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의 시간] 휴식

하루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모른 체하며 바다를 등지고 있을 뿐이었다.

by 오션뷰

어제와 오늘을 잇는 발자국이 잔뜩 새겨진 해변이 유난히 빛나는 시간이다. 많은 것이 가라앉아 더욱 또렷해지는 순간이다. 적지 않은 것들이 새로이 만들어졌고 주목을 받았던 시간은 어제의 곁으로 한 발짝 물러난다. 어제와 같은 것들은 고스란히 바닥에 포개진 채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내일과 같을 것들은 차분히 저녁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리 차갑지 않은 바람이 두 뺨에 흐르듯 스쳐 불어온다. 한낮의 모든 뜨거웠던 것들이 서늘하게 식어가고, 이목을 끌지 못했던 모든 것들로 마지막 태양이 내리쬘 준비를 한다.


미칠 듯 뜨거웠던 순간이 사그라들면, 몹시도 차가워지곤 했다. 다시 그 냉정한 온도를 견딜 수 있을까 싶어 할 수 있는 한 모른 척했고, 할 수 있다면 미루고 싶었다. 뜨거운 모든 것들이 함께 사그라들 때 나도 함께 작아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더욱 선명해지고 싶은데, 그런 내가 희미해질까 봐 그게 몹시도 두려웠다. 나는 더욱더 뜨거워지고 싶은데, 그런 내가 차가움에 잠겨버릴까 봐 그게 몹시도 무서웠다.

냉정한 칼날의 시간이 흐르면, 나는 잊힐 것이 분명했다. 오늘만의 기억을 가지고 그렇게 사라질 것이고, 끝내 기억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강렬한 해가 온기를 잃고 나면, 그대로 차가운 어둠에 잠길 것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 분명하여, 그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한없이 미루고만 싶었다. 곧 바다로 떨어질 해를 차마 보지 못하고, 그로부터 물들어가는 구름 조차 바라보지 못하고, 그 구름 위 유유히 지나가는 갈매기에게 눈길조차 주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모른 체하며 바다를 등지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까지나 뜨거울 것 같았던 것도 결국엔 모두 뜨겁지 못했다. 떠나고자 하는 열정도 그러했고, 계속해서 곁에 남고자 하던 의지도 그러했고, 한결같을 거라 착각했던 우리의 온도도 그러했다. 여러 번 반복되어온 과정 속에서 되풀이되어온 것은 잔인하게, 더욱 거칠게 피부 속으로 파고들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그래서 설레던 짧지 않은 감정의 길이를 녹여내느라 애써본다. 처음 들어본 억양, 처음 보았던 눈동자 색, 처음 느껴보았던 습도. 그 모든 처음이 잔잔한 파도 속으로 숨는다. 더 이상 들리지 않으려, 보이지 않으려, 더 이상 느껴지지 않으려 숨는다. 그 모든 것이 바람을 따라 찬란히 흘러가는 순간을 잡지 않으려 애를 써본다. 모른 척, 보이지 않는 척을 하며 조용한 휴식을 갖는다. 길고 긴 오후의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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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로 가는 발자국을 다시금 만들어본다. 어떤 것은 멀어졌기에 더욱 선명하기도 하다. 적지 않은 것들이 사라졌고 내일의 곁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어제와 다른 것들은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어내고, 내일과 다를 것들은 다가올 밤을 견디지 못하고 떠날 준비를 한다. 뜨거움을 잃은 바람이 눈썹을 간지럽힌다. 잊혀 간 모든 것들을 기억하느라 그림자는 더 이상 해를 쫓지 못하고, 태양은 화려한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다가오기 전, 마치 아무것도 기다려본 적 없다는 듯이.

이미 모든 것을 겪어본 이들이, 마치 아무것도 겪어보지 않았다는 듯이.

짊어졌던 모든 것의 무게를, 마치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듯이 그들의 휴식은 유난히도 조용하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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