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58화
본부로 가는 길에 연희가 나에게 물었다.
“오빠, 괜찮아?”
“뭐가?”
“주먹을 너무 꽉 쥐고 있어서.”
그 말에 자연스레 손에 힘이 풀렸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까, 무슨 일 있었지? 오빠한테만.”
나는 잠시 망설이다 끝내 입을 열었다.
“우두머리를 만났어.”
나를 유인하려던 게 아니라면 왜 그가 연희를 이용하였는지, 마지막에 남긴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 아무것도 해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연희가 다칠 뻔했다. 또다시 나의 부주의로 인해 소중한 사람이 위험에 빠졌다. 왜 나는 능란히 당장 앞에 놓인 상황을 헤쳐나가지 못하는 건가,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현실에서 원망의 화살을 나 자신을 돌릴 뿐이었다.
연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또 너무 심각해진다.”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연희가 말했다.
“생각이 너무 깊어지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어. 적어도 본부 밖에선, 아니면 길을 걸을 때만이라도 생각을 멈추려고 해 봐.”
나도 멈추고 싶다. 머리만 복잡하게 뒤엉키는 생각을 그만하고 싶었으나 실군단에 대한 복수심을 상기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실군단에게 복수하고 사부를 찾는 것. 이것이 내가 지금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리고, 그러다 진짜 망가져. 요즘 오빠 너무 많이 무리하고 있는 것 같아. 우리한테 쉬라고만 하지 말고 오빠도 쉬어야지.”
“……노력은 해 볼게.”
마지막으로 생각을 멈추고 마음 편히 쉬었던 적이 언제였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젠 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마지막 휴식이 언제였든 쉬는 방법조차 잊어버렸든 다 상관없다. 나에겐 무엇보다 사부의 행방과 실군단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연희와 걸음을 옮기며 머릿속으로는 우두머리가 마지막으로 한 말에 대해 다시 되새겨 봤다.
‘공연은 곧 시작되고 커튼콜이 내려오기 전에 제국은 도래할 거야.’
공연이 시작되고 제국이 도래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말의 의미를 할 수 없었다.
나는 답답함에 그만 깊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두머리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든 그저 이 맑은 하늘이 계속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품을 뿐이었다.
“그렇게 된 일입니다.”
본부로 돌아가기 전, 아버지의 집무실에 들려 본부의 비상계단 문을 부순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아까 아버지의 집무실을 직접 찾아간 이후가 설명했겠지만은 아마 그 아이 성격상 자세한 상황 설명이 아닌 문을 시원하게 부숴버렸다든가 이게 다 실군단 때문이라든가 라며 투덜대기만 하다 아버지가 일단 알겠다며 말씀하시고는 겨우 본부로 돌려보내셨겠지.
“근래 본부의 모든 보안상 문제는 실군단과 연루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번 일도 실군단의 짓으로 예상됩니다.”
“천 팀장은 뭐라든.”
이후가 말한 건가, 천 팀장님이 본부에 오셨다고.
“아무런 이상도 없으시다 합니다. 되려 너무 완벽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부에서도 특별히 보안에 주시하거라. 막을 방도도 한 번 생각해 보고.”
책상 위 수북이 쌓인 서류. 아버지 손에 들린 채 열심히 움직이는 고급 진 디자인의 볼펜이 측정할 수도 없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업무의 양을 대변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바쁘신 분인데 빌어먹을 실군단 때문에 괜히 신경 쓰실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군.
“네.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제가 오늘까지 경위서를 작성해서 올리겠습니다.”
잠시 볼펜이 우뚝 멈추었다. 찰나의 기다림은 영원이 되지 못하였다.
“되었다. 방금까지 계속 설명한 게 경위잖느냐. 번거롭게 뭘 경위서까지야. 조만간 수리기사를 불러줄 테니 이만 가봐. 최이후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다.”
아버지는 거짓말을 못하신다. 전하고 싶은 바를 숨기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내보이신다. 그렇게 철저히 감추는 감정과 꺼내시는 말씀이 반비례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시는 말씀을 전하실 때마다 미덥지 못한 날 싫어하신다고 완벽히 박혀 있는 생각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나 늘 헷갈림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아버지의 시선은 곧잘 나를 향하지 않았으니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쌍둥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캬아~ 이거지! 내가 이 맛에 내기하지!”
“9모도…… 9모도 내기해!”
보아하니 저번에 유월 모의고사 성적으로 걸었던 내기의 승자가 정해진 모양이었다.
“오빠 왔어?”
본부 책상에 앉아 있던 인화가 나를 발견하고는 종종걸음으로 내게 걸어왔다. 나는 인화의 머리에 무심히 손을 얹으며 물었다.
“쟤네들은 모의고사 성적 나온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내기를 확인하고 있대.”
“잊고 있었다나 뭐라나~”
“어, 형!”
인화와의 대화 소리에 그제야 나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이후가 자리에서 곧장 달려왔다.
“내가 태호 삼촌한테 저거 문 부순 거 보고했어! 잘했지?”
평소보다 곱절은 더 목소리가 높아진 걸 보니 내기의 승자는 너구나.
“어. 잘했어.”
“히힛~”
짧은 칭찬 한마디에도 이후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어 보였다. 뭐, 아직 열일곱이면 어린애 맞지.
“안녕하십……, 어이쿠, 이거구나.”
순간 뒤에서 들려온 굵은 남성의 낯선 목소리에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비상계단을 통하여 본부로 들어온 남성은 바닥에 맥없이 쓰러져 있는 철문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수리기사님?”
“아, 예. 맞습니다. 이 대표님이 보내셔서 왔습니다.”
……허, 조만간이시라더니.
“쓰읍, 이거는 문을 아예 새로 교체해야겠는데요. 대체 어떻게 하면 문에 금이 가지……?”
이준 형의 장미 줄기는 단순한 괴력이 아니니 말이다.
“오래 걸립니까?”
“한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고쳐드리면 될까요?”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이러시면 진짜 헷갈린다니까. 나를 생각해 주신다고 멋대로 오해하게 되잖나.
그 오해는 점차 크기를 키워나가며 기대를 쌓게 되고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동안 쌓였던 기대감은 큰 폭발을 일으킨다. 그러니까, 애당초 기대를 안 하는 게 낫지. 그래야 되는데…….
……아버지라는 이름 속에 담긴 힘이 너무도 막강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