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의 시간] 동행

바다의 주름 위로 겹겹이 층을 쌓아 올린 기억의 울타리

by 오션뷰

우린 모두 제각각의 색을 하나씩 묻힌 채로 시작했다. 누구는 원색을 잔뜩 뒤집어쓴 채였고, 누구는 너무나 희미하여 투명한 지경의 색이라면 색이랄 것을 입고 있었다. 또 누구는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그러데이션을 지니고 있었고, 다른 누구는 시시각각 변하여 감히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색을 여러 겹 껴입고 있었다. 모든 색은 한데 뭉쳤다가 각기 퍼지기도 했다. 모두가 같은 수치의 농도로 짙어져 가고, 또 같은 수치의 농도로 옅어져 갔다.


우리가 흘러온 속도는 다를지언정, 지금의 우리는 함께 하는 순간에 맺혀 있다. 각자가 밤새 끌어 모은 이슬방울들을 가지고 커다란 하나의 방울이 되어, 우리는 하나의 순간에 맺혀 있다.

서로 다른 우리네 색이 뒤엉켜 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모든 색과 감정과 표정이 맛깔나게 버무려지는, 그것은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각자의 색이 각자의 중심에서부터 서로의 끝을 향하여 조금씩 흘러나갔다. 아주 조금씩, 아무도 눈치챌 수 없게 흘러 나가다가 이내 정신을 차려보면 우리는 모두와 색을 나눈 뒤였다. 우리는 그렇게 소소하게 섞여 들어갔고, 마음을 나누고, 이내 서로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멀리서 보면 우리는 하나의 큰 덩어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이 살펴보면, 마치 절대 섞일 수 없는 것들이 어정쩡하게 어깨를 맞대고 나아가는 것 같아 보였다. 그것은 층을 이루고, 그 위아래로 한없이 퍼져나가 이내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닿고 나서야 끝날 것 같은, 일종의 경기 같기도 했다. 어쩌면 절대로 닿을 수 없는 한계 안에서 그저 힘껏 뒤섞여볼 뿐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내 우리는 풀이 죽곤 했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애써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각자의 색을 나누고, 서로의 색을 취한 채 흘러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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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함께 지나온 길은 크레파스의 자국들로 가득 칠해져 있었다. 온갖 색을 끌어 모은 채로, 온갖 색을 가슴에 품은 채로, 온갖 색이 되리라 했던 다짐들을 가득 채운 대로.

우리가 가진 색에도 질감이 있어서, 우리가 나누어 온 질감을 한데 모아 본다면, 지금 우리가 보이는 이 모습일까? 매끄러움과 거침, 그리고 그 사이의 수많은 서로 다른 질감들이 한데 엉킨 모습이 우리가 그려온 모습일까?


함께 만들어낸 시간들이 우리 뒤로 그림자보다 길게 뻗어있었다. 함께 나눈 수많은 대화들, 그 보다 더욱 많았던 침묵의 시간들도 짙게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나누었던 눈빛들, 차마 쳐다보지 못할 만큼 감정의 소모가 컸던 날들, 걷는 길이 좁아 이내 앞서가는 이의 등만 보고 내리 걸었던 날들, 함께 발을 적셔가며 모두가 같은 색으로 발바닥이 물들어가던 시간. 각자에게 서로 다른 색으로 적셔졌을 그 시간. 너무 소중해서 꺼내 보기도 힘들 만큼, 너무 거칠어서 차마 손대기 힘들 만큼, 너무 황홀해서 모두가 함께 꺼내 보아야 할 만큼. 모든 기억의 울타리는 그렇게 촘촘히 쌓아졌다.

얼마나 그런 식으로 많은 것이 지나갔고 날아갔으며 또 가라앉았을까.

바다의 주름 위로 겹겹이 층을 쌓아 올린 기억의 울타리. 그 위로 또 다른 색의 안개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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