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꿈일지라도
에싸위라(Essaouira)의 골목에 마지막 햇빛이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가 수공예 기념품을 팔고 있는 작은 가게로 향했다. 한 평 남짓한 작은 그곳으로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가게 문을 닫고 나면, 우리는 촛불 몇 개를 켜 놓고 희미한 어둠에 갇혔다. 손에는 와인이 담긴 머그컵을 들고, 무릎 위에는 잠든 고양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공간에 Tracy Chapman의 노래가 가득 퍼졌다.
그녀의 <Fast car>는 말했다. 어디든 나을 것이고, ‘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잃을 것이 없다고. 그 가사가 귀를 지나 머릿속을 한 번 훑고, 가슴으로 내려오자 심장이 세게 뛰었다. 모든 순간이 모험이었고, 어디서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몰려왔다. 마음이 뭉클해지자 우리가 마신 와인은 더 붉고 따뜻해졌다. 컴컴하고 조용한 골목에서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춤을 추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그토록 소중한 노래를 만나는,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강렬하게 나타나는 그런 일. 내게는 그 순간이 그러했다. 나는 Fast Car를 계속해서 듣자고 했고, 함께 모인 친구들도 흔쾌히 응했다. 모든 것이 풍성했다. 가사를 읽어 내려가며, 우리는 나지막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촛불이 우리의 입김에 가늘게 떨렸고, 작은 가게 안은 더욱 포근해졌다. 고개를 흔들거리며, 발목을 까딱이며 우리는 각자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그 순간 우리는 모로코에서 가장 빠른 차를 탔고, 기분이 넘실거리게 취했고, 모로코의 모든 밤 조명을 품었다.
그렇게 가장 빠른 차를 타고 나는 서사하라의 다클라(Dakhla)까지 도착했다. 어느덧 밤은 끝났고, 품었던 모든 빛들은 소멸되었다. 함께 출발했던 친구들은 소식을 모른 채, 각자의 티켓을 가지고 원하는 곳을 향해 흘러갔다. 홀로 남겨진 나는 어느 조용한 테라스에 하차하였다.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계속해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테라스를 넘어 다클라의 한적한 도로 위로 노래가 퍼졌다. 황량함이 풍성함으로 변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모든 가사를 들이켜, 문자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하고, 꺾인 굴절과 휘어진 곡선을 혀 끝으로 느꼈다. 문장의 모든 마디가 피부에 와닿았고, 지금껏 계속해서 느꼈지만 이름 없던 나의 감정들이 비로소 정의 내려지는 것 같았다.
나는 에싸위라의 골목, 친구네 작은 가게에서 친구들과 만든 계획을 떠올렸다. 우리는 에싸위라에 3층짜리 건물을 사기로 했다. 돈은 어떻게든 마련될 것이다. 친구들이 대출을 받거나 수당이 센 아르바이트를 짧게 하기로 했다. 나도 한국 통장에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으니 함께 하면 충분할 거라고 했다. 1층은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카페, 2층은 친구의 수공예품과 그림, 사진을 전시하고 팔기로, 그리고 3층에서는 밥도 팔고 술도 팔기로 했다. 그리고 매일 밤 일과가 끝나면 우리는 루프탑에 모여서 엘피 플레이어로 노래를 듣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기로 했다. 저 멀리 파도가 응답해줄 것이고, 갈매기가 우리 곁으로 모여들 것이다. 우리는 내부 인테리어를 고민하고, 가게 이름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를 진심으로 고민했다.
우리가 만들어본 그때의 계획들, 하룻밤 꿈일지라도, 우리가 모두 술에서 깨면 없어질 계획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엄청난 계획이었다. 우리를 지탱해주는 어쩌면 우리가 전부 이뤄서 호탕하게 소리치며 ‘거봐, 우리가 해낼 줄 알았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계획이었다. 그런 밤, 우리가 꿈꾸는 것은 전부 이루어질 것만 같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해 어디든 괜찮을 것 같은 그런 밤이었다. 어딜 가도 환영받을 것 같고, 그렇지 않더라도 위축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밤이었다. 그런 기분에 올라탔던 FAST CAR였다. 우리 모두 가진 것이 없더라도, 전부 다 가진 것 같고, 잃을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시간으로 탑승했던 밤이었다.
나와 친구들이 있는 곳마다 FAST CAR가 울려 퍼졌다. 너무 크지 않은 볼륨으로, 도시의 소음에 충분히 묻히다 이내 조그마한 정적이 다가오면 귓가를 가득 매워 마음속으로 불쑥 들어왔다. 다클라의 모퉁이 테라스에서 우두커니 피어오르던 노래가, 끈질기게 이어지던 그 노래가 몸 곳곳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우리는 우리가 함께 그렸던 3층짜리 건물을 기억했다.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한 우리의 꿈은 달콤했다. 각자가 당도한 곳에서 작고 소중한 꿈을 기억하는 동안 FAST CAR는 모로코의 밤을 계속해서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