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의 시간] 집으로 가는 길

작은 골목 안에서 나는 길을 잃지 못하고, 시간도 멈추지 못했다.

by 오션뷰

있다 보면 다른 도시는, 이 세상은 까맣게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곳들이 있다. 오직 그곳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또 떠나고 나면 그곳은 꿈이었나 싶다. 모로코의 에사위라(Essaouira)가 그러했고, 스리랑카의 시기리야(Sigiriya)가 그러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시 꿈을 꾸기 위해 찾아간 곳이 잔지바(Zanzibar)였다.


그곳은 도착할 때마다 무심했다. 한결 같이 내리쬐는 눈부신 햇살 속에 많은 것을 꽁꽁 감추다가도, 내가 도착할 때에 맞춰 눈부신 일몰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별 볼 일 없는 해변을 걸었고, 그런 해변 앞에서 맥주를 마셨다. 공을 차는 사람들의 소리, 동전을 쥐어 달라며 노래 한 곡조를 간드러지게 뽑아내는 사람들의 소리,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의 소리. 모든 소리를 마시고 그곳에 빠져들었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갈 길을 찾고 싶지 않았고 어디든 들어가서 자리 잡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간을 멈출 방법을 찾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흥미로웠고, 들려오는 모든 낯선 언어가 귀에 기분 좋은 간지럼으로 들어왔다. 작은 골목 안에서 나는 길을 잃지 못하고, 시간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골목을 빠져나가면 눈앞은 해변이었다.


해가 지는 순간까지 최대한 조용한 곳에 자리하여 일몰의 순간을 기다렸다. 주위의 사람이 여럿 앉았다 떠나가는 동안 카메라 셔터를 여러 번 눌렀다. 미칠 듯 눈부신 시간이 짧고 강렬하게 지속되면 차마 그 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쳐다보았다. 할 수 있는 한 맹렬히 해와 눈을 맞추고 온 몸으로 느꼈다. 몸 곳곳에 그 강렬함을 새겼다. 바다가 해의 마지막 점마저 삼키면서 모든 소리를 함께 데려갔다. 하늘은 그 뒤로도 멈추지 않고 천천히 물들어갔다.

조금이라도 놓칠까 싶어 사방으로 눈을 돌리며 모든 하늘의 색을 담고자 했다. 남은 색들을 대부분 뺏기고 나면 주위는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그리고 온몸은 떨려왔다. 드러낸 살마다 한기가 돌면 나는 어쩌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일몰 뒤, 몸 곳곳에 품었던 뜨거움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순간은 너무 아파 차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희미하고 여린 마지막 빛마저 어둠 속으로 스며들기 전에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15. 집으로 가는 길.JPG


저 멀리 작은 배 한 척도 나의 걸음에 맞춰 수면 위를 흘렀다. 우리는 계속해서 나란히 걷고 흘렀다. 모래 위에도 작은 파도가 스며들어 내 발 등을 적셨다. 배 위의 노래가 전해졌다. 굳은 마음을 품고 떠난 길을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떠나온 길이 돌아가는 길이 된 것이다. 엉킬 대로 엉켜있던 마음속 긴장은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다. 모든 단단했던 것들을 풀어헤친 후, 차마 날지는 못해서 계속해서 걸었다. 지난 길 위의 날들을 돌아가는 길 위에 조금씩 흘려가며 그렇게 흘러갔다.

떠나왔던 그곳에 다시 조심히 발을 들이자, 잊고 있던 익숙함이 찾아들었고 그 안으로 파도가 잔잔하게 스며들어왔다. 계속해서 멀어지려고 자꾸만 먼 곳을 찾았지만, 결국에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계속해서 깊은 곳을 향해 나 자신을 밀어 넣었지만, 결국에는 깊숙한 곳에서부터 그리움 만을 짊어온 길이었다. 다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변해 있을 것만 같았지만 돌아가 보니 대부분의 것은 그대로였다. 나는 변했어도 나를 품었던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있다 보면 다른 도시는, 이 세상은 까맣게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곳들이 있다. 오직 그곳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또 떠나고 나면 그곳은 꿈이었나 싶다. 그리고 그런 곳들은 늘, 언제나 그립다. 그 모든 그리움을 뒤로한 채 돌아오는 길은 모든 감각을 메마르게 한다. 이렇게까지 부풀 수 있나 싶게 커졌던 설렘은 물집이 되었다. 집으로 도착했을 때 물집은 이미 터지고 그 자리엔 굳은살만이 남아있었다. 잔지바에서 꾸었던 꿈도 그렇게 굳어져 그리움만이 진하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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