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들이 부르는 노래
맹렬히 퍼붓던 간밤의 폭우. 거센 바람을 헤치고 후두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차곡히 쌓여갔던 지난밤. 깊고 얕게 패인 상처마다 굴러들어 오던 커다란 빗방울들. 또르르르 흘러들어와 상처에 생채기를 내었다. 깊고 얕은 웅덩이마다 계속해서 크고 작은 빗방울들이 차곡차곡 채워졌다.
무엇이 그토록 서러워서 온 밤을 통째로 빌려 그 안을 눈물로 가득 채웠을까? 누군가가 내디딘 발걸음에 다 나은 줄 알았던 상처 다시 생겨나 그토록 아파 울었을까.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기억이라 여겼지만, 유독 내 것만 계속해서 너무 커지는 것 같아 그토록 울었을까. 하루하루 괜찮다 온갖 말로 치장해도 결코 괜찮지 않은 밤이 찾아와서 그토록 울었을까. 주체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부여잡고 폭우의 숨을 따라 울부짖던 지난밤. 유난히도 길고, 어두웠던 그 여러 번의 밤.
모른 척 찾아온 아침에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맞이하는 또 다른 하루. 밤새 흘러내린 눈물 자국 채 마르기도 전에 발걸음이 먼저 움직인다. 잠긴 목소리를 내뱉기도 전에 시간이 먼저 나를 제치고 저만큼 앞서 나간다. 따스한 햇빛에 밤새 얼어버린 마음 녹기도 전에 세월이 먼저 저만큼 모든 것을 제치고 나아간다.
그럼 남겨진 것들이 한데 모인다. 한데 모여, 아끼고 아꼈던 노래를 불러보는 것이다. 부르면 부를 때마다 완벽한 풍경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던 그 노래이다. 아끼다 조금 흘러내린 노래 자국을 매만지며 다시 풍경 앞에 서길 기대해본다. 그러면 어느샌가, 주변은 흐려지고 남겨진 것들만이 선명해진다. 아득한 풍경을 지나, 흘러내린 노래 자국마저 녹아버리면 주변은 밝아지는 것이다. 아끼던 노래가 남겨진 것들을 그 어딘가로 데려다준 것이다.
그토록 원했지만, 발목이 묶이어 더 이상 찾아갈 수 없던, 메마르고 황폐해서 꽃 이파리 하나 찾을 수 없는 곳이지만 그토록 아름다웠던, 그리운 얼굴 마주하며 있는 힘껏 웃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데려다주는 것이다. 그곳에서 노래는 우리에게 여러 차례 시를 읊어주었다.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며칠 동안 지어낸 시. 그 시 위에 가지런히 펼쳐져 있던 남겨진 것들의 이름, 여러 번 반복되고 반복되어 온 바다를 헤엄칠 만큼 충분하게 남겨진 것들의 이름이 불렸다. 따사롭게 불려지던 남겨진 것들의 이름, 노래는 계속해서 시를 읽어내려가고, 남겨진 것들의 이름은 바다의 아래로 자꾸만 내려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잠수했다.
더는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끝나자, 완벽한 풍경도 끝이 났다. 살랑이는 바람이 간지럽게 볼을 훑고 지나가면, 귓가엔 바다의 고요만이 가득했다. 온몸을 가득 휘감았던 황홀함을 여전히 간직한 채, 행여 새어 나갈까 최대한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을 응시했다.
바다의 아래로 잠수하던 남겨진 것들의 이름이 잔지바(Zanzibar)의 동쪽 해변까지 닿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발걸음은 한층 조심스러워졌다. 발바닥에 밟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한 조심스레 밟았다. 어느 해양생물의 등에 업혀 있을지 모를, 어느 바위가 만들어낸 그늘 아래에 조용히 잠들어 있을지 모를, 따사로운 햇빛 아래 잠수 후의 물기를 모두 말리고 있을지도 모를 남겨진 이름들. 여기 이 해변에 닿아 있을지 모를 남겨진 이름 중 내 이름을 찾아보고, 혼자만 아는 그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본다.
또다시 결코 괜찮지 않을 밤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나지막이 불러본 그 이름, 입가에 하루의 흔적처럼 남겨 둘 것이라며 속삭인다. 깊고 얕게 파인 웅덩이마다 가득 찼던 폭우가 마르고 나면, 그 안에 남겨진 이름들을 가득 채우겠다며 다짐한다. 유난히고 길고 어두운 밤이 여러 차례 거듭되더라도, 누군가에게 따스히 불려졌던 이름의 온기를 가득 안아볼 것이라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