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갑자기 오른팔이 이상했다. 손을 올리는데 어? 아프네?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 록 계속 어? 어? 하다가 며칠 지나니 아 아프다!로 변했다.
갑자기 팔을 올리는 것도, 팔을 내리는 것도, 뒤로 돌리는 것도 너무 아팠다.
처음부터 병원에 가기는 너무 무섭고, 열심히 서치를 해봤다.
그런데 서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오십견?????? 아니 오십견??
오십견은 우리 엄마가 몇 년 전에 걸렸던 병이었고, 엄마 친구분들이 걸렸던 병이고, 나도 걸리려면 엄마 나이가 되어야지 걸리는 병 아닌가?
오십견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당장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 팔을 위, 아래,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여보시고, 나는 그거에 맞춰 안 아파요! 참을만해요!
아파요! 악!!!!!!! 아파요!라고 이야기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유착성 관절낭염"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어깨에 염증이 생겼으니, 약 먹고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관리 잘 안 해주면 수술까지 해야 하니 치료 잘 받으라고 하셨다.
나는 내가 충격받았던 그 단어로 다시 물어봤다.
"선생님, 이게 오십견인가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확실히 대답을 안 하셨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 염증 치료를 잘하지 않으면, 나중에 수술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네. 그러니깐 이게 오십견이에요?"
의사 선생님은 오십견이라고 확실히 끝내 말씀은 안 하셨다.
다시 서치를 해보니, 50대 이후에 주로 발병해 오십견이라고 불리지만 정확한 명칭은 "유착성 관절낭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십견이 의학적인 용어는 아니어서 확실한 대답은 안 하셨나?
그런데 웃긴 게 의사 선생님 입에서 네! 오십견입니다.라고 이야기를 듣지 않아서인지, 아주 코딱지만큼 위안은 되었다.
아무튼 그날 난 어깨에 꽤 아픈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타 왔다.
병원 갔다 온 이후로 나는 아주 예의 바른 사람이 되었다.
오른쪽 팔을 올리려면 항상 왼팔로 오른팔을 받쳤다. 팔을 들어서 물을 마실 때도 왼팔을 받쳐서 마시고, 좀 더 높은 곳에 있는 머리를 묶을 때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른팔을 올려야 하고, 그렇게 잠을 잘 자던 나는 팔이 아파서 중간중간 깼고, 팔 아파 팔 아퍼를 입에 달고 산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삶의 질은 확실히 떨어졌다.
흰머리는 2020년 코로나와 함께 사업 시작하면서 한두 가다 씩 나기 시작했었다.
40대에 흰머리라 그때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난 노화 때문이 아니다. 나는 사업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렇다고 억지로 생각하고 그냥 넘겼었다.
그런데 오십견은 충격이다.
아니, 오십 대도 아닌데 오십견이 웬 말이고, 또 50대라고 다 오는 병도 아닌데, 왜 나는 오십견이 왔을까?
흰머리도 나고, 오십견도 오고 언제나 쌩쌩할 줄 알았는데,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서글펐다.
세월 가는 게 서글프고, 나이 먹는 게 서글프고, 시간 지나는 게 서글펐다.
오십견이 이렇게 서글픈 병이었구나.
우리 엄마가 그렇게 팔이 아프다고 했을 때,
엄마 팔 한번 주물러 주지 않은 것.
많이 아프냐고 진심으로 물어봐 주지 않은 것.
팔 아픈 엄마 많이 못 도와준 것.
몇 년 전 엄마 오십견으로 아팠을 때의 일이 쭉 생각나면서 너무 미안하다.
이렇게 아픈 걸 내색도 많이 하지 않고, 엄마는 견디느라 얼마나 아팠을까.
엄마는 얼마나 서글펐을까.
세월 가는 게 얼마나 아까웠을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더니
서글픈 병 오십견 덕분에 엄마한테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으니
그렇게 또 서글픈 병은 아니네.
팔이 아픈지 3개월이 지났다.
미국에 오느라고 병원 치료는 못 받고 있지만 틈나는 대로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예의 바른 사람이다.
항상 두 손으로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으니.
덤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하는 착한 효녀까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