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라는 착각" ㅣ 필리프 슈테르처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우리는 각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자신과 다른 사람은 그르다고 생각한다. 그 확신을 의심해 본 적이 있는가? 필리프 슈테르처에 따르면 '확신'이라는 건 우리 마음이 편하기 위해 뇌가 만든 환상이다. 그 환상이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만들어 우리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그러니 누군가 헛소리를 한다고 해서 너무 열받을 필요는 없다. 나 역시 그를 열받게 하고 있을 테니. "미친 거 아냐?"라고 소리칠 이유도 없다. '정상'과 '비정상'은 경계조차 명확하지 않다. 그러니 화내는 대신 자신의 확신을 경계하라!
"성능 좋은 예측 기계로 진화한 뇌(feat. 반복)"
저자 필리프 슈테르처는 '정신분열증' 연구로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왜 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자기기만적인 경향을 가지는지, 그런 사람들과 공존하는 방안이 있을지 함께 모색해 보기 위해 10년 간의 연구와 최신 뇌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뇌의 작용을 분석해 보여주면서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모든 것이 사실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치부했던 다른 사람들이 적어도 나만큼은 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열심히 설득한다.
하지만 일목요연하기보다는 자꾸만 되짚어가고, 계속해서 부연 설명을 덧붙이는 그의 이야기 스타일은 책을 읽을수록 사람을 헛갈리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기존에 많이 들어온 뇌 이론을 저자의 논리로 재구성한 1부의 경우 상대적으로 쉽게 읽히지만, '예측 처리 이론'이라 불리는 새로운 관점을 설명하는 2부는 그의 중언부언 스타일이 좀 더 부각된다. 그 이유가 마지막 옮긴이의 글에 등장하는 것처럼 '예측 처리 이론이 대중 과학서에는 처음 소개되는' 가설이라 조심스럽기 때문인지, 아니면 학자로서의 서술 스타일인 건지, 혹은 독일어 번역체의 특성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명확한 서술어를 쓰지 않고, 매번 다른 수식어 붙여가며 같은 얘기를 다른 식으로 반복하는 스타일 때문에 함께 책을 읽은 사람 중 다수가 큰 저항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매력적인 제목과 카피, 표지 이미지와 상반되는 스타일이라 너무 당황했다고. 하지만, 누군가와 대화가 힘들다고 포기한 적이 있다면, 저항을 이기고 꼭 읽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Q. 책을 읽은 소감은?
Y: 책은 다 읽었지만, 문장과 번역체 때문에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 괴악한 책이었다. 앞쪽은 괜찮았는데, 뒤로 갈수록 뭘 읽었는지 생각이 안 날 정도였고, 꾸역꾸역 다 읽었지만 화가 나서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확신적으로'... 그리고 한 문장을 서술하고 그걸 뒤집어서 또 얘기한다. 아우~
E: 이제 마지막 8장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는 얘기를 듣고 후루룩 읽다가 내가 뭘 읽고 있는 건가 싶었다. 마치 아나운서가 발은 연습하듯 읽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정 단어의 발음이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읽어보다 보니 정말 어렵더라. 아나운서 시험을 위해 소리 내어 읽기 좋은 책이 아닐까 싶었다.
