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다 진하게 남는

모로코의 므슴멘(Msemen)

by 오션뷰

“아 그때 그거 뭐였더라, 왜 그거 있잖아.”
나는 여전히 그 음식의 이름을 기억해 내기를 어려워했다. 친구는 내가 그 음식에 대한 디테일을 주길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었다.
“광장 앞에 우리 자주 가던 곳! 거기에서 민트 티랑 먹으라고 네가 주문해주었던 거!”

“아, Msemen!”


여전히 이름을 기억해내기도, 완벽하게 발음해내기도 어려웠다. ‘므’에서 얕게 말려들어간 채 ‘슴멘’이라고 강하게 발음되는 네이티브의 억양을 듣고서 그제야 “그, 그래. 그거!”라고 신이 나서 말했다. 발음을 여러 차례 따라 해보려 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물레이 핫산(Moulay Hassan) 광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때는 오후 4시였다. 이른 점심으로 먹은 타진(Tarjine)이 이미 다 소화가 된 채로, 므슴멘을 떠올리자 기대감에 떨리기까지 했다. 광장에 있는 멋들어진 카페들 사이를 제치고 가자, 한편에 소박하게 자리 잡은 상대적으로 대비되어 보이는 작은 노천카페가 나타났다. 그래 저기였지!


초록이거나 파란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그 위로 파랗고 하얀 줄무늬의 그늘막. 그 옆으로 큰 팬에서 구워지고 있는 몇 가지의 모로코 팬케이크들. 팬 옆에 쌓아 올린 접시들, 그리고 그들만의 질서로 늘어져있는 재료들. 팬 너머로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해서 각종 팬케이크를 만들어내는 여인. 그리고 그 옆으로 마치 신문 가판대처럼 보이는 곳 안쪽에서는 차나 커피를 끓여 내어 주며, 계산까지 도맡는 사내, 까지가 그곳의 풍경.


우리는 민트 티와 꿀을 넣은 므슴멘을 주문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므슴멘이 구워지는 냄새를 맡으며 흥분은 최고조가 되었다. “배고파”를 한 다섯 번쯤 내뱉었을까, 민트 티 한 주전자가 나왔다. 친구는 익숙하게 민트와 반으로 쪼개진 커다란 각설탕을 주전자에 넣었다. 그리고 모든 모로칸 로컬들이 그러하듯이 여러 차례 주전자에서 컵으로, 컵에서 주전자로 차를 붓고 다시 따르며 섞어 내었다. 친구가 세 번쯤 그 동작을 되풀이했을 때, 기다리던 므슴멘이 나왔다. 나의 작은 탄성에 따라 므슴멘으로부터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이 파르르 떨려왔다. 우리네 호떡처럼 꿀이 반질반질하게 스며들어간 모습을 보니 군침이 도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므슴멘을 냉큼 집어 올려 반으로 살짝 접어 한입 베어 물었다. 입을 떼자, 그 안에 겹겹이 채워진 도우 사이로 꿀이 흘러내렸다. 입 안으로 쫄깃함이 스며들어 씹는 즐거움이 넘쳤다. 모로코 식 팬케이크 종류 중 하나, 아침 식사로도 좋고 이렇게 민트 티와 오후에 즐기기도 좋은, 그 어떤 디저트에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맛이다. 탄자니아의 팬케이크인 짜파티(Chapati)의 몇 프로 부족한 맛을 채워주고, 프랑스의 크레페(Crepe)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물론 한국의 부침개에 비하면 들어가는 재료의 수가 상당히 부족하다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그 단순함이 전해주는 풍성함이 기쁘게 삼켜지는 므슴멘.


몇 입 연달아 베어 물어 오물오물 삼키고 입 안이 므슴멘의 향으로 가득 차면, 민트 티를 후루룩 들이켰다. 시원한 생맥주가 후라이드 치킨의 맛을 배가 되게 만들어주듯이, 중국요리의 기름기를 보이차가 잡아주듯이, 그뤼에르(Le Gruyere) 치즈와 화이트 와인이 서로를 더욱 진하게 물들이듯이 그렇게 그 둘은 어울렸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끌어내어줄 수 있는 부분을 더욱 이끌어주듯이. 어색하지 않게 섞여 들어가며, 서로를 당겼고 맞춰갔다. 그 조화로움이 좋아 계속해서 번갈아가며 므슴멘과 민트 티를 섞어갔다.




므슴멘을 생각하면 다른 곳보다도 늘, 에싸위라(Essaouira)의 물레이 핫산 광장 구석에 자리한 그 가게가 생각난다. 므슴멘의 맛도 맛이지만, 그곳엔 맛보다 진하게 남는 풍경이 있다. 바닷바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그곳에 앉아, 지나가는 작은 일상들을 바라보며 먹는 므슴멘. 날아드는 갈매기와 다가오는 고양이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사이로 석양을 기다리는 누군가의 뒷모습. 무엇을 팔거나 무엇을 사는 사람들. 오랜 시간 같은 곳을 지키는 사람들, 잠깐 왔다 바로 떠나는 사람들.


므슴멘 속 겹겹이 배어 있던 그곳의 냄새, 그곳의 소리, 그곳에서 내게 들어왔던 감정까지. 므슴멘을 다 먹고 손가락에 진득하게 남아있는 꿀로 (물론, 친구의 도움을 받아) 접시에 M S E M E N이라고 글자를 써보았다. 글자 하나하나가 낯설고, 발음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하지만 므슴멘은 언어나 형상이 아닌, 그곳의 살아 움직이는 기억이 되었다. 이미지로 혹은 맛으로, 쫄깃한 식감으로, 그때 불어왔던 포근한 바람으로, 앉아있던 플라스틱 의자의 질감으로, 함께 나눈 친구와의 대화로, 므슴멘을 내어주던 여인의 정감 가는 미소로. 그렇게 므슴멘은 그때의 기억 속 소중한 ‘맛’이 되어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