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R155
오늘날의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라고 불릴 만큼 똑똑해졌습니다. 하지만 편리함이 커질수록 내 차가 해킹당해 갑자기 멈추거나 누군가 내 위치 정보를 훔쳐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운전자들의 깊은 고민과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마련된 약속이 바로 UN Regulation No. 155(UN R155)입니다.
UN R155는 차량의 사이버 보안 및 사이버 보안 관리 체계(CSMS) 승인에 관한 통일된 규정입니다. 2021년 1월에 발효된 이 규정은 자동차 제조사가 차량을 설계하고 만들 때부터 폐기될 때까지 사이버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이버 보안이란 차량의 전기 또는 전자 부품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차량과 그 기능을 보호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CSMS는 이러한 위험을 처리하고 공격으로부터 차량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적인 프로세스와 거버넌스를 정의하는 체계적인 접근 방식을 말합니다.
타이어 펑크나 엔진 고장은 눈에 보이지만, 해킹은 눈에 보이지 않아 더 큰 불안을 줍니다. 누군가 내 차의 제어권을 뺏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공포를 개인의 걱정거리가 아닌, 제조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의무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이 법안은 운전자에게 심리적 안전감을 선물합니다.
우리가 막연히 걱정했던 부분들이 실제로 규정 내 위협 리스트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제조사는 다음과 같은 위험들을 반드시 관리해야 합니다.
첫째는 백엔드 서버 공격입니다. 차량과 연결된 서버가 해킹되어 차량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서비스가 중단되는 경우를 막아야 합니다.
둘째는 통신 채널 조작입니다. 차량으로 수신되는 메시지를 가로채거나 통신 채널을 통해 악성 코드를 주입하는 행위를 방지해야 합니다.
셋째는 데이터 및 코드 조작입니다. 차량의 소프트웨어를 무단으로 변경하거나 주행 거리, 속도 등의 데이터를 조작하는 행위를 차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의도적인 인간의 실수입니다. 정비사나 소유자가 속아서 악성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게 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위협들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되기에, UN R155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완화 조치를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자동차 제조사는 단순히 차를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차량의 전체 수명 주기(개발, 생산, 생산 후 단계) 동안 보안을 책임져야 합니다.
먼저 CSMS 인증을 획득해야 합니다. 제조사는 승인 당국으로부터 사이버 보안 관리 체계가 적절하다는 CSMS 적합성 인증서를 받아야 하며, 이 인증은 최대 3년간 유효합니다. 또한 차량의 개별 요소와 외부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포괄적인 위험 평가를 수행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입니다. 차를 판 후에도 끝이 아닙니다. 제조사는 사이버 공격을 탐지하고 대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며, 새로운 위협이 발견되면 합리적인 시간 내에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더불어 차량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협력사들의 사이버 보안 위험까지도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차를 구매하고 나면 관리는 오롯이 소비자의 몫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차를 파는 순간 제조사의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부터 지속적인 보안 모니터링이라는 새로운 보호의 관계가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내 차가 도로 위에 있는 한, 누군가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됩니다.
UN R155 규정은 승용차 및 화물차 등과 전자 제어 장치가 장착된 트레일러 등에 적용됩니다. 제조사가 이 규정을 지키지 못하거나 보안 조치가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승인이 거부되거나 이미 내려진 승인이 철회될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UN R155는 자동차 제조사가 우리에게 이 차는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안전합니다라고 공식적으로 약속하는 보증서와 같습니다.
이 규정은 마치 현대 사회의 자동차에 채워주는 디지털 안전벨트와 같습니다. 물리적인 사고로부터 안전벨트가 우리를 보호하듯,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여 안심하고 도로 위를 달릴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