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의 시간] 수영을 마치고

파도가 삼켜버린 우리의 문장들이 넘실거렸다.

by 오션뷰



우리가 만나던 주말마다 바가모요(Bagamoyo)에선 비가 많이 내렸다. 바가모요의 비는 우리가 카페 테라스에 앉아 맥주 서너 병을 비울 때까지 멈추지 않기도 했고, 온 밤 동안 내리고도 모자라 아침까지도 젖게 만들곤 했다. 오도 가도 못하게 우리의 발걸음을 묶어 두기도 했고, 맹렬했던 우리의 열기를 식혀주기라도 하듯 거세게 쏟아 붓기도 했다.

여러 번의 밤을 함께 보내며 우리가 나눈 문장의 곁에도 비가 맴돌았다. 오롯이 비를 맞으며 우리의 문장은 그 모서리가 닳기도 했고, 기대지 않은 습기를 가득 머금기도 했다. 유난히도 비가 거세게 내리치는 날이면 우리의 문장은 완성되지 못한 채 방향을 잃고 예기치 못한 곳으로 뻗어 가기도 했다. 빗 속을 뚫고 나아가던 문장은 힘을 잃고 그 속으로 뿌옇게 그렇게 사라지기도 했다. 우리의 문장을 머금은 비는 바가모요의 모든 지붕 위로, 해변의 단단한 바위 위로, 모든 골목의 구석으로 골고루 내렸다.



바가모요(Bagamoyo)에서 내린 비는 미참비 카에(Michamvi Kae)로 가서 바다를 이루었다. 우리가 만나던 주말마다 내렸던 비가 한데 모여있었다. 각자의 형태를 잃고 경계가 없었다. 우산 없이 우리가 온몸으로 맞았던 비가 한데 모여 바다를 이루었고, 난 그곳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머리 끝까지 온통 바닷물에 잠기면, 모든 피부가 껍질을 벗어던졌고 새로운 감각이 태어났다. 발가락 사이로 차오르는 작은 모래 알갱이는 숨 주머니가 되고, 손가락 사이를 휘감아 도는 물의 덩어리는 생명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연신 흘러내린 땀은 바닷물에 뒤섞였고, 이름 모를 감정은 금방 가라앉곤 했다.


몇 개월간 묵은 답답한 것을 토해내듯 뱉어 냈던 너의 말, 생각나는 대답이라곤 비에 대한 것뿐이었던 나의 침묵. 그렇게 비 속에 파묻혔던 너의 말들이 바다를 이루었다. 후덥지근한 공기를 뚫고, 너의 말투만큼이나 느릿하게 내리던 비의 형상을 바다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나의 침묵이 흐리게 남아있었다.

미참비 카에의 바다는 너무나 맑고 투명했다. 그런 탓에 그 속에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채 떠도는 네가 뱉은 문장들을 나는 볼 수 있었다. 그 문장들이 자꾸만 내 몸에 들러붙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문장을 읽어낼 힘도, 차마 계속해서 쳐다볼 힘도, 아련함에 문장의 등을 쓰다듬어 줄 힘도 내겐 없었다. 바다에 모든 힘을 내어준 채, 나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파도가 이끄는 대로 떠갈 뿐이었다.


파도에 출렁일 때마다 우리 함께 빗속에서 꼭 잡았던 두 손, 깍지 낀 손가락 마디마다 점점이 남아있던 문장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파도가 삼켜버린 우리의 문장들이 넘실거렸다. 나에게 건넨 너의 문장들은 귓가를 가득 채우는 파도소리에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바닷물을 들이켤 때마다 오후의 찬란한 햇살이 내 속으로 들어왔고, 너에게로 헤엄쳐 간 문장들에 다시 그 따스함을 보태었다. 파도가 다시 삼켰던 문장을 소화하지 못하고 뱉어냈을 때엔 이미 나는 수영을 마쳤을 때였다. 괜스레 발을 더 세차게 털고, 바다가 닿지 않는 거리에 앉아 그저 햇빛에 나를 말릴 뿐이었다.



미참비 카에에 곧 우기가 시작될 것이다. 모든 시야를 가려주고, 서로에게서 서로를 감춰줄 수 있도록 요란한 비가 내릴 것이다. 옆 동네로 향하는 작은 마을버스의 열린 창문으로도, 구멍 난 천장으로도, 틈이 벌어진 바닥에서도 비가 가득 들어 찰 것이다. 자꾸만 같은 각도로 기울어지는 헬멧 위로도, 단골 식당의 테이블 위로도, 내가 머무는 방갈로의 문틈 사이로도 그렇게 허겁지겁 비가 내릴 것이다.

바가모요의 잃어버린 문장들이 다시금 꿈틀댈 것이다. 비에 주저앉았던 문장들이 비에게서 다시 힘을 얻어 다시 목소리를 찾을 것이다. 쉽사리 펼쳐지지 못했던 문장들마저 거센 파도를 따라, 해변을 향해, 골목을 향해 전에 없던 발걸음을 내딛을 수도 있겠다. 흩어진 바가모요의 문장들이 미참비 카에의 비를 만나 다시금 나의 귓가에 울려올지도 모르겠다. 거센 빗소리를 뚫고, 작고 여윈 문장 몇 개가 작은 숨을 헐떡이며 나의 품에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젖은 마음이 조금은 물기를 털어내는 것도 같았다.


이전 08화[탄자니아의 시간] 해변의 여인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