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59화
서류 받침대에 끼워져 있는 서류는 단 한 장. 유독 강하게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그 서류는 곧 있으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서류의 가장 첨단 부분에 적힌 ‘특수 속성 경호 본부 하계 훈련 계획서’, 그리고 그 옆 결재란 한 칸에 확실히 각인되어 있는 나의 직인.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서류를 반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이도헌 리더님?”
이번 하계 훈련 설명을 시작하기 앞서 문득 나를 바라본 진우가 숨길 수 없는 미소를 고스란히 내뿜었다.
“표정이 많이 안 좋으신데.”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작하시죠.”
어금니를 꽉 깨문 채 태연한 척 진우에게 대답했다.
“네, 그럼~”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는 진우가 다시금 목소리를 꺼내 보였다.
“칠월 삼십일일 특수 속성 경호 본부 하계 훈련을 담당하게 된 특경부 서진우라고 합니다. 모두 계획서 한 번씩 보셔서 내용은 다 알고 계실 텐데요. 제가 다시 한번 간단하고 빠르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서진우가 계획서를 올린 이후 훈련 당일이 오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왜 단 한 번도 훈련 계획서를 다시 살필 생각을 안 했을까.
협회 외각 중에서도 가장 외진 외각. 꼼꼼하게 확인하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진우가 엄별히 특정한 장소로 오늘 특경부 하계 훈련이 진행될 곳이다. 만약을 대비하여 아무도 들어오지도, 보지도 못하도록 최 소장님이 풀 속성을 사용하여 주위에 나무를 쫙 둘러놓으셨다.
“먼저 바쁘신 와중에도 특경부를 위해 선뜻 와주신 속성 대표님들께 특경부를 대표하여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진우의 옆에 일렬로 서 계시는 속성 대표님들을 향해 잠시 눈길을 돌리며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한 분을 제외한 모든 분이 이곳에 나와 계셨다. 당연히 아버지도.
“이번 특경부 하계 훈련은 어렵게 모신 속성 대표님들과 함께 진행을 하게 됩니다.”
옮겨가는 진우의 손을 따라간 시선에는 광대한 탑 하나가 들어왔다. 친숙하지 않은 탑은 어딘가 상당히 익숙한 빛의 찬연함을 보존하고 있었다.
저 빛은…… 달 속성?
“훈련은 이 대표님께서 달 속성을 이용하여 새우신 탑 내에서 진행합니다. 차례대로 물 속성 대표 김서준 선생님, 얼음 속성 대표 천유하 팀장님, 풀 속성 대표 최한빈 소장님, 번개 속성 대표 박제휘 협회장님, 그리고 마지막 달 속성 대표 이태호 대표님, 총 다섯 개의 층으로 대표님들의 입에서 통과가 나오면 다음 층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통과하지 못할 시 통과할 때까지 해당 층에 머무시면 됩니다. 기회는 무한대. 제가 사전에 대표님들께 부탁해서 각 층마다 해결해야 될 시련이 다 다를 거예요. 난이도만 층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좀 더 어렵게 해달라만 말씀드린 상태입니다.”
보통의 속성 보유자가 사용할 수 있는 속성은 대게 두 개, 기본적인 속성과 개인 고유의 능력이다. 그러나 속성 대표님들은 사용할 수 있는 속성의 종류라는 말을 포용하지 않으신다.
속성의 변형, 쉽게 말하자면 고유의 능력이 무한한 셈. 속성으로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 물론 달 속성과 해 속성이라는 예외도 존재하긴 하나 그 두 속성은 어떤 제약을 받아도 세계의 모든 만물보다 우위에 있으며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함을 자랑하지.