S: 1부는 다 읽었고 2부는 제목만 봤다. 앞쪽은 내가 읽어온 책들의 지도를 그리듯이 읽게 해 줘서 좋았고, 진화라는 것이 비합리적 적응성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이 좋았다. 그리고 '병을 만들어 낸다'라고 하지 않나. 병이 아니었던 것을 병이라고 하니까 요즘 병이 많아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J: 1부까지 읽었다. 앞에 나오는 신경과 사례들이 매우 흥미로웠고,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나와 내 주변 상황에 대입이 많이 됐다. 절, 교회, 성당까지 다 다녔는데 한 번도 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 성경을 읽으라는데, 읽을수록 '이게 뭔 말이야. 이게 말이 돼' 싶었다. 세례명을 찾기 위해 성녀에 대한 얘기를 찾아볼수록 그랬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 "성경을 남자가 썼으니까 이모양이다'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정치적으로는 친구들이랑 성향이 비슷한데, 한번 크게 갈린 적이 있었다. 그게 특정 라디오를 듣는 사람, 혹은 특정 커뮤를 하는 사람에 따라 나뉜다는 것을 알고 이게 정말 합리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H: 1부까지 읽었고, 이걸 진화론적으로 얘기해 줄 줄 몰랐는데 참 흥미로웠다. 요즘 확증편향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온라인에서 노는 공간이 그런 경향이 심한데, 여론에 휩쓸리고 익숙해져서 그게 맞다고,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게 정말 내 생각인지 아니면 물든 건지 하는 고민이 든다. 정치적인 것이나 일본에 대한 것 등,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이 혼란스러움을 해결할 수 있을지 2부를 봐야겠다. 궁금하다.
K: 다 읽고 나니 8장만 읽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매장 앞에 나온 내용을 다시 설명하고 새로운 얘기를 시작하는 식이라, 계속 반복돼서 뒤로 갈수록 헷갈렸다. 반복하지 말고 새로운 것만 얘기하고 마지막에 한 번만 정리하면 좋았겠다. 저자가 반복하는 것으로 나를 세뇌시키려 하나 싶은 음모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에 대해 나만의 가설이 있었는데, 책을 읽고 보니 맞는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어서 재밌었다.
P: e북으로 읽었는데 글이 쏙쏙 들어오고 잘 읽혔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재밌었다. 인터넷에는 양극화가 심하지만 왜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까.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그게 다인줄 알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 예전에 지금의 기후위기가 인간 때문이 아니라 지구 자체의 온도가 오르고 내리는 변동성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인간 때문일 수 있겠다 싶다. 한 발짝 떨어져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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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적 확신은 "버그가 아니라 특성이다 It's not a bug, it's a feature."
내 안의 모순을 없애주고, 통제감을 되찾게 해주는 고마운 특성.
우리의 뇌는 예측 기계다. 뇌는 첫째, 학습된 지식으로 '내적 세계 모델'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도구로 가설을 만들어 들어오는 감각 데이터를 예측한다. 둘째, 예측에서 벗어나는 예측 오류를 활용해 '내적 세계 모델'을 지속적으로 최적화하고 업데이트, 즉 학습한다.
뇌가 예측을 위해 활용하는 내적 세계 모델 중 하나가 확신이다. 예측은 복잡성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감각적 예측과 인지적 예측으로 나눠서 보면, 인지적 예측은 보이는 사건, 그리고 사건 사이의 연관성, 그 원인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설이다. 한마디로 '큰 그림'. 이는 우리가 마주치는 많은 사건을 상위 시각에서 전체적 연관성을 가지고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시간이 흘러도 안정성을 갖는 세상이 돌아가는 일반적인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정하다면 확신이 아니라 그저 의견이나 예감이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을 굳게 확신하며, 고집스레 그것을 고수한다.
확신은 정확성이 높다. 여기서 정확성이라는 개념은 진실에 부합하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성이 떨어지더라도 불확실한 세상에서 앞을 내다보며 어떤 위험과 유익이 있을지 고려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예측 오류가 있더라도 끄덕 없이 유지되고, 쉽게 교정되지 않는다. 뇌에게는 진실을 찾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 자연선택을 통해 배출된 예측 기계인 뇌는 생존과 재생산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데 주목한다. 생존과 번식에 장기적으로 유리하지 않으면 진실성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않고, 우리에게 유익한 대로 지각한다.
예측은 발생 확률을 기준으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그랬다면 우리는 완벽하게 인식적-합리적 존재였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유익에 더 가중치를 둬서 확률적 가능성을 훨씬 웃도는 정확성을 부여한다. 이는 학술 논물을 정확하게 살피기보다는 직감에 이끌리는 학자와 비슷하다. 진실을 캐내는 면보다는 혹시라도 가설에 위배되는 실험 결과가 나와 커리어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 그래서 본인의 가설을 확인해 주는 데이터에만 주목하고, 가설에 모순되는 데이터는 애초에 유효하지 않을 것으로 보거나, 다른 학자들이 조작한 결과로 본다. 그리고 데이터에서 본인이 원하는 패턴만 임의로 읽어내고, 스스로를 대부분의 학자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느낀다. 이런 학자는 진실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주관적으로 우리의 뇌가 아무리 확실하게 느낀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그리 확실한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확신은 언제든 거짓으로 드러날 수 있다.
