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가 단어의 뜻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가장 최근의 것은 '익숙함'. 사전적 의미를 구태여 찾아본 적이 없는, 너무나 일상적인 단어다. 그런데 뜻을 풀어서 설명하려니 순간 말문이 막힌다. 몇 초간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알아듣기 쉽게끔 설명하려고 한다. '익숙하다는 건, 어떤 것을 정말 많이 경험해서 낯설지 않다는 거야.' 그런데 설명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경험했다는 게 뭐예요?' '낯설다는 게 뭐예요?' 여섯 살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면 어떤 단어가 가장 적절할까 고민한다.
어휘력이란 뭘까. 표준국어대사전은 '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얼핏 생각하면 어휘력이 좋다는 건 어휘를 많이 아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단어의 뜻을 설명해 주면서, 좋은 어휘력을 위해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휘를 많이 아는 것을 넘어 듣는 사람, 나아가 상황을 고려해 적절한 수준의 어휘를 선택할 줄 아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 능력은 단순히 아는 단어를 늘리는 것처럼 간단하게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어휘력은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가끔 필요 이상으로 어려운 단어를 섞어 말하는 경우를 본다. 정말 어휘를 잘 구사하는 것은 면접에서 정장을 입고 침대에서 잠옷을 입는 것처럼 각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을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과도하게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을 보면 꼭 정장을 입고 산책을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령 명품 정장이라고 해도, 상황에 맞지 않게 입으면 득보다 실이 많을 뿐이다.
얼마 전 유행한 신조어로 '판교어'라는 게 있다. 이는 IT업계에서 사용되는 독특한 말투로, 영어와 한국어를 혼용한 줄임말을 쓰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 신조어에는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업무 효율을 위해 관행적으로 쓰는 것을 넘어 그것이 지성의 척도인 양 타인을 소외시키는 행태를 두고 빈축을 사는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판교어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구사하는지는 몰라도 그것을 모르는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이 어휘력이 좋을 리가 없다. 자신의 말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분위기가 어떻게 흐르는지 파악도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어휘력이 좋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그저 자아도취에 빠진 현학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의 어휘력은 어느 정도일까. 어휘력을 늘리려고 신문도 읽고 글을 쓸 땐 사전도 찾아보지만, 가끔씩은 특정한 상황에 어울리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는데 명확히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손이 닿지 않는 곳이 간지러운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말과 글에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살아왔지만 이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 상황에 맞게 내가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는지 확신이 없다. 뒤돌아 생각했을 때 '그 말은 어울리지 않았어' 하고 종종 후회를 하는 걸 보면, 아마 어휘력 향상은 평생의 숙제인 것 같다.
그렇기에 계속 나는 무지의 벽에 부딪혀 볼 생각이다. 내 세계 속 언어에만 머무르다 보면 다른 세계와 조우할 수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 진심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계속 자각해야 한다. 이 축복받은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도 있지만 아쉽게도 난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읽고, 쓰고, 용기를 내 말을 걸어 본다. 내일은 아이의 질문에 더 정성 들여, 신중하게 대답을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