 한다.

다음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솔로이스트 Tabitha Appel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 초대되어 함께 하는 공연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오케스트라는 악기가 많아 큰 공연장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늘 큰 뮤직홀 연주회였다. 그런 이유로 나는 소규모로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실내악연주회를 선호했었는 콘서트로 인해  선입견이 깨져버렸다.

교회 좌석 맨 끝자리에서도 연주자들과의 거리는 20미터 남짓이다. 그런 아담한 공간에 오케스트라가 꽉 들어차서 연주되는 차이코프스키는 상상도 못 해봤다. 더구나 교회여서 그 음향 효과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당연히 집에서 듣던 차이코프스키가 아니었다.


참고:  https://commons.m.wikimedia.org/wiki/File:Young_Mendelssohn.png

멘델슨을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났다. 사실 내가 이 연주회에 온 목적은 멘델슨이었다. 나는 멘델슨을 좋아한다. 전 유럽에서 영향력 있는 금수저였던 이분은 재능 있고 똑똑하며 잘생긴 데다가 성격도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그림도 잘 그리는데, 음악도 잘하고, 언어적 재능도 뛰어나 라틴어 번역서도 쓸 정도였다고 하니 팔색조의 매력을 멘델슨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겠다.

그런 배경을 생각하고 들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그의 초기 음악은 다 가진 자의 관대함에서 나오는 그 특유의 밝음이랄까, 경계가 없는 상상력이랄까. 음악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 그런 느낌이 드는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많이 좋다.


두 거장의 작품들이 모두 너무 유명해서 유행곡 마냥 어깨가 들썩거렸다.  불편하기로 소문난 교회 나무의자, 그것도 맨 뒷자리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했다. 그야말로 귀가 누린 호사였다. 그날 저녁은 여러모로 들떠있는 감흥을 주체 못 해 거실 오디오로 연주회에서의 곡들을 몇 번이고 감상했다.




그날의 곡들을 다른 연주 버전으로 공유해 본다.


Jacob: Old Wine in New Bottles

https://youtu.be/ajdqWck1szg?si=H1_6CX7AawDOdysi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https://www.youtube.com/watch?v=-Jtzq55kcQI


Mendelssohn: Violin Concerto E Minor, op.64

https://youtu.be/P9WBLT1Ebj0?si=n_Kkzo2Khs-Iw2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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