*인식적 비합리성이 생겨나는 메커니즘
뇌의 감각 예측이 부정확하면 오류 신호를 강하게 유발하고, 이를 통해 내부 모델이 업데이트되며 예측이 조정된다. 이때 도파민은 예측 오류 신호의 음량 조절기로 작용한다.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면 예측 오류 신호에 대한 볼륨이 한껏 높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주 약한 오류 신호도 한껏 높아진 도파민의 볼륨 때문에 큰 비중으로 다뤄진다. 예상이 틀렸으며, 내적 세계 모델을 조절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도파민이 과잉되면 일반적으로는 주목하지 않았을 감각적 자극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비정상적 현저성aberrant salience'라고 한다.
화학요법을 받은 뒤 지하철 조명이 평소와 다르고 주변 사람들도 이상하게 보이는 등 갑자기 세계가 기묘하고 멸망 직전에 이르렀다고 느끼는 것, 이것이 비정상적 현저성이다. 정신 질환이 막 진행된 사람들이 묘사하는 지각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공기 중에 뭔가가 있을 것 같고, 덤불 속에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 세상이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설명을 찾으려 한다.
인식적 비합리성이 생겨나는 건 본질적으로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 설명되지 않을수록 설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지고, 그럴수록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에 이끌리고 검증 없이 받아들인다. 경험이 혼란스러울수록 설명이 주는 안도감이 커지고, 그렇기에 사실이 그에 배치되더라도 새로 얻은 통찰을 굳게 고수한다.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모든 확신은 경험을 이해하고, 지각을 더 커다란 그림으로 정돈하고,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찾도록 도와준다.
정신증적 경험을 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지각적, 감각적 확증 편향이 약하다. 예측과 감각 데이터 사이의 균형이 무너져 예측이 약해진 것이다. 이는 인지적 확증 편향을 강화시킨다. 처음에 부여잡은 확신과 맞아떨어지는 정보를 더 중요한 것으로 평가하고, 더 잘 기억한다. 망상적 확신이 교정 불가능한 것이 이로써 설명된다. 새로운 정보가 나와도 기존 확신에 맞는 것만 선택적으로 지각하기 때문이다.
위계질서상 낮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지각적 예측과 달리 확신처럼 위계질서적으로 높은 수준의 예측은 그것이 망상적 확신이라 해도 정확성이 높다고 인식된다. 그래서 교정되기 힘들다. 이는 일종의 상쇄 메커니즘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시스템이 잘 돌아가려면 예측 위계질서상 낮은 수준에서의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은 '혼란'이 위계질서상 높은 수준에서의 과잉 확신을 통해 정돈돼야 하는 것이다. 위계질서상 더 낮은 수준이 일을 충분히 잘하지 못하면 높은 수준이 지휘권을 넘겨받을 수 있고, 그로써 망상적 확신을 굳게 고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을 검증 없이 받아들이기 쉽고, 그렇게 형성된 확신을 포기하기 어렵고, 비합리적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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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4 진화정신의학은 오늘날 우리를 정신적으로 병들게 만드는 유전적 소인이 옛날에는 적응적이었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식량이 풍족해진 현대 문명의 놀라운 성취가 비만과 당뇨 같은 만성질환의 원인인 것처럼, 조현병, 우울증, 자폐증, 섭식 장애, 불안 장애 등도 마찬가지라는 것. 작은 집단에서 빠듯한 자원을 두고 적과 경쟁해야 했던 선조들에게 불신과 편집증적 경향은 생존에 유익을 주었을 것이다. 정신분열증을 가져오는 유전자 변이는 원시 인류에게 있어서는 초자연적 힘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 사회집단에서 샤먼의 지위를 부여받거나 명망을 얻을 수 있어, 유전적 향상을 의미했을 수 있다.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유전적 질환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Q. 심지어 현대에서도 가벼운 정신증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창조적이고, 더 쉽게 파트너를 구할 수 있다는 연구가 등장하는데(p.124). 실제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 적이 있는지?
