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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여정에서 인간과의 협업을 꿈꾸다

원격 제어의 시대가 온다

by 조성우

완전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가득 메우는 미래. 우리는 아직 그 여정의 중간에 서 있습니다. Waymo와 같은 선두 주자들은 기술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상용화 확장에 나서고 있지만, 복잡한 도심 환경과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은 여전히 완전 자율주행의 발목을 잡는 난제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율주행의 ‘숨은 조력자’이자 현실적인 대안으로 원격 제어(Teleoperation) 및 원격 지원(Remote Assistance) 기술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왜 지금 ‘원격’ 기술이 주목받는가?


자율주행 기술 경쟁의 패러다임이 ‘기술 실험’에서 ‘상용화 확장’ 국면으로 이동하면서, 더 이상 완벽한 기술의 도래만을 기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서비스를 확장할 수 있느냐가 핵심 과제입니다. 원격 제어 및 지원은 바로 이 ‘과도기’를 메워주는 최적의 솔루션입니다.


* 현실적 대안: 우리나라처럼 교통이 밀집되고 골목길이 복잡한 도시 구조에서는 완전 자율주행보다 원격 지원형 서비스가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 안전망 확보: 자율주행 시스템이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원격 관제 센터의 인간 운전자가 개입하여 위험을 회피하고 안전을 확보합니다.

* 서비스 연속성: 차량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도로 공사나 경찰의 수신호 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원격 지원을 통해 운행을 중단 없이 이어갈 수 있습니다.


독일 원격운전 서비스, 자동차 소유 개념을 바꾸다


최근 독일에서 흥미로운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가 등장했습니다. 원격 운전(remote driving)을 통해 차량을 고객에게 보내주고, 다시 수거하는 방식으로 개인 자동차 소유 개념 자체를 흔들고 있는 것이죠.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Vay라는 스타트업입니다. Vay의 시스템은 단순한 자율주행이 아니라, “원격 운전자(remote driver)”가 직접 차량을 조종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서비스의 운영 방식

1. 차량 호출

사용자가 앱을 통해 차량을 호출하면, 원격 운전자가 차량을 직접 조작해 고객의 위치로 이동합니다.

2. 사용자 주행

고객은 목적지까지 차량을 직접 운전하며 이용합니다.

3. 차량 반납

목적지에 도착해 차를 반납하면, 다시 원격 운전자가 원격 제어로 차량을 회수합니다.


레벨 3 자율주행과의 차이


많은 분들이 이 모델을 듣고 “레벨 3 자율주행(부분 자동화)”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비스 개념과 적용 시점이 다릅니다.

• 레벨 3 자율주행은 차량이 기본적으로 주행을 맡다가, 특정 상황에서만 사람이 개입하는 모델입니다. 이 과정에서 운전자가 얼마나 빨리 제어권을 인수할 수 있는지가 안전상의 큰 과제로 꼽히죠.

• 반면 Vay의 원격 운전 서비스는 처음부터 운전 주체가 명확합니다.

• 차량 이동 시에는 원격 운전자가 100% 조종

• 사용 중에는 고객이 직접 운전

• 반납 이후 다시 원격 운전자가 차량 회수


즉, “누가 운전하는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없다는 점에서 전환 위험이 줄어들고, 제도적 설계도 명확해집니다.


제도적 기반과 의미


독일은 이미 이 같은 원격 운전 모델을 합법화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승인된 지역 내에서는 자격을 갖춘 원격 운전자가 상업 운행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죠. 이 덕분에 Vay는 2025년 말부터 본격적인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비용 면에서도 기존 차량 공유 서비스 대비 절반 수준의 가격을 목표로 하고 있어, 개인이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차량을 굳이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은 전통적인 자율주행 발전 경로와는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완전한 무인 주행(레벨 4·5)으로 단숨에 뛰어오르기보다, 원격 운전 인프라와 법적 제도를 통해 ‘부분적 무인화’를 상용화하는 전략인 것이죠.

• 기술적으로는 통신 지연, 원격 제어 안정성 같은 새로운 과제를 풀어야 하고,

• 사회적으로는 ‘자동차 소유 대신 필요할 때 불러 쓰는 서비스’라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결국 Vay의 시도는 단순히 자율주행 기술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 이용 방식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라는 더 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레벨 3 자율주행이 “자동차가 주행을 맡고, 사람이 상황에 따라 개입하는 모델”이라면, Vay는 “원격 운전자가 퍼스트·라스트 마일을 담당하고, 사용자가 주행을 맡는 모델”로서 책임 구조와 서비스 시점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 핵심적인 차이입니다.


