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도 켜진 불빛, 도로 위를 밝히는 배려의 언어

주간 주행등 이야기

by 조성우


밤길뿐만 아니라 환한 낮에도 도로 위에서는 수많은 불빛이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중에서도 이제는 모든 자동차의 얼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간 주행등(DRL, Daytime Running Lamp)은 단순한 디자인 요소를 넘어, 도로 위의 모든 사용자가 서로의 존재를 더 빨리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아주 특별한 약속입니다.


오늘은 유엔 규정 No. 48(UN Regulation No. 48)을 바탕으로, 주간 주행등 속에 담긴 법규 내용과 그 안에 숨겨진 배려의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가끔 낮에 전조등을 켜고 달리는 차를 보며 왜 낮에 불을 켜고 다닐까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주간 주행등은 내가 길을 보기 위해 켜는 등이 아니라, 남들에게 내 차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켜는 등입니다. 이는 내가 여기 있으니 우리 서로 안전하게 운전해요라는 도로 위에서의 따뜻한 고백이자, 보행자와 다른 운전자를 향한 깊은 배려의 표현입니다.



나를 위한 빛이 아닌, 당신을 위한 빛


주간 주행등의 핵심은 이타심입니다. 운전자인 나에게는 당장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도, 맞은편에서 오는 운전자나 길을 건너려는 보행자에게는 나의 존재를 명확히 알리는 신호가 됩니다. 낮 시간대 교통사고 감소에 큰 효과가 있다는 통계는, 이 작은 불빛 하나가 타인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되어 모두의 안전으로 귀결됨을 보여줍니다.

유엔 규정 No. 48에 따르면, 주간 주행등은 동력을 사용하는 모든 자동차에 의무적으로 설치되어야 하는 장치입니다(트레일러는 제외).



이 규정에는 두 가지 중요한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자동 작동의 약속입니다. 주간 주행등은 운전자가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시동을 거는 순간 자동으로 켜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운전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차량이 스스로 주변에 자신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사고를 예방하려는 기술적 배려입니다.

둘째는 색상의 약속입니다. 주간 주행등은 가장 명확하게 눈에 띄면서도 혼란을 주지 않는 백색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주간 주행등이 너무 밝거나 위치가 어긋나면 오히려 다른 운전자에게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법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매우 정밀한 설치 기준을 제시합니다.

설치 위치는 지면으로부터 최소 250mm에서 최대 1,500mm 사이의 높이여야 하며, 차량 전방의 양 끝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각도에서도 차량의 폭과 위치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두 개의 주행등 사이의 거리는 최소 600mm 이상(차폭이 1,300mm 미만인 경우 400mm)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는 멀리서 보았을 때 두 개의 빛이 하나로 뭉쳐 보이지 않게 하여, 다가오는 차량의 크기를 명확히 인식하도록 돕는 공학적 배려입니다.



주간 주행등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신호를 방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호를 방해하지 않는 겸손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간 주행등과 방향 지시등의 거리가 40mm 이하로 가깝다면, 방향 지시등을 켰을 때 해당 쪽의 주간 주행등이 꺼지거나 밝기가 줄어들어야 합니다. 이는 나의 존재감보다 내가 곧 회전하겠다는 의사 표현이 뒷차나 맞은편 차에게 더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스스로를 낮추는 기술입니다.


또한 밤이 되면 자리를 양보합니다. 주간 주행등은 밤이 되어 전조등이나 안개등이 켜지면 자동으로 꺼져야 합니다. 밤에는 너무 밝은 주간 주행등이 오히려 상대방의 눈을 부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전조등이 깜빡거리며 경고 신호를 보낼 때는 꺼지지 않아도 됩니다.



물러설 때를 아는 미덕


나의 존재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긴급하고 중요한 소통(방향지시등, 전조등)을 위해 스스로 빛을 줄이거나 끄는 모습은 우리네 삶의 태도와도 닮아 있습니다. 내가 돋보여야 할 때와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 이것이 도로 위의 질서를 만드는 기본 원리입니다.



주간 주행등(DRL)은 단순한 기술 사양의 나열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 움직이고 있고,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낮 시간 내내 보내는 도로 위의 안전 수호자입니다. 유엔 규정 No. 48에 명시된 복잡한 수치들은 결국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더 빨리 확인하고, 불필요한 사고를 줄여 모두가 웃으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돕는 무언의 약속입니다.


비유하자면 주간 주행등은 낮에 입는 형광색 안전조끼와 같습니다. 내가 길을 더 잘 보기 위해 입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그림자 속이나 복잡한 도심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 빨리 발견하여 서로 부딪히지 않게 도와주는 친절한 표시입니다.

오늘 낮, 길에서 만나는 주간 주행등의 하얀 불빛을 보며 서로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을 한 번쯤 떠올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안전 운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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