K: 자연에서는 실용적이지 않는 것에 끌리지 않나. 공작새러럼. 자연스러운 것 같다.
S: 미대 오빠, 교회 오빠, 음대 오빠, 뭐 그런 매력적으로 보이는 포인트가 있긴 하다.
H: 한 때 신경질적인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때가 있었다. 학생 시절 그런 환상을 주는 남자 선배를 좋아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회사에서 함께 일하면서 환상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저러고 있네 싶어서.
Y: 나도 미간에 주름이 있는 남자가 이상형이었다. 아는 후배의 오빠가 그런 류로 교회에서 꽤 인기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20년 후에 만났더니 자기 재주만 믿고 칠렐레 팔렐레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흠흠. 이 오빠가 그 오빠였나 싶었다. 그때는 정말 괜찮았는데.
J: 나도 4차원 또라이 캐릭터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능력 있고 성실하고 그런 사람이 진짜 성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E: 어렸을 때 4차원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랑 비슷한 사람은 싫었던 것 같다.
Y: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 ADHD처럼 주의력이 산만한 사람들이 약간 더 창조적인 경향이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 중에 마을 사람들이 그 여자가 헤퍼서 그렇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나서 불편했다.
저자는 프롤로그와 8장, 그리고 에필로그를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얘기를 반복한다.
진화론적으로 자연스러운 특성이라고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와 다른 사람의 비합리적 확신을 이해하면 어떻게 대처할지 선택할 수 있다.
능동적으로 확신에 의문을 가지고, 타인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게 어떨까?
Q.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는가?
Y: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선문답 하듯이 늘어놓다니! 물론 사람들마다 경화된 부분이 있지만 대부분 공통적인 수준이다. 100프로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사람을 대상으로 쓴 것 같다. 왜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들에게 해야 할 얘기를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을까. 게다가 이야기의 끝이 너무 두리뭉실하고 방법론은 없는지라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 조현병 환자를 만나면, 그래서 어쩌란 얘긴가?
H: 실제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내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적절한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상처를 안 주는 방향에서 예의를 지키고 싶은데, 그 모습을 직접 보면 너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잘 대하기가 어렵다. 결국 거리를 두고 멀어진다.
S: 맞다. 전에 함께 읽었던 '잡았다, 네가 술래야'에서는 그런 사람과 거리를 두라는 결론이 아니었나. 그것과는 반대되는 이야기의 책이다.
J: 파킨슨병으로 투병하신 엄마와의 경험을 돌아볼 때 경계는 정말 모호하다. 실제 증상인지 약의 부작용인지. 이 책이 재미는 없었지만 그런 얘기를 다룬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와 발달장애가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면서 그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 것처럼 조현병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신경과 간호사마저도 그런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에필로그를 소개하며 후기를 마친다..
에필로그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는 불확실성을 감내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 단순한 진실이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 학문 영역의 기술적 진술과 정치의 영역의 규범적 진술, 서로 다르지만 확증 편향은 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정치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켜 명백한 메시지를 만들고 기조나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것으로 신뢰를 얻는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분명해야 한다는 기대를 부추기고 불확실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점점 더 단순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선호하고, 음모론과 포퓰리즘적 선동에 잘 넘어가게 된 건 아닐까?
불확실성을 감내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은 불확실성을 용인하고 감내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이웃에게, 음모론을 믿고 잘못된 확신을 수정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우리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있고 함께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것을 전달할 수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열린 태도와 진정한 관심, 분별력과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해 나가라고 권하고 싶다..
2024. 6. 15(토) 오전 10시 반 @아차산역 후문 카페
참석자: 8명(Y, E, S, J, H, K, P,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