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랑 코타키나발루 갈래?”
나의 질문에 엄마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하긴, 배낭여행을 시작하고 난 뒤 나는 때만 되면, 나 여행 다녀올게, 라며 출발 하루 이틀 전 통보 아닌 통보를 하던 딸이었다. 그런데, 그런 딸내미가 같이 해외여행을 가자고 하다니.
“실은 나 공짜 비행기표 당첨되었거든! 날짜가 지정되어 있어. 그래서 그날 꼭 가야 해. 나랑 같이 갈 거지?”
엄마는 엉겁결에 그러자고 대답했다. 나는 엄마에게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난생처음 여권을 만들러 가는 엄마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그 여행은 나의 다섯 번째 해외여행, 그리고 엄마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공짜 비행기표라 그런지 자리가 영 안 좋았다. 우리는 어떤 이유에선지 의자가 뒤로 젖히지 않는 좌석을 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와 내가 따로따로 앉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같이 앉자고, 따로 앉기 싫다고 했다.
기내식을 먹고 불이 꺼진 기내에서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우리 앞의 사람들이 등받이를 한껏 젖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젖혀지지 않는 의자에서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온갖 짜증이 폭발할 것 같은 나를 달래준 것은 엄마였다. 엄마는 당신도 힘들면서, 나에게 무릎을 내어주었다.
“엄마 다리 베고 누워, 누워서 한 숨 자.”
엄마도 힘들잖아, 라는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하고 웅얼거리며 나는 그렇게 엄마의 다리를 베고 누워서 코타키나발루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어머 영숙이 아니야?!”
그런데, 누군가 엄마 이름을 불렀다. 나와 엄마는 함께 그곳을 향해 돌아보았다. 돌아본 거기엔 엄마 친구가 있었다. 엄마와 친구분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서로 여긴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친구들이랑 계모임으로 놀러 왔지.” 라며 잘 나가는 듯한 리조트 이름을 대는 엄마 친구였다.
“나는 우리 딸이 여행시켜준다고 해서 같이 왔지!” 엄마는 내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엄마는 친구와 한국에서 보자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나와 함께 입국 심사를 하러 갔다. 엄마의 어깨에는 어느덧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한인민박을 숙소로 잡았다. 두 개의 침대와 거실, 식탁까지 갖춘 개별 아파트 형태로 되어있었고, 아침 식사가 한식으로 제공되는 곳이었다. 코타키나발루는 휴양지의 성격이 강해서 그런지, 돈을 팍팍 쓰러 가는 고급 리조트나 호텔들이 많았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엄마에게,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엄마 친구처럼 저런 데서 자자고 했다. 엄마는 한인민박도 좋다고 했다.
아침 식사를 할 때마다 한인 민박 사장님은 우리에게 계속 투어를 소개해주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이든 스스로 알아보고 경험하는 여행을 즐겨하던 때였다. 그래서 민박집에서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투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엄마가 어떻게 하면 여행을 좀 더 편하게 하실까라는 고민보단 나의 그 여행 욕구들을 채워야겠다는 게 더욱 강했다.
“엄마, 민박집 통해서 투어 예약하고 그러면 더 비싸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해. 섬에 들어가는 표 사고하는 것도 내가 다 알아봤으니 걱정 마!”
다행히도 엄마는 나를 굳게 믿어주었다.
꽉 찬 하루하루들이었다. 나는 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보고 싶었던 것들을 보았다. 하루는 함께 선데이 마켓도 가고, 사피섬에도 들어갔다 오고, 야시장에서 저녁도 먹었다. 또 하루는 마누칸 섬에도 들어가고, 거기에서 물놀이도 하고 과자와 맥주도 마셨다. 또 하루는 점심부터 랍스터와 해산물을 잔뜩 시켜 먹고, 마사지도 받으러 갔다. 다른 날은 택시 대신 로컬 버스도 타보고, 탄중아루 비치에도 놀러 갔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코타키나발루의 일몰에 매일매일 감탄했다. 여기에서는 다른 형태의 해가 지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엄마와 나는 늘 일몰 시간을 맞춰서 해변가로 향했다. 선셋을 보기 좋은 곳들을 찾아서. 그렇게 하루하루의 일몰을 담고, 마지막 선셋을 봐야 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워터프런트 근처에 있다가 일몰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안돼… 나는 우리가 비를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비가 오면 해 지는 것을 못 보니까, 그게 두려웠다. 엄마는 어느 건물의 처마 밑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해가 금방 져 버릴까 봐 발만 동동 굴렀다. 그래서 처마 밑에 있다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엄마 해 지는 거 안 보러 갈 거야? 나 혼자 보러 간다?”
