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23년생
오늘은 엄마랑 우리 아이들과 함께 외할머니댁에 다녀왔다. 한 자라리에 4대가 모인 셈이다.
우리 할머니는 100살이시다. 빠른 23년생이시니 꽉 찬 100살이 넘으셨고, 101살을 향해 가고 계신다.
옛날의 어머니들, 할머니들께서 다 그러셨겠지만, 우리 할머니도 생활력이 강하신 분이셨다. 장사를 하셨고, 아이를 7명이나 낳으셨고, 배달은 딸을 키우셨고,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100년을 보내셨다.
그런데.
그 열심히 100년 동안 치열하게 살았던 최후는 너무 쓸쓸하고, 너무 아프다.
지금은 할머니가 치매가 와서, 딸도, 아들도 손자들도 알아보지 못하시지만, 2~3년 전만 해도 허리만 굽으셨지 셈도 다 하시고, 손녀 결혼한다고 할머니 쌈짓돈을 챙겨주지 못한 다른 손주들 몰래 주시면서 필요한 거 사라고 주신 멋쟁이 이셨고, 손녀 아기 낳았다고 증손자 보러 오시고, 오셔서는 아기 필요한 거 사라시면서 또 쌈짓돈을 주고 가신 그런 분이시다. 그때 우리 친정집이 엘리베이터 공사가 있었다. 12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며칠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할머니께 나중에 오시라고 말씀드렸는데, 괜찮다고 하시면서 90이 넘으신 분께서 아파트 12층을 씩씩하게 걸어올라 오신 그런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가 지금은 아무도 알아보지도 못하시고, 우두커니 앉아서 당신의 엄마가 보고 싶으시다고, 그 이야기만 하신다.
" 나 죽으려나 봐. 그런데 보고 싶은 우리 엄마 못 보고 죽으면 어떡해? "라고 걱정을 하시는 모습이 100살이 되셔도 엄마품이 그리운 자식이다.
할머니는 매일매일 집에 혼자 계시면서 너무 쓸쓸하다고 하신다. 자식들과 손자들이 보고 싶은데 너무 바빠서 못 본다고 말씀하시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고 내 할 일 모두 제쳐두고 자식들이, 손자 손녀들이 할머니만 찾아 뵐 수 도 없고....
할머니의 하루하루는 어떤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할머니는 아침이 오면 어떤 생각을 하시고, 할머니는 저녁이 되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상상해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우린 모두 늙어갈 것이고, 우린 모두 지금의 팔팔한 모습에서 점점 힘이 빠져가겠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고 우습게 하는 것들이 늙어가면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 되겠지.
화장실 가는 것도, 걸어 다니는 것도, 밥 먹는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겠지. 우리 할머니처럼.
노후는 이렇게 쓸쓸한 걸까? 인생이란 이런 걸까? 찬란했던 젊은 시절 뒤에는 쓸쓸한 노후가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는데 할머니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할머니의 눈을 보면서 아~ 정말 이 순간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겠다.
감사 또 감사하다.
나와 함께 이 순간을 살아가는 주위분들께 감사하고, 아무것도 아니어도 젊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
내 힘으로 화장실 가는 것, 내 힘으로 밥을 먹는 것, 무엇보다 꿈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지금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할머니에게 어떤 인사를 어떻게 하고 나와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할머니 건강하게 지내고 계세요"
"할머니 행복하게 지내세요"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왔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면서 열심히 지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