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한번 무작정 적어보기
사고 싶은 것을 무작정 적어보는 것은 나의 자기 보호 루틴의 마지막 단계이다.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상처를 입거나 공허해졌을 때, 혹은 내가 나를 소중히 대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이제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한번 돌아봐주자는 생각이 들 때, 나는 펜을 들고 내 일기장에 무작정 내가 사고 싶었던 것들을 적어 내려가보았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지금은 펜이 아니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있고, 일기장이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는 브런치에 쓰고 있을 뿐이다.) 다 적고 나서는 항목 하나하나에 이것을 내가 몇 살 때부터 사고 싶었는지를 적어보면, 새삼스럽게 정말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고 스스로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우선 이 노트북에 대해 말해보자면, 나는 3년 전에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사려고 큰 마음을 먹었고, 애플, 삼성, LG도 아닌 사람들이 이름을 들어도 잘 알지 못하는 브랜드에서 최저가로 30만 원정도에 이 노트북을 샀다. 그래서 내 노트북은 많이 무겁다.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갈 때 어깨가 너무 아파서 양손으로 가방을 붙들고 갈 정도이다. 사실은 대학생 때부터 또래들이 누구나 쓰던 맥북, 에어팟 같은 전자기기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러나 취직을 하고 돈을 계속 벌어왔음에도 여전히 고가의 전자기기들이 내게는 과분하고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그토록 애플 사의 아이패드가 가지고 싶어서 사려고 마음을 먹고 돈을 모아두고서도, 막상 사려고 하니 너무 그 돈이 아까워서 결국 10만 원대의 태블릿을 사고 말았다. 에어팟도 4년 전 우연찮게 선물로 받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줄이 대롱대롱 달려있는 이어폰을 쓰고 있을 '나'다.
게다가 나는 내가 밥 먹는 돈이 항상 아깝다. 한 번은 너무 배가 고파서 집 밖으로 나왔는데, 음식점 한 곳 한 곳을 쳐다보며 메뉴의 가격을 보고는 돌아서고, 또 가격을 보고는 돌아서고, 그렇게 1시간을 거닐다가 집 앞으로 돌아와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은 적도 있다. 그때 편의점 아주머니가 "그거 가지고 배가 차겠어요? 하나 더 줄 테니까 가져가요."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아마 내가 계속 길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창문 너머로 보셨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정말 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단지 돈이 너무 아까웠을 뿐이었다. 요즘은 혼자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데 물가가 너무 올라서 쿠팡에서 가장 저렴한 냉동 볶음밥을 사서 평일마다 계란과 함께 먹는 중이다. 가끔 볶음밥이 물리면 편의점에서 2천 원대 김밥을 사 먹는다. 요즘은 국민 식당이었던 김밥천국의 김밥도 많이 비싸졌더라.
중고등학생 때, 학교 친구들이 고가 브랜드의 바람막이를 사서 교복 위로 찰떡 조합을 만드는 것이 나는 그렇게도 부러웠다. 그 마음이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인지, 찬 바람이 부는 날씨가 될 때마다 브랜드 있는 바람막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10년 넘게 사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제 백화점에서 나름 이름 있는 브랜드의 바람막이를 타임세일하길래 3만 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아주 평범한 검은색 바람막이를 샀다. 나는 너무 행복했다.
내가 돈이 없나? 아니 있다. 적어도 내가 듣는 내 또래 친구들, 내 직장 동료들 모두보다 내가 더 많다. 그마저도 아빠에게 작은 돈이나마 보태서 차 사준 것과 현남편이 아직 남자친구였던 시절 취업이 어려워서 기술을 배우게 하려고 천만 원이 넘는 돈을 학원에 투자했던 것을 제외하면 더 많이 모았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정말 간절히 하고 싶었던 것은 포기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선택들은 대부분 나에게만 가장 짜고, 쩨쩨하다.
나야,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만 이러는 거니?
그래. 들어줄 수 있으면 들어줄 테니까 어디 한번 사고 싶은 것들 생각나는 대로 싹 다 적어봐.
1. 아이패드
-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2. 맥북 혹은 LG그램
- 이름 같은 거 잘 모르겠고 그냥 카페 가져갈 때 좀 없어 보이지 않고 가벼운 거면 다 좋으니까..
