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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Nov 13. 2022

산책냥 대신 지붕냥


“드니랑 산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 프랑스 안시(Annecy) 여행 중 길에서 보았던 고양이가 생각났다. 그 고양이는 집사의 어깨 위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반려묘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니. 그들이 너무 부러웠던 우리는 고양이 하네스를 사두었다. 혹시 우리도 드니와 여행까진 안되더라도 산책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품으면서. 우리가 고른 하네스는 드니에게 잘 어울릴 빨간색이었다.


사실, 그 소망을 품었던 것은 드니의 행동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현관문이 두 개가 있는데, 현관문 하나는 건물의 계단과 연결되고, 다른 문을 열면 바로 엘리베이터와 연결된다. 그래서 집 안에 엘리베이터 버튼이 있는, 조금 특이한 구조이다.

우리는 주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드니가 매번 엘리베이터에 따라 타는 것이었다. 가끔은 그런 드니를 떼어 놓느라 애를 먹기도 할 정도였다. 드니를 데리고 건물 1층까지 내려가 보기도 했는데, 드니는 어색해하면서도 심하게 낯을 가리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드니가 산책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희망을 품고 있던 어느 날, 로잔 시내를 걷다가 집사와 산책하는 고양이를 보았다. 벤치 위에서 잠시 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던 그 고양이는 하네스에도 상당히 익숙한 모양새였다. 그 광경을 놀라움 반 부러움 반으로 쳐다보는 우리에게, 산책냥 집사가 말했다.

“우리도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요. 정말 인내심을 가져야 해요. 우리 고양이는 사실 듣지를 못해요. 그래서 밖에 나오는 게 위험할 수도 있지만, 워낙 구경하는 걸 좋아해서 이렇게 함께 나와요.”

우리는 사두었던 하네스를 비로소 사용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것이냥


드니에게 하네스를 착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몸에 무언가를 착용한다는 것 자체에 익숙함이 전혀 없는 드니였다. 그래도 어찌어찌 하네스를 착용은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드니의 움직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하네스 때문이었다. 드니는 등을 깔고 드러눕거나,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걷는 모양새도 어지간히 불편해 보였다. 드니는 배를 바닥에 깐 채로 기어 다녔다. 우리는 일단 드니가 하네스라는 것에 조금이라도 적응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드니가 하네스를 세 번째로 착용했을 때, 우리는 리드 줄을 연결하였다. 그리고 건물 1층에 함께 내려갔다. 이미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곳이지만, 하네스를 찬 채로는 여전히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드니는 1층 바닥 카펫을 빗자루처럼 쓸고 다녔다. 그리고는 건물의 문 앞까지 섰지만, 차마 발길을 떼지는 못했다. 대신 건물의 계단을 열심히 뛰어 올라가다 서다, 다시 내려오다 서다를 반복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라며, 우리는 서로를 보며 뿌듯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짝꿍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드니 데리고 지붕에 올라갈까?”


드니의 취미


드니를 입양할 당시에, 드니가 지붕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는 메모가 적혀있던 것이 떠올랐다. 우리 집은 건물의 마지막 층인데, 건물 특성상 마지막 층의 절반 정도는 지붕 때문에 벽이 경사져있다. 창문을 열면 양옆으로 지붕이 매끈하게 이어진 것을 확인할  있다. 드니가 이전에 살던 집에서의 기억 때문인지 우리 집에 와서도 창문을 통해 지붕으로 가려고   시도를 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드니의 발바닥은 지붕 위에서 미끄러졌다. 두 번 지붕에서 미끄러져서 우리에게 구조를 받은 이후로 드니는 그저 창문에 걸터앉아 창밖 구경만 하곤 했다. 아무리 지붕의 끄트머리에 빗물받이용 홈이 있어 드니가 건물 밖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그래도 매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건너편 이웃집 고양이들은 창문을 통해 지붕을 자유롭게 드나들던데, 그 모습을 보며 드니가 얼마나 약이 오를까 마음이 좋지 않았던 참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지붕 위 옥상으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복층 천장에 있는 작은 비밀의 문을 열면 접이식 계단이 내려온다. 그 계단을 올라가서 또 다른 문을 한 번 더 열면 건물의 옥상이다. 우리를 위한 캠핑 의자 두 개를 올리고, 드니에게는 하네스를 착용시켰다. 하네스에 또다시 얼음이 된 드니를 안고 지붕 위로 향했다. 드니는 생각보다 순순하게 따랐다.


우리가 함께 살면서 지붕 위에 처음 올라온 드니는 적잖이 당황스러워하는  같았다. 아니 이런 곳이 있었는데  이제야 데리고 올라왔냐고 하는  같았다. 드니는 옥상의 이곳저곳을 훑고 다녔다. 드니는 리드 줄로 나를 리드했다. 나는 드니가 관찰하고 싶고 궁금해하는 곳은 모두 함께 가주었다. 드니는 여전히 하네스가 편치 않았기에, 거의 옥상 바닥을 쓸고 다니다시피 하며 다녔다. 그러면서도 온갖 곳을 구경하고,  멈춰 서서 건물들을 내다보고,  움직이다가 멈춰 서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바라봤다. 드니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웃집 고양이가 그런 드니를 놀라워하며 쳐다보았다.


지붕냥 드니


우리는 그날 옥상에서 구름 많은 하늘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함께 보았다. 해가 진 후 주위가 어둑해질 무렵 우리는 다시 지붕에서 내려왔다. 사실 드니와 함께 지붕 올라가기보다 지붕 떠나기가 더 힘들었다. 지붕 위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지 드니가 지붕에 계속해서 머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드니야 우리 또 같이 여기에 올라오자. 알았지?”

그래도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해 보이는 드니였다.


기대하던 길거리 산책은 아니었지만, 옥상 구경만으로도 우리 셋은 참 행복했다. 우리만 오롯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이면서도 세상과 완전히 연결된 완벽한 곳을 찾을 수 있어 행운이라 생각했다. 그날은 드니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날이자,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을 또 하나 찾은 날이었다.

옥상에 올라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간색의 하네스가 그날따라 더욱 드니에게 예쁘게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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