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백만 마일이 말해주는 것
자율주행차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캘리포니아 DMV가 공개한 숫자들을 따라가다 보면, 기술의 현재와 규제의 고민이 동시에 보입니다.
2024년 12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딱 1년, 캘리포니아 공공 도로 위를 달린 자율주행 테스트 차량들이 쌓아올린 거리입니다. 9백만 마일. 숫자만 들으면 막연하지만, 지구 둘레가 약 24,900마일임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실감남니다. 자율주행차들이 지구를 무려 364번 돈 셈이죠.
그리고 이 숫자는 전년 대비 450만 마일 증가한 것으로. 1년 새 테스트 규모가 사실상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입니다.
9백만 마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안전 관리자 동승 테스트: 4,883,058마일 여전히 운전석 혹은 보조석에 안전 요원이 탑승한 채로 달린다. 시스템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기술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을 때, 혹은 새로운 노선과 환경을 처음 탐색할 때 주로 이 방식이 쓰입니다.
완전 무인 테스트(Driverless): 4,192,984마일 아무도 없습니다. 정말로. 차 안에 사람이 한 명도 없이 도심을 달리는 것입니다. 이 숫자가 전체의 46%에 달한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웨이모(Waymo)가 이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렇게 수치로 보면 그 규모가 다시 한번 실감납니다.
보고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숫자는 Disengagement 9,315회입니다.
Disengagement란, 자율주행 모드에서 사람이 수동으로 차를 넘겨받는 순간을 말합니다. 기술 오류, 돌발 상황, 또는 시스템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직관적으로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처럼 보입니다.
그동안 Disengagement란 기술 실패 또는 안전 우려로 인해 안전 운전자가 자율 모드에서 수동 조작으로 전환하는 사건으로, 자율주행 기술 성숙도를 간접 측정하는 지표로 인식되어 왔고, 9백만 마일에 9,315회니까 약 970마일당 1회 꼴입니다.
서울에서 부산이 약 400km(250마일)이니, 왕복 두 번 정도 달리면 한 번씩 사람이 개입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이 숫자, 정말 의미 있는 안전 지표일까?
자율주행 업계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 지표의 한계를 지적해왔습니다. 캘리포니아 DMV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측정 기준이 회사마다 제각각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회사는 시스템이 조금이라도 불확실하면 즉시 드라이버에게 넘기도록 설계하고, 어떤 회사는 더 많은 상황을 자율적으로 처리하도록 설계합니다.
전자는 Disengagement횟수가 많이 찍히고, 후자는 적게 찍힙니다. 그런데 숫자만 보면 전자가 '더 위험한 기술'처럼 보입니다. 이건 명백한 왜곡입니다.
업계는 Disengagement가 "자율주행 운행 경험이 쌓일수록 시스템 안전성의 의미 있는 척도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유사한데,- 전체 비개입의 77%는 운전석에 앉아있는 안전 관리자가 먼저 개입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나, 이 지표만으로 기술 성숙도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제조사들은 이미 충돌율같은 더 직접적인 안전 지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DMV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규제 체계를 2026년 안에 확정할 예정입니다.
핵심 변화는 이렇습니다.
Disengagement 보고 의무가 삭제되고, 대신 '동적 주행 작업(Dynamic Driving Task) 시스템 실패' 보고로 대체됩니다.
단순히 "사람이 핸들을 잡은 횟수"를 세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시스템이 주행 판단에 실패한 순간만을 추적하겠다는 것입니다.
추가로 도입되는 보고 항목들도 흥미롭습니다.
교통 법규 위반으로 경찰에게 적발된 자율주행차 건수
충돌 사고 세부 내역
차량이 멈춰 움직이지 못한(Immobilization) 사례
시속 35마일 이상 도로에서의 비상 제동 이벤트
테스트 허가를 받은 업체는 월별로, 배포(상업 운행) 허가를 받은 업체는 분기별로 데이터를 제출해야 합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도로에서 자율주행 테스트가 허용된 구조는 3단계입니다.
안전 드라이버 동승 테스트 허가: 30개사 — 가장 많고, 가장 기초적인 단계
완전 무인 테스트 허가: 6개사 — 기술력을 어느 정도 검증받은 기업들만 진입 가능
상업 운행(Deployment) 허가: 3개사 — 실제로 돈을 받고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단계
웨이모는 이 3단계를 모두 통과한 사실상 유일한 승자입니다. 그 뒤를 쫓는 수많은 회사들이 아직 테스트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편 15개사는 공공도로 테스트를 아예 진행하지 않았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자본은 유지하되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자율주행 산업에서도 '살아있지만 실질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플레이어들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측정하느냐가 무엇이 '잘 되고 있다'는 인식을 만듭니다.
캘리포니아 DMV가 Disengagement지표를 폐기하고 새로운 기준을 도입하려는 것은, 단순히 행정 절차의 변화가 아닙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동시에 규제 당국이 업계의 현실을 따라잡으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9백만 마일. 9,315번의 개입. 그리고 곧 폐기될 그 숫자.
자율주행의 역사는, 어쩌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다시 묻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자율주행 기술은 Waymo·Zoox를 중심으로 기술 성숙 단계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지만, 기업 간 격차가 수십 배에 달할 만큼 승자독식 구도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2026년 추가보고항목으로 인하여 데이터 신뢰성을 높이는 동시에, 화물·대중교통으로의 적용 범위 확대를 예고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 California DMV Autonomous Vehicle Disengagement Report 2025, California DMV 개정안 (2025년 12월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