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60화
현 시각 십삼 시 사십 분. 조금만 몸 좀 풀고 들어간다는 게 벌써 사십 분이 흘러버렸다.
“이쯤이면 다들 위층으로 올라갔겠지?”
나는 내 주위를 빙빙 맴돌던 불의 나비를 거둔 뒤 마침내 탑 안으로 발을 디뎠다.
“이제 오느냐.”
육중한 문이 열리자 옅은 냉기가 나를 반겼다. 공허하기 그지없는 넓은 공간에 김 선생님이 물 속성으로 이루어진 푸른빛의 의자에 앉아계셨다.
“다른 대원들은 다 올라간 건가요?”
“그래. 위에 녀석들이 얼마나 날뛸지 모르니 나라도 쉽게 해 줘야지.”
쉽게, 라. 그 기준이 과연 김 선생님이실까, 나일까.
“다들 어찌나 호들갑을 떨던지…… 고막 터지는 줄 알았다.”
아무래도 김 선생님 기준인 것 같군.
“훈련 내용은 딱히 어려울 것 없다.”
자그마한 원을 그리시는 김 선생님의 손가락을 따라 허공에 작은 물방울이 형성되었다.
“이보다 크기가 큰 물방울 다섯 개가 네게 매우 찬찬히 다가갈 텐데 물방울이 네 몸에 닿기 전에 다섯 개를 전부 터트리기만 하면 된다. 시간 제약은 없어.”
김 선생님은 물방울을 꽉 잡아 터트리셨다. 펑, 짤막한 소리를 연주한 채 터진 물방울 속 들어있던 물이 김 선생님의 손을 타고 바닥으로 툭툭 털어지며 죽음의 잔해를 남기었다.
“준비됐느냐?”
“……네.”
“그럼 시작하마.”
탁. 푸른빛을 눈에 담으시며 김 선생님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시자 길게 이어지는 소리가 드넓은 허공을 가득 채웠고 즉시에 바닥에서 물방울 다섯 개가 올라왔다. 넘실거리는 물을 담고 있는 물방울은 내 발끝부터 어깨까지 올 정도로 크기가 상당히 컸다.
이 정도면 웬만한 얼음 속성으로는 얼리는 것이 불가하겠는데. 우리 인화, 안 다치고 잘 끝냈겠지?
움직이는 속도가 생각보다 느려서 피하기 수월했다. 하지만 이것도 찰나일 뿐이겠지. 서둘러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돌처럼 단단해 보이나 탄성이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방울의 막 자체도 그다지 두꺼운 것 같지도 않고. 문제는 안에 들어있는 물과 절대 만만찮게 볼 수 없는 저 물방울만의 특성.
김 선생님의 물방울은 작은 구멍이 나도 터지지 않는다. 작은 흠집 따위야 기별도 안 간다는 듯. 사소한 구멍도 겨우 낼 지경인데 완전히 터트린다는 건 당연히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승부수를 두어야 될 곳은 증발이다.
그저 평범한 불로는 물 속성을 증발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같은 속성 선상인 불 속성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게다가 저 물방울의 실체는 안에 들어있는 물이니. 막은 그저 눈속임일 뿐이다. 실존하나 실존하지 않는 허구. 물방울 안에 있는 물이 모두 소멸할 시 즉각 물방울도 사라져 버린다.
나는 불의 나비 하나를 소환해 가장 가까운 물방울에 불의 나비를 인도하였다. 물방울 안으로 들어간 불의 나비는 금방 물 속성에 꺼져가는 불 속성을 지키지 못하고 소멸하였다.
단 이 초. 불의 나비가 물방울 안으로 들어가 소멸되는 시간.
자폭 기질을 가지고 있는 불의 나비가 물방울 안으로 들어간다. 불의 나비의 불이 꺼지기 전 폭발을 일으켜 순간적으로 대량의 불 속성을 생성한다.
그럼 둘 중 하나겠지. 모조리 증발하거나, 기적적으로 터져버리거나.
솔직히 두 경우 모두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모든 것은 그저 내 지론을 바탕으로 한 이론상의 가상, 일종의 도박일 뿐이다. 하나만 걸리기를 바라는 수밖에.
가볍게 움직이던 걸음을 급작스레 틀어 구석진 곳으로 달렸다. 잠시 방황하던 물방울은 금세 방향 감각을 잡아 다시금 나를 향해 이동하였다. 짧게 숨을 내뱉은 뒤 붉은색이 침식된 두 눈을 밝게 빛내었다.
신속함이 생명이다. 절대 속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 과도한 속성 사용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가 있기에 자칫 조금이라도 멈칫했다가는 가망이 절감된다. 단 한 번 만에 확실하게 끝내야 돼.
저 정도 크기의 물방울에 꽉 차 있는 물 속성을 전부 증발시키려면 불의 나비가 일백 정도는 있어야 될 듯했다. 총 다섯 개이니 오백 마리.
오백 마리라. 그 정도로 불의 나비를 소환하는 것은 처음인데. 그것도 한꺼번에.
할 수나 있을까.
……아니, 한계를 극복하려고 훈련을 하는 것이니 이런 나약한 소리 따위는 집어치워야지. 할 수 있을까, 가 아니라 해야 한다.