“오늘 진행될 훈련 동안 속성 대표님들은 우리 특경부를 자식이나 조카 같은 존재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특수 속성 경호 본부의 대원이라는 신분만을 부각시켜 그에 해당하는 수련을 행할 계획입니다. 속성 대표님들도 이 점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 세계에 잠든 일곱 개의 속성을 대표하시는 분들이 바로 지금 우리의 앞에 서 계시는 속성 대표님이시다. 이런 분들과 훈련이라니. 대단히 영광스러운 기회이긴 하나 그만큼 굉장히 위험도도 높았다. 대표님들이 정말 진심을 다해 임하시면 목이 날아가는 건 당연히 한순간이다. 아니, 굳이 진심까지 다하지 않으셔도 사람 몇 명의 목 정도야 기꺼이 가볍게 날리시겠지.
뭐, 우리를 상대로 힘을 쓰긴 하시겠냐마는…….
“오호라, 특수 속성 경호 본부의 대원이라는 신분만을 부각시킨다, 라.”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시며 박 협회장님이 말을 이으셨다.
“정말 감당 가능하겠느냐.”
장난으로 하신 그 말씀이 진심으로 바뀔 때에는 얼마나 큰 압도감을 떠안고 있을까. 감히 상상도 안 간다.
“적당히 해라, 적당히. 괜히 애들 겁주지 말고.”
최 소장님의 견책에 박 협회장님이 너나 잘해, 라며 받아치자 신경전이 오고 가는 잠깐의 침묵 뒤에 곧바로 두 분의 투닥거림이 이어졌다. 마치 어린애처럼 유치하게 서로의 말을 받아치셨다. 얼마 못 가 천 팀장님의 협박과 가까운 중재에 끝나고 말았지만.
진우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전력이라는 축에 조금도 끼지 못할 미약한 힘을 사용하실 겁니다.”
그쵸? 라 물으며 고개를 돌리는 진우의 눈에 어째선지 묘하게 신나 보이시는 박 협회장님의 모습이 담겼다. 삼 초간의 멈춤 끝에 진우는 자, 한마디를 시작으로 급히 말을 돌렸다.
“이번 하계 훈련의 초점과 향상될 주요 능력은 신속한 상대 파악과 상황 대처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의 허점을 찾아 사물이든 지형이든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이용하여 반격하는 것이 핵심!”
잠시 말을 멈춘 진우가 갑자기 무언갈 곰곰이 생각하였다. 진우는 한참을 고민하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마지막에 들어간 대원까지 훈련을 전부 끝마치고 나면 모든 층을 통과하지 못한 대원은 머물러 있는 해당 층별로 추가 특훈이 있을 예정입니다.”
“뭐? 추가 특훈?!”
그렇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 빤히 쳐다봐도 소용없다, 박인혁. 서진우한테 훈련 담당 부탁할 때 계획서를 결재하면 그 뒤로는 아무것도 참견 안 하겠다고 조건을 걸었어서 이 훈련은 이제 내 관할 밖이야.
실언이지……. 인혁도 망연자실한 내 두 눈을 보고는 이내 포기한 듯 탄식을 짧게 허공으로 떠나보냈다.
기나긴 설명이 막을 내리고 진우가 후,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면 현 시각 십삼 시, 특수 속성 경호 본부 하계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속성 대표님들이 먼저 탑 안으로 들어가셨다. 이제 각 층에서 우리를 대기하고 계실 테지.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다들 이 악물고 힘 조절할 거니까.”
혹여나 모를 치료를 위해 이곳에 오신 엄마가 대원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걸어오셨다.
“근데, 박 협회장이 조금 많이 신났거든. 오랜만에 속성 좀 써본다고. 너희들 다치면 시말서 쓰기로 해서 다칠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들 해.”
거대한 탑을 빤히 바라보던 이현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이담 이모, 저기 탑에 층 순서 무슨 기준으로 정하신 거예요?”
“힘 조절 잘하는 순대로.”
오, 이현이 짧게 내뱉자 뒤이어 이후가 입을 열었다.
“훈련 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자리 오랫동안 비우셔도 괜찮아요?”
“비서 팀 애들이 각자 잠시 자리 지켜주고 있어서 괜찮아. 오구, 우리 이후 그런 거까지 걱정해 주고 다 컸네? 이뻐라~”
엄마가 이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셨다. 이후는 부끄러운 듯 볼을 상기시키면서도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나는요, 이모?”