3. 에어팟 프로
- 요즘 나오는 에어팟은 노이즈 캔슬?이라는 기능이 있다고 하던데 나도 한번 누려보고 싶다.
4. 브랜드 롱패딩
- 겨울에 롱패딩 살 돈이 아까워서 항상 5만 원 정도 되는 저렴한 롱패딩을 입었다. 내년엔 꼭 사야지, 사야지 하면서 여전히 안 샀다. 한벌에 20만 원이 넘는 브랜드 롱패딩을 커플로 입어보는 게 4년째 소원인데, 아마 올해 겨울도 그 소원은 못 이룰 것 같다.
5. 브랜드 운동화
- 운동화 좀 예쁘다 싶으면 다 10만 원이 넘더라. 그래서 무조건 세일하고 저렴한 것만 샀다. 근데 사람이 나이 들수록 옷이 저렴하면 없어 보이고, 신발은 특히 그렇더라. 그럼에도 매 순간 사지 못하고 있다.
6. 계절에 맞는 예쁜 옷
- 어떤 계층의 사람들은 계절이 바뀌면 옷을 다 버리고 새로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나는 학생 때 입던 옷들도 입을 수만 있다면 여전히 입고 있기 때문이다.
7. 미용실
- 항상 염색은 집에서 했다. 1년에 한 번 정도 정말 머리가 너무 부스스하고 산발이다 싶을 때 매직을 한다. 어떤 친구들은 한두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손 본다. 찰랑이고 영양 가득한 머릿결이 늘 부러웠다.
8. 가구
- 테이블은 '오늘의 집'에서 특가 할인할 때 의자까지 합해서 5만 원이 안되게 샀다. 3년 썼더니 이제 덜그럭거리고 흔들린다. 그럼에도 계속 쓰고 있다. 어찌 되었던 밥은 먹을 수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소파도 당근에서 중고로 8만 원에 샀고, 침대는 직장에서 사내포인트 줄 때 샀다. 모든 가구를 항상 이런 식으로 산다.
이쯤 되니까 내가 너무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나 그 돈 하나하나 모아서 이번에 집을 샀다. 신축이고 브랜드 평판 1순위의 아파트이다. 지금 받을 수 있는 금리 중 가장 최저금리로 고정금리로 샀을뿐더러 주변 시세보다 1-2천만 원가량 저렴하고 옵션 다 딸려 있는, 수영장 있고 사우나 있는, 그런 브랜드 아파트로 샀다.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돈돈"거리면서 살아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 누구보다 오래오래 마음의 여유 있게 살려고.
내가 1만 원을 아끼면 1.2만 원짜리 배당주 1주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눈앞에 예쁜 옷을 포기하면 이 돈은 내 주식잔고에서 연평균 10% 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항상 무언가 사고 싶을 때 그 물건의 가치와 내가 나중에 이 돈을 모아서 집을 샀을 때의 가치를 비교했다. 그러다 보니 그 무엇도 가볍게 살 수 없었다.
내 직장 선배는 사내포인트가 들어왔을 때 매년 명품백을 산다고 말했다. 나는 사내포인트가 들어오면 오뚜기밥과 휴지, 세제, 섬유유연제, 바디워시, 항상 쓰는 로션 등을 쟁여두었다. 가끔 집안에 가구를 사야 될 일이 있으면 사내포인트가 들어오는 분기초까지 기다렸다가 포인트가 들어왔을 때 샀다. 나는 그 어떤 포인트도 꽁돈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쓰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마음은 죽어도 없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정도 자산이면 써도 된다고 판단이 될 때에는, 누구보다도 마음 편하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돈을 가치 있게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내 돈은 계속 불어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돈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돈은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모이게 되어있다.
물론 나도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고 싶을 때가 있지만, 큰돈이 큰돈을 불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은 절제하고 있는 것이다. 때가 되면 내가 사고 싶었던 것들 전부 다 사줄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나야. 이제 곧이니까. 그저 믿고 돈 공부를 놓지만 말아줘. 가난한 선택에 스스로 자신감 잃지 말아 줘. 못 믿겠으면 고집 세고 돈이 많다는 내 손금을 믿자. 앞으로 부자가 될 사람이 보인다며 나를 쳐다보던 교수님을 기억해 보자. 어쨌든 너 부자 될 거라고 모두가 말하잖아. 내 삶을 가장 믿고 응원해줘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야. 힘내보자. 나 자신을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