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후의 카사블랑카

언제나 사람이었다.

by 오션뷰

3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많은 것이 그대로였다. 3년 전 카사블랑카에 도착한 나를 마중 나와 주었던 매지드(Majid)는 3년 후인 이번에도 카사블랑카에 도착한 나를 마중 나와 주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계절에 도착했던 내가, 이번에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에 카사블랑카를 다시 찾았다. 달라진 것은 3년 전에는 모로코를 3주 정도 돌아다니다가 버스를 타고 도착했던 내가 이번에는 한국에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다는 점 정도였다.


3년 전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카사블랑카는 그저 교통의 연결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나쳐야 하는 도시였다. 잘 알지 못하는 큰 도시는 언제나 내게 위압감을 안겨주었고,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게 늘 숙제였다. 작지 않은 도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사귀고 파리(Paris)와 다레살람(Dar es salaam)에서도 살아보았지만 여행 중 만나는 큰 도시들은 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동남아의 방콕이나 비엔티엔, 호치민이 그랬고, 유럽의 대부분의 대도시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카사블랑카는 유일하게 나에게 따뜻했던 큰 도시였다. 도시 특유의 정서 때문도 아니고, 기후 때문도 아니고, 기가 막힌 어떤 풍경 때문도 아니었다. 오로지 사람이었다.


매지드와 그의 가족들은 내게 그러한 따뜻함을 선사했던 사람들이었다. 홀로 다니는 여행 중 외로움이 사무쳐서도 아니었고, 그들과 관심사가 통했다거나, 그들이 한류에 대하여 크게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3년 전 여행 중 카사블랑카에서는 총 3번의 밤을 보냈을 뿐이지만 그들이 내게 건넨 영향력은 실로 컸다. 그들은 내가 그저 모로코를 여행하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것 밖에 몰랐지만 기꺼이 집에 초대하여 저녁을 대접해주었다. 대부분의 모로칸은 금요일 점심에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쿠스쿠스(CousCous)를 만들어 먹는다. 내가 초대받은 날은 금요일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나를 위해 정성스레 쿠스쿠스를 만들어주었다. 그 요리를 만드는 동안 얼굴도 모르고 이야기도 나누어보지 않은 손님을 위해 정성을 잔뜩 쏟았을 가족들이다. 내가 계획 없이 다시 카사블랑카를 찾았을 때에도 기꺼이 잠을 재워주고, 따뜻한 옷이 필요해지는 계절에 어울리는 옷을 사러 시장에 가는 나와 함께 동행해주던 그들이다.


이번에 카사블랑카에 머무는 동안에도 매지드네 가족은 기꺼이 나를 초대해주었다. 금요일 점심과 토요일 점심을 그들과 함께 했다. 매지드네 집은 그동안 한 두어 번의 공사를 거쳐 모습이 조금 변해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매지드네 화장실이 현대식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또 다른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기도실을 없애고 가족들의 편리성을 위한 부엌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변한 것은 집의 모습뿐만 아니었다. 매지드의 누나인 수아드(Souaad)는 재혼을 하여 다음 달에 출산 예정이었고, 매지드의 첫째 여동생 지납(Zineb)은 결혼 후 이미 3달 전 태어난 예쁜 딸아이가 있었다. 사실 여전히 매지드 말고 매지드의 가족들과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들과 간단한 안부 인사, 고맙다는 말, 너무 맛있다는 말 정도만 가능했을 뿐이었다. 대신 우리는 눈빛을 나누며 서로에게 마음을 썼다. 서로의 얼굴 위로 꾸밈없이 드러난 표정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했다.




3년 전 모로코 여행을 끝내고 여행 에세이를 출간했다. 아직까지 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기간이 두 달간의 모로코 여행이었고, 어떻게 해서든 그 순간들을 남기고 싶었다. 당시 나에게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프랑스 체류를 끝내고 막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였고, 4달 후부터는 탄자니아 체류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추진력 있게 만들어주었다. “언젠간 꼭 책을 쓸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내게 한 친구가 독립출판을 추천해주었고,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책을 쓰기 시작했다. 모로코에서 걸었던 모든 길,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 풍경마다 다양했던 기후와 습도, 온몸으로 느꼈던 바람과 햇살을 잊기 전에 써 내려갔고 탄자니아로 출국 일주일 전에 완성된 책을 내 손에 집을 수 있게 되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책은 아니었기에 그리 자랑할만한 것도, 짜임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저 처음으로 내 이름을 표지에 적어 내 사진과 글들로 엮어낸 책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흥분이었다. 그 책에는 매지드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매지드의 허락을 받고 그를 찍은 사진도 넣었다. 언젠가 다시 모로코에 가면, 잊지 않고 나의 책을 꼭 챙겨가겠다는 약속을 비로소 3년 후에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책의 첫 번째 속지에 그와 가족들에게 보내는 짧은 메시지를 적었다. 매지드는 그 메모와 책의 표지, 본인이 있는 페이지를 찍은 사진을 온 가족과 친구들한테 보냈다. 사진을 받은 그의 가족, 친구들은 SNS에 그 사진들을 올리며 축하해주었다. 만든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지만 이제 막 따끈따끈한 책을 출간하여 축하를 받는 기분이었다. 매지드는 본인이 이제 한국에서 유명해졌겠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곤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문자들을 스캔하면 설정한 언어로 자동 번역이 되는 기능을 통해 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완벽한 번역은 아니겠지만 본인이 나를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으니 적절한 추측을 가미하겠다고 했다. 집안 공사가 한창 이어지고 있어 바쁜 와중에도 그는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잠들기 전에 내 책을 번역하여 읽었고, 3일 동안 반 넘는 분량을 읽었다고 했다.


언제나 사람이었다. 나를 떠나게 하는 것도, 예상했던 것보다 나를 오래 머물게 하는 것도 늘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건넨 미소 덕에 하루가 완성되기도 했고, 누군가가 건넨 말 한마디로 하루의 온도가 무척이나 따뜻해지기도 했다. 누군가와의 추억은 나를 다시금 그곳으로 인도하기도 했고,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 아쉬워 할 수 있는 한 서로의 말을 귀담아듣곤 했다. 함께 나눈 대화가 너무나 맑아 서로의 아팠던 시간들을 치유하기에 충분하기도 했고, 다가올 시간들은 걱정거리조차 되지 않곤 했다.


카사블랑카에서는 3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혼자인 시간이 없었다. 언제나 매지드와 함께, 혹은 매지드의 가족이나 친구가 나와 기꺼이 시간을 보내주었다.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일 풍경들을 함께 감탄해주었고, 매일같이 걸어 다니는 길도 지루해하지 않으며 함께 걸어주었다. 도시보다 더 큰 사람의 영향력, 풍경보다도 더 진한 우정, 아름다운 해변의 일몰보다 더 깊게 간직될 그들과의 기억이 한데 어우러진 카사블랑카는 내게 언제까지나 사람으로 기억될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