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의 시간] Run!

지나고 보면, 달리 어려울 것은 없었다.

by 오션뷰

언제나 간단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시작하고 싶었지만, 쉽게 그러지 못했다. 늘 넘쳐나는 구절을 어쩌지 못해 줄줄 꼬리처럼 달고 다녔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눈초리들도 쉬지 않고 들러붙었다. 그 끝에 매달린 한숨들 또한 어쩌지 못하고 나를 따라다녔다. 적극적이지 못한 모양새로, 주저앉은 모양새로, 차마 어딘가에 가벼운 인사조차 건네지 못할 모양새로.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다지 복잡할 것은 없었다. 바다의 끝을 향해 해가 서서히 움직이는 시간이면, 바다도 구름도 우리도 모두가 붉게 변해갔다. 우리 모두는 원래 아무런 색도 가지지 않았다는 듯이 가지고 있던 색을 내어주고, 빛나는 해의 선율을 따라 옷을 갈아입었다. 모두가 그렇게 해로부터 퍼져 나오는 주황빛 옷을 입고 있으면 우리 모두가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이루지 못한 것들도, 줄줄이 매달려온 한숨들도, 그 한숨들 어쩌지 못해 한심하게 보았던 스스로의 모습도 다 괜찮을 것만 같았다.


내가 뱉어낸 단어들이 잔지바(Zanzibar) 스톤타운(Stone town)의 작은 해변으로 모여들었다. 대륙의 반대편 서쪽에서, 한 대륙을 건넌 북쪽에서 그리고 저 멀리 동쪽에서 지구를 반 바퀴 돌아온 단어들이었다. 길고도 먼 여행을 한 단어들은 햇빛에 꽤나 그을려 있었다. 그들은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해변의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떠다니고 있었다. 문장들은 힘을 잃어 단어들은 서로 이어지지 못한 채 수수께끼처럼 멀뚱하니 서 있었다. 어느 문장에서 찢어져 나온지도 모르게 험한 얼굴을 하고 있는 단어도 있었다. 차마 뭐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게, 어떤 소리를 가지고 있었는지, 과연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싶은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다지 심각할 것은 없었다. 흉한 모습을 한 단어들이 끽끽 거리며 제 자리를 찾아가려 하고 있었다. 빛나는 시간이 지나고 어둠이 깔리면 제 짝을 찾아 서로를 덥혀줄 것이다. 밤새도록 서로의 안부를 묻고자, 지난날을 소리 없이 흘려보내고자, 온전치 못한 서로의 표정 그렇게 쓰다듬어 줄 것이다.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곳을 여행해온 나의 단어들이 어쩌면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제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계속해서 입고 있었던 것은 이 곳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파리의 흐린 날을 견디고 사하라 사막을 걷고, 아주 오랫동안 인도양을 헤엄쳐 비로소 잔지바의 온도에 맞춰진 것일지도 모른다.


13. Run!.JPG


시작은 했지만 끝내지 못한 말이 많았다. 하고자 했던 말을 잊어버릴 때가 많았고,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말이 많았다. 상대의 표정에 따라갈 곳을 잃은 문장이 생겼고, 상대의 대답에 따라 입도 뻥끗하지 못한 채 삼켜진 문장이 생겼다. 끝내지 못한 말들은 어느 깊은 마음속 골짜기를 찾아가 그곳에 차곡차곡 쌓이기도 했고, 더 이상의 희망을 갖지 못한 채 그대로 녹아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다지 아쉬울 것은 없었다. 전하지 못할 말이라도 진심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소리를 얻지 못한 문장이 마음까지 얻지 못한 건 아니었다.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지 못한 문장이 꿈마저 꾸지 못한 건 아니었다. 아주 느릴지언정, 속도라는 것을 가져보지 못했다 한들 그렇게 아주 조금씩 나아갔다. 마음속 골짜기에서 어쩌면 또 다른 지름길을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걱정할 일도 어려울 일도 감당해내지 못할 일도 없었다. 괜찮을 거라는 위로 없이도, 그보다 더한 경험을 억지로 상상하지 않아도, 깊은 잠에 빠져들지 않아도 다 괜찮아졌다. 그다지 애쓰지 않아도, 시간이 달려간 만큼 괜찮아졌고 어제가 멀어진 만큼 걱정도 작아졌다.

보지 못했다고 하여 그 날의 일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듣지 못했다고 하여 구름이 지나가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닿을 거라는 확신이 없다고 하여 뛰지 못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렇게 줄기차게 뛰고 나면 언제나 적당한 만큼의 시간이 지나간 뒤였다. 그렇게 많은 것을 삼키고, 소화하고, 녹여내다 보면 달리 어려운 것은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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