속성의 서막이자 종막, 심장. 화마와 서광으로 화려하게 타오르는 심장의 이물은 불일까, 달일까. 정체성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속성은 미련에 작별을 고했다. 붙잡아 봤자 자신의 성장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을 진작 깨우쳤기에. 과거를 놓지 못하는 건 자신의 주인만이라는 것을 제 속성조차도 한심하게 바라볼까.
심장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끊임없이 흩날리는 불의 나비가 사방팔방으로 퍼져갔다. 치이이익, 불이 커져가는 소음이 뇌를 촉박한다. 물방울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살결에 쓸리는 물 속성에 냉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이걸로 오백.
끝.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력에 정신이 아찔해지던 찰나,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앙 - !
순식간에 오백의 불의 나비가 전멸하였다. 거친 숨을 힘겹게 내뱉는 사이 허공을 떠돌던 찬기가 스멀스멀 바닥에 내리 앉았다.
김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시자 물 속성으로 이루어진 의자가 물 흐르듯 사라졌다. 김 선생님의 입이 움직인다. 내게 무언갈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갑작스레 발을 들이민 빌어먹을 이명 때문에 도무지 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심히 떨리는 오른손과 저릿한 심장의 통증이 활개를 친다. 속성을 과다사용하면 원래 이런 부작용을 겪는 건가? 사부는 안 이러셨던 것 같은데. 달 속성의 영향일지도.
“도헌아!”
순식간에 자리를 떠나간 이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다급한 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저리도 급히 내 쪽으로 달려오시는 건지 의문이 들 때였다.
탁. 김 선생님의 팔에 힘없이 쓰러졌다. 욱신거리는 심장에 낮고 빠르게 호흡을 했다.
“천천히, 천천히 숨 쉬거라.”
휘청거린 모양인가. 점차 안정되는 호흡에 김 선생님의 부축을 받아 다시금 중심을 되찾았다. 조금씩 희미하게 완화되어 가는 통증에 속성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몹쓸 몸뚱어리가 일으킨 짜증이 한순간에 밀려왔다.
김 선생님의 손이 이마에 닿자 차가운 온도가 몸 전체에 퍼졌다.
“미열도 있는데.”
또 쓰러질 뻔했다. 속성의 힘을 스스로가 감당하지 못하여 또다시 부작용이 일었다. 대체 언제쯤이면 극복할 수 있을는지.
“괜찮으냐?”
“네. 괜찮습니다.”
김 선생님은 의심쩍은 눈빛으로 한참 동안 나를 잠시 바라보시다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내리 쉬셨다.
“말리진 않으마. 대신 너무 무리하지는 마.”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를 쭉 둘러보시던 김 선생님이 다시금 입을 여셨다.
“불의 나비의 자폭 기질을 이용하여 물을 증발시킨다, 라. 자폭하기 전 불의 나비에 깃든 불 속성이 전부 꺼졌으면 어쩌려고 그랬느냐.”
“불의 나비가 물 속성에 꺼지기까지 이 초 걸립니다. 물방울 하나당 일백의 불의 나비가 작은 격차를 두고 들어갔으니 모두 소멸하기까지 대략 이백 초, 제가 한 번에 불의 나비 백 마리를 소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십 초, 그 사이 앞선 물방울에 들어갔던 불의 나비 중 총 다섯 마리가 소멸됩니다. 그럼 제가 오백 마리를 모두 소환하고 마지막 물방울에는 백 마리를 한꺼번에 집어넣을 시 총 사라진 불의 나비의 수는 오십뿐입니다. 적어도 팔십 마리 이상은 물방울 안에 들어가 있는 거죠. 그 정도면 제가 극도의 차질 없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치 안에서 물방울 속 물 속성을 증발시키기에 가장 가능성 높은 수라 생각했습니다.”
설명이 끝난 후 일시 이어지는 정적, 그리고 그 뒤에 터져 나온 웃음소리.
“하하하하!”
영문 모를 김 선생님의 웃음에 의아해하고 있자 김 선생님이 내 머리에 손을 얹으신 뒤 꾹 누르셨다.
“이놈 봐라. 짧은 시간에 그 계산을 다 끝낸 거냐?”
“네.”
“하하하! 미치겠다 진짜. 성공한 거 보니 계획에 차질도 없었던 거네?”
“맞습니다.”
기특해…… 하시는 건가……?
“솔직히 될 거라 생각 안 했어요. 지극히 이론만 따진 계획이라 성공할 확률이 너무 낮아서.”
“잘했다, 잘했다. 너무 잘했어.”
“감사합니다.”
거칠게 머리를 헝크시는 김 선생님의 손길에 왜인지 뿌듯함이 묻어났다.
“통과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도 돼.”
앞으로 네 개의 층이 더 남았다. 가장 난이도를 낮게 설정하신 김 선생님의 층만 겨우 통과했을 뿐임에도 인정받은 듯한 기분에 괜스레 보람찬 마음이 한가득 채워졌다.
'제8막 여름, 그리고 하계 훈련(3)'이 연재될 다음 주 월요일(2월 17일)부터는 새로운 연재 브런치북, "불의 나비 - 3"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불의 나비를 사랑해 주시는 독자님들께 더없는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