“얘도 참, 감기 걸려 그러다! 해 지는 건 어제도 그제도 봤잖아.”
“아니 매일이 다른 모습이라고!”
나는 결국 처마 밑에 엄마를 혼자 두고 해가 지는 모습이 잘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머리와 어깨 위로 비가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일몰의 모습이 가려질 만큼 비가 쏟아지지는 않았다. 땅이 비에 촉촉이 젖어들어가 일몰의 순간이 더욱 낭만스럽게 카메라에 담겼다. 나는 엄마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거 못 봐서 속상하지 않냐고 했다. 입을 삐쭉 내밀면서. 엄마는 그런 내게 빨리 숙소 돌아가자고 했다.
사실 엄마는 여행 기간 내내 해가 지면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엄마에게는 첫 해외여행이고 아무래도 ‘밤거리’는 믿을만한 곳이 못될 테니까. 아무리 딸내미가 자신만 믿으라지만, 밤거리는 무서우니까. 나는 다 알면서도 괜히 뾰로통해서 엄마에게 말했다.
“아, 내가 혼자 왔으면 밤에 말이야, 참 재밌게 놀러 다닐 텐데, 뭐가 무섭다고 그래.”
나는 일부러 더 짓궂게 말했다. 엄마는 그런 내게 방에 들어가서 맛있는 안주 만들어줄 테니 같이 맥주를 마시자고 했다. 젖은 내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주면서.
한인민박 우리만의 공간에서 엄마는 비로소 편해 보였다. 하루 동안 만난 새로운 곳에서의 낯선 풍경, 문화, 사람들을 만나며 날이 선 엄마의 긴장이 비로소 풀리는 듯했다. 여행이 주는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소화시키는 엄마였다.
문득 마지막 밤이 되어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엄마에게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지 않았을까?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당연히 엄마도 좋아하겠지, 내가 보고 싶던 거니까 엄마도 보고 싶었겠지, 내가 먹고 싶은 거니까 괜찮겠지… 엄마를 위하는 척이란 척은 다 해놓고, 사실은 그저 나를 위한 여행을 하고 있던 것이다.
왜 꼭 깨닫는 건 늦을까, 당장 내일이면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탈 텐데, 왜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이렇게 깨닫는 걸까 싶었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홀로 꽁꽁 담아둔 채, 나는 엄마가 차려준 안주와 맥주를 먹기 시작했다. 촌스러운 꽃무늬의 접시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원하던 코타키나발루의 밤문화는 엿보거나 즐기지 못했지만, 나는 대신 한인민박 우리만의 공간에서 엄마와 둘만의 찐한 시간을 나누었다. 네 가족이 사는 집에서 이렇게 둘만 있던 것도 참 드문 일이지 싶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안주와 맥주를 모두 먹어 치웠다. 엄마는 자기 전 내 목과 등, 어깨에 알로에 크림을 발라주었다. 전날 마누칸 섬에서 잔뜩 익어 여전히 벌건 상태였다. 난 잠들기 전까지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코타키나발루 여행 얼마 후, 그때 찍은 사진 몇 장을 인화하여 엄마에게 깜짝 선물로 준 적이 있다. 엄마는 마치 그 사진을 어디서도 구하지 못할 보물처럼 여겼다. 엄마는 그 사진을 당신의 화장대 거울에 오래도록 붙여 놓았다.
나는 그 뒤로도 여행을 많이 갔다. 여행으로는 부족해서 해외에 나가서 살기도 했다. 나에게는 새로운 추억들이 많이도 쌓였지만, 엄마에게는 여전히 나와의 여행이 해외여행이 전부였다. 가끔 엄마는 카카오톡 사진을 그때 내가 찍어준 사진으로 바꾸곤 했는데, 그때마다 뭔가 모를 헛헛함이 밀려왔다. 그로부터 9년 뒤,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의 여권이 만료되기 직전이었고, 엄마의 카카오톡 사진은 가족 여행 사진으로 바뀌었다.
이 글을 쓰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도 밀려와, 엄마에게 툭 메시지를 보냈다.
- 문득.. 엄마랑 둘이 놀러 갔던 코타키나발루가 그립네, 나중에 또 놀러 가자. 아빠랑 언니는 빼고 둘이서만.
엄마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녀와 다시 둘이서 여행하는 그날에는, ‘나만 믿고 따라와.’가 아닌 진짜 엄마가 하고 싶은 여행을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