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으로 가는 길

나는 섬에 닿지도, 해변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by 오션뷰

물이 빠진 지 꽤 되었으니 서두르라고 했다. 신발이 해변에 닿는 느낌이 꽤나 질퍽했다. 그 많던 바닷물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바다 저편 멀리 도망가서 모르는 세상에 비가 되어 떨어졌을까, 수많은 폭포로 모여 누군가의 눈물이 되어 흘렀을까, 땅 속으로 깊이 숨어 때를 기다리며 한참을 벼르고 있을까? 몇 발자국 그렇게 쪼리를 신고 걸어가자, 축축한 곳으로 푹 꺼지는 신발을 다시 들어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맨발이 낫겠다 싶어 한 손에 쪼리를 겹쳐 들고 걸었다. 30도를 넘는 그날의 기온은 다클라 25 해변에 무자비하게 내리쬐었다. 구름도 더위를 식히려 뜨거운 태양에서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바다 가까이로 내려왔다.


저 멀리 드래곤 아일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을 바라본 채 계속해서 걸었다. 드래곤 아일랜드는 바다의 한가운데에 갈 곳을 잃은 용 한 마리처럼 그렇게 우두커니 있었다. 짝꿍이 떠나갔는지, 무리를 잃어버렸는지 혼자서 그렇게 남겨져 있었다. 여러 바다와 산을 떠돌다 결국 이곳에서 날개를 접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이곳에서 태어나 사막과 바다를 한평생 품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용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길은 멀었다. 계속해서 걸어도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제자리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고요한 바닷바람이 바닷물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발바닥에 찰랑거리는 물이 닿아 진흙을 씻어내 주었다. 어디서부터 바닷물이 흘러 들어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자 지평선 아니면 수평선, 그것도 아니면 드래곤 아일랜드와 그에 딱 붙어있는 구름 조각들뿐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한 방향을 향해 걸었다. 길 위에서 드래곤 아일랜드에 이미 갔다 돌아오는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는 눈인사를 가볍게 주고받았다. 그 사이로 자랑스러움, 부러움, 개운함, 걱정스러움 같은 감정들이 얕게 비췄다.


바닷바람은 더욱 거세어졌고, 바닷물은 어느덧 발목까지 들어찼다. 바닷물이 출렁거릴 때마다 걷어 올린 바지 끄트머리가 젖었고, 한 손엔 쪼리 다른 한 손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는 달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전히 드래곤 아일랜드는 멀었다. 계속 걷다가 어떻게든 도착하든지, 물에 잠긴 채로 영원히 닿지 못하든지, 그냥 이대로 돌아서든지 하나였다.


계속해서 나는 바다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중심을 잃을까 조심하며, 눈은 드래곤 아일랜드와 나의 발아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바닷물이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들이차기 시작했다. 세상엔 아무리 내가 원해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 아무리 나 자신을 낮춘다 하더라도 닿지 못할 경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생각할 거리들은 보이지 않는 발아래로 잠겼다.



기어코 바다가 사방을 메꿨다. 드래곤 아일랜드로 가는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서 나오는 이도 없었다. 뒤를 돌아보자 섬에 닿으려 했던 모든 이가 이미 해변으로 돌아간 뒤였다. 나는 그대로 섬에 닿지도, 해변에 돌아가지도 못했다. 나는 중심을 잃고 바닷물 위에 누워 힘을 풀었다. 귓가에 바닷물이 가득 들어차자 더 이상 섬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하던 것은 까마득한 옛 것이 되어갔고, 사방의 모든 것은 꿈결 같았다. 손을 뻗자 구름 조각 하나 힘겹게 매달렸고, 수평선 저 끝엔 달에서 떨어진 조각 하나 둥실 떠있었다.




이 많은 바닷물은 다 어디에 있다 왔을까? 수평선 저 너머로 도망갔다가 익숙지 않음에 놀라 잽싸게 돌아온 것일까, 거센 폭포가 되어 산을 여행하다 그 굳건함에 지쳐 해변으로 돌아온 것일까, 땅 속 깊은 곳에서 아무도 반기지 않자 토라져 다시 왈칵 올라온 것일까? 바닷물은 드래곤 아일랜드의 허리춤까지 잠겼고, 나는 그 형체 없는 바닷물에 나의 몸뚱이를 맡겼다. 손에 있던 것들 것 다 어딘가로 흩어졌고, 가슴속에 붙잡아 두었던 것들은 머리를 통하지 않고 바로 헤엄쳐 나갔다. 드래곤 아일랜드 곁을 지키던 구름들은 잘게 풀어져 바다 위에 여러 가닥으로 퍼져 들어왔다.


어느덧 뜨거웠던 해가 바다를 향해 기울기 시작했다. 당당했던 그 자태가 바다에 비췄다. 해의 온도를 고스란히 받아 바다가 달궈지기 시작했다. 바다를 떠안은 드래곤 아일랜드도 함께 뜨거워졌다. 우두커니 있다 이내 곧 기지개를 켜기라도 할 것처럼, 떠나간 짝꿍이 돌아와 함께 체온을 나누기라도 할 것처럼, 잃어버린 무리의 소식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달궈졌다. 용의 이야기가 파도가 되어 내 귀에 여러 차례 닿았다. 밤은 길었고, 달 조각이 드래곤 아일랜드로 가는 길을 비춰주었다. 바다에 뜬 은하수를 따라 난 그렇게 섬으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