“아이, 우리 이현이도 당연히 이쁘지~”
이현의 머리도 덩달아 쓰다듬으시자 이현이 헤실거려 보았다. 엄마의 양옆에 있던 쌍둥이는 불현듯 눈이 마주쳤다. 잠시 눈빛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전에 하교할 때 신상 디저트 집에서 본 타르트 세트?”
“콜.”
“그럼 우리 먼저 들어간다! 다녀오겠습니다!”
쏟아붓듯 한마디 휙 던지고 쌍둥이들이 가벼운 뜀걸음으로 탑을 향했다. 끼익, 쾅! 탑의 문이 열리고 닫힐 때까지 대원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쌍둥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기 중독자들.”
탑 안으로 모습을 감춰버린 쌍둥이를 보던 이준 형의 못 말리겠다는 듯한 웃음소리와 더불어 연희가 말했다.
“나도 먼저 갈게.”
“연희, 같이 가.”
유유히 탑으로 발을 움직이는 연희의 옆을 인화가 따랐다. 불현듯 잊어버린 것이라도 생각이 난 건지 인화가 “아!” 목소리를 꺼내고 뒤를 돌아보았다.
“기다릴게, 오빠!”
배시시 웃으며 나를 향해 한 손을 크게 흔드는 인화에게 옅은 미소를 짓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휴, 염병 천병을 다 떠네, 진짜.”
인화와 나를 보고는 잔뜩 심기가 불편해진 채 중얼거리던 인혁이 문득 진우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아하하, 아, 몸이 좀 안 좋네. 난 이번만 열외로…….”
진우는 슬금슬금 도망갈 각을 재는 인혁을 빤히 바라보더니 한마디로 그의 의지를 불타게 했다.
“쫄았나 봐?”
“…….”
인혁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넌 뒤졌다 이제. 딱 봐.”
자존심은 또 더럽게 세지.
사전에 짜기라도 한 듯 진우와 인혁이 곧장 빠르게 탑으로 향하였다. 이제 남은 사람은 이준 형과 선아 누나, 그리고 나뿐이었다.
“넌 같이 안 가?”
누나가 넌지시 물었다.
“도헌이 마지막에 들어갈 거 아니까 미리 들어간 걸 거야.”
인혁과 진우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한 형이 나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아, 준비되면 천천히 들어오라는 거구나. 귀엽기는.”
저 녀석들은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아챈 건지, 평소에는 그렇게 눈치가 없는 자식들인데. 역시 세월은 무시 못 하나.
“우리 선아는 엄마랑 따로 특별 훈련하자.”
엄마는 누나의 팔에 팔짱을 끼시며 부드럽게 웃음을 띠셨다. 누나를 위해 해 속성에 관한 훈련을 따로 준비하신 모양인가.
“아, 양옆에 쌍둥이 두고 머리 쓰다듬었다고 최 소장한테 자랑해야겠다.”
“한빈 삼촌 완전 질투하시겠는데.”
최 소장님을 놀리실 생각에 엄마가 웃음을 지으시고 누나와 대화를 나누셨다.
“도헌아, 형이 먼저 들어갈까?”
형의 물음에 나는 작게 주억거렸다. 너누룩이 걸음을 옮기는 형의 뒷모습이 탑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도 내 발은 망부석이 다름없었다.
“이도헌 긴장했네?”
무심결에 나와버릴 뻔한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누나는 미소를 유지한 채 덧붙였다.
“그렇게 무뚝뚝하고 차가운 애가 왜 유독 아빠 앞에서는 엄청 긴장을 할까.”
“그것도 아빠 닮아서 그래.”
등에 슬며시 얹어지는 엄마의 온기 어린 손길이 긴장에 절여져 굳어버린 몸을 조금이나마 녹였다.
“긴장하지 말고 조심히 훈련하고 와. 괜히 무리했다가 다치지 말고!”
나는 엄마와 누나를 한 번씩 일별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