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 증가에 따른 사고의 외주화 관련으로..."
"며칠 전 남자친구와 헤어짐 이슈로..."
낯설지 않은 구조다. '~관련', '~이슈'. 최근 들어 단순한 친목글에서부터 공식 문서에서까지 저 '관련'과 '이슈'라는 단어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쩐지 저 단어들이 쓰인 문장은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문장의 핵심, 그리고 문장을 잇는 다양한 흐름이 두 음절 뒤에 가려져 있는 것만 같다.
언어에 따라 세계의 해상도가 달라진다는 것, 그것은 내 지론이다. 다시 말해 사용하는 언어의 폭이 넓어질수록 세계의 해상도는 높아지고, 해상도 높은 세계에서 삶은 더욱 생생하고 다채로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새 들어 더 자주 보이는 저 단어들은 마치 문장 전체의 해상도를 낮추어 놓는 것만 같다. 저 단어가 적확한 것인지 생각한다. 그저 관련일 뿐일까, 하나의 이슈일 뿐일까. 문장을 끝까지 읽어 보고는 저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해 본다.
물론 그 단어들이 쓰였다고 해서 틀린 문장인 건 아니다. 관련이 있기 때문에 관련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상만사는 크고 작은 이슈인 것도 맞다. 저 단어 말고는 달리 대체할 말이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관련'이나 '이슈'같은 단어들은 전후 문장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사안에 대한 시각이 어떤지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고 외주화로 인한 사회 현상이 이어질 것인가? 혹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논하려는 것인가? 헤어짐 이슈 뒤에 오는 문장은 헤어진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는가, 혹은 하나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는가? 알 수 없다. 대신 얻는 점은 글을 쓸 때 조금 더 수월은 하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물론 내용의 핵심과 인과관계 등을 짧은 문장으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나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세계의 해상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김영하 작가님은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소설을 쓸 때 '짜증 난다'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서운하다', '당황스럽다'와 같은 다채로운 감정을 하나로 뭉뚱그리는 표현이라는 이유에서다. 마찬가지이다. '관련'은 '그래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다양한 접속사들이 선사하는 문장의 색채를 앗아간다. '이슈'는 사안에 대한 감정의 농도를 희석시킨다. 문장에는 의견과 감정이 깊게 담기지 못한다.
삶은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삶의 매 순간은 '그러므로', '오히려', '게다가' 등의 연속이다. 우리는 그것들로 인해 웃기도 하고, 눈물 흘리기도 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세밀하게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더 해상도 높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편리함을 위해 삶의 다양한 맥락을 그저 '관련'으로 이어갈 것인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일들을 그저 '이슈'로 치부할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