실제로 독일의 Vay 사례는 완전 자율주행 이전 단계에서 원격 운전이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주요 국가들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주요 국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원격 운행 시대를 준비하며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법규, 운영 모델, 기술 표준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을 결정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미국: 자유로운 경쟁 속 실증 데이터 확보


미국은 연방 차원의 강력한 규제보다는 각 주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이는 Waymo, Cruise, Zoox와 같은 다양한 기업들이 실제 도로에서 서비스를 운영하며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 규제 특징: 연방 자동차 안전 기준과 주별 해석을 병행하며, 차량 내에 운전자가 없는 무인 운행을 허용하는 등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합니다. 캘리포니아주는 원격조작에 대한 정의를 별도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 운영 모델: Waymo가 대표적으로, 원격 지원과 원격 조작을 구분하여 운영합니다. 대부분의 상황은 차량 스스로 해결하지만,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원격 관제 센터가 개입하는 모델입니다. 이는 기술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입니다.


중국: 국가 주도의 강력한 표준화와 육성


중국은 국가가 산업 표준을 제시하고 강력한 정책 지원을 통해 원격 운행 산업을 빠르게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원격 운전자의 자격 요건과 직무 범위를 구체화하며 안정적인 산업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 규제 특징: ‘원격안전원’이라는 직무를 명시하고 이들의 업무 범위와 인력 배치 기준까지 국가가 직접 관리합니다. 또한, 5G 망을 활용한 통신 지연 시간 데이터 로그 보관(90초 전후)등 구체적인 기술 요건을 제시하며 통신 안정성을 강조합니다.

* 운영 모델: 대규모 도시에서 인력 기반의 원격 관제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국가 차원에서 활용하여 기술 고도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국가 주도의 도시 시설 투자와 결합하여 원격 운행 인프라를 빠르게 확장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독일: '기술감독자' 중심의 체계적인 안전 확보


독일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기술감독자(Technical Supervisor)’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원격 운행의 책임 소재와 안전 관리 체계를 명확히 한 것이 특징입니다.


* 규제 특징: 연방법과 시행령을 통해 원격 운행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특히, ‘기술감독자’에게 모니터링 의무를 부여하고, 이들이 제조사와 책임 범위를 분담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이는 사고 발생 시 책임 공방을 줄이고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합니다.

* 운영 모델: Vay 사례처럼 특정 구역 내에서 자격을 갖춘 원격 운전자에 한해 상업적 운영을 허용하는 단계적 접근 모델을 보여줍니다. 이는 제한된 환경에서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한 후 점진적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려는 전략입니다.


일본: '원격감시'와 '원격조작'의 이원화


일본은 도로교통법 개정을 통해 원격 운행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평시의 ‘원격감시’와 비상시의 ‘원격조작’을 구분하여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 규제 특징: ‘특정자동운행 주임자’를 지정하여 원격감시 및 조작의 책임을 맡도록 규정했습니다. 또한, 통행 허가 신청 절차를 명확히 하고, 사고 발생 시 운행 책임자와 정보보안 책임자 간의 연계를 강조하며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 운영 모델: 농촌형 자율주행 등 특정 환경에서 실증 사업을 활발히 운영하며 사회문제 해결형 모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령화, 인구감소 등 일본이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모빌리티 기술로 해결하려는 시도입니다.


한국의 기회와 과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아직 원격 운전에 대한 명확한 법적 토대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산업적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성공적인 상용화를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과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1. 통신 안정성 확보: 네트워크 지연은 곧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터널, 지하 등 통신 취약 지역에 대한 커버리지 확보와 전용 주파수 할당 등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2. 사이버 보안 체계 구축: 원격 조종 시스템 해킹은 대규모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강력한 보안 인증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3. 책임 소재 명확화: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기존 자율주행차 보험법을 원격 운전 상황까지 확장 적용하는 등 신속한 법제화가 필요합니다.

4. 사회적 수용성 확보: 신기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투명한 안전성 검증 및 시연, 정부 인증 제도 등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Waymo가 꿈꾸는 완전 자율주행의 시대는 언젠가 올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 Vay의 사례는 그 과정에 더 현실 적이고 창의적인 대안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진화가 아니라, 우리의 이동 습관과 자동차 소유 문화를 바꾸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은 이제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목표를 넘어, ‘인간과 어떻게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협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원격 제어와 지원 기술은 그 고민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해답이며, 한국이 가진 ICT 인프라와 결합될 때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미래 신산업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의 준비가 대한민국을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선도자로 만들 것입니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5/sep/25/raring-to-go-the-german-remote-driving-firm-that-hopes-to-make-private-car-ownership-redundant ​ (접속일 : 2025.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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