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been a hard day..'s night

The Beatles - A Hard Day's Night

by 갈매나무



추석에도 이미 마음이 심란했는데, 추석이 지나고 나니 마음이 심란한 일들이 자꾸만 더 생긴다. 단순히 마음먹기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이 요동치는 느낌이랄까.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고, 당장 해결 못할 여러 가지 해결 과제들도 머릿속에 산적해 있다. 머리와 몸을 그렇게 쉴 새 없이 굴리고 나면 어느덧 밤이 된다. A hard day's night의 연속이다.



이 노래의 제목은 링고 스타의 말실수(?)를 계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는 바쁜 하루를 보내며 'It's been a hard day'라고 말을 하다가, 어느덧 밤이 된 것을 알고는 '.. night'를 덧붙였다고 한다. 그 일화가 꼭 요즘의 내 모습 같아 웃음이 났다.



사실 이 노래를 예전에 한동안 많이 들었는데 근 몇 년 간은 아예 잊고 살았다. 그런데 엊저녁 마른 그릇들을 정리해서 찬장에 넣는데 문득 이 노래가 기억이 난 것은 우연일까, 무의식 속의 무언가가 꿈틀거렸기 때문일까. 아무튼 이 노래가 주는 상상을 글로 써 내려가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쉬웠다. 그건 아마 아래에서 묘사한 찌들어가는 한 남자가 사실은 가면을 쓴 나와 같아서인지도 모른다.



https://youtu.be/zx2TFk0vh1I?si=zdN8RmE9wySvFE-f




쿵.

장면이 시작되면 너저분한 책상 위, 가득 쌓인 서류들 사이로 노트북과 펜, 서류 낱장 몇 개가 펼쳐져 있다.





멍하니 앉아 입을 반쯤 벌리고 허공을 바라보는 비썩 마른 남자. 십 년 넘게 숱하게 입고 빨아 희끄무레해진 검은 셔츠와, 군데군데 보풀이 일어난 갈색 코듀로이 정장을 입고 체념한 듯 앉아 있다.



몇 초를 그러고 앉아 있다가 스스로 정신 차리자는 듯 고개를 몇 번 휘젓는다. 그러더니 노트북 키보드를 한번 탁, 쳐서 화면 보호기를 푼다. 마우스는 어디에 갔는지 모르겠다. 널려 있는 서류를 여기저기 들추어 본다. 그러는 동안 높게 쌓여 있는 서류 뭉치를 툭, 건드렸다. 속절없이 책상 아래로 와르르 쏟아진다. 분통이 터지지만 화만 낸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 하나하나 줍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쪼그려 앉아 서류를 줍고 일어나니 오래 입어 흐질해진 바지 무릎이 더 늘어났다. 볼 사람도 없지만 괜히 한번 바짓단을 당겨 매무시를 해본다.



자리에 다시 앉는다. 주저앉듯 앉았지만 그만큼 의자가 푹신하지는 않다. 마우스는 낱장 서류 아래에 있었다. 마우스를 좌우로 흔들어 화면 속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일을. 하지만 남자는 일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내려오는 일을 하는 사람 정도.



그래도 누군가 자기를 알아주길 바란다. 화려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창 밖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 티도 안 나는 일을 할 뿐이지만, 혹시 이 늦은 밤에 누구라도 미처 챙기지 못한 소지품이라도 가지러 사무실에 들른다면, 그래서 내가 여기서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것을 안다면 인정의 눈빛이라도 보내겠지 생각한다. 그래서 자세도 고쳐 앉아 보고, 창문에 모습을 비추어 푸석한 머리도 손으로 빗어 넘겨보고, 작은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출입문 쪽을 바라본다.



그렇게, 그렇게, 밤새 아무도 올 일이 없다는 것도 모른 채...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