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적인 평화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며
우리의 삶은 거대한 맷돌과 같다. 한쪽에서는 즐거움이 쏟아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만큼의 고통이 갈려 나온다. 낮이 있으면 반드시 밤이 오고, 타는 듯한 무더위 뒤에는 뼛속까지 시린 혹한이 찾아오는 것이 이 행성의 자명한 물리 법칙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은 이 당연한 이치를 온몸으로 거부한다. 그들은 늘 ‘한쪽’만을 취하려 비굴하게 매달린다.
술을 마셔 쾌락을 얻었다면 다음 날의 처절한 숙취를 감당하는 것이 우주의 계산법이다. 고액 연봉을 받으며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피 말리는 스트레스와 영혼을 갉아먹는 노동을 지불해야 한다. 단란한 가정을 꿈꾼다면 아이들의 지독한 반항과 배우자와의 진흙탕 같은 갈등 또한 내 삶의 일부로 껴안아야 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돈은 벌고 싶지만 땀 흘리기는 싫어하고, 사랑은 갈구하면서 정작 타인을 위해 자신을 깎아내기는 죽기보다 싫어한다. 이것은 마치 허공에 대고 못질을 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불가능한 망집(妄執)이다.
세상의 모든 재앙과 파괴, 그 중심에는 예외 없이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감히 말한다. 돈과 명예 그 자체가 악은 아니다. 그것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잘 쓰면 그뿐이다. 진짜 지옥문이 열리는 지점은 인간이 그 물질의 머리채를 잡으려 들거나, 반대로 그것에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다니기 시작할 때다. 집착이 시작되는 순간, 인간의 눈은 멀고 이성은 마비된다.
지금 인류는 온몸과 마음이 시커멓게 곪아 터져 있다. 탐욕이라는 종기가 터져 진물이 흐르고 악취가 진동한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서로의 환부를 가려주며 가증스러운 연극을 이어간다. 겉으로는 화려한 분칠을 하고, 명품 향수를 뿌려대며 “그래도 희망을 놓지 말자”, “긍정적으로 살자”라는 위선적인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나는 이런 비열한 자기기만이 역겹다.
시중의 흔한 자기 계발서나 종교 서적들은 말한다. “욕망을 내려놓으라”, “나를 학대한 부모를 용서하고 사랑으로 기도하라”. 나는 이 말들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폭력이자 기만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에서 들끓는 욕망을 그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바라만 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가해자를 신의 이름으로 용서하라는 것이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소리인가? 쓰레기 더미가 더러우면 당장 치울 생각을 해야지, 그 위에 하얀 눈이 쌓인다고 해서 그 밑의 악취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던져진 이 세상은 너무나 서슬 퍼렇고 생생하다. 눈앞의 고통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실재하는 칼날이다. 이 칼날 위에서 춤을 추면서도 아프지 않은 척, 거룩한 척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삶의 고락이라는 맷돌에 들들 갈려 나가면서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 입을 틀어막는 것과 같다.
나는 이 위선적인 평화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거부한다. 차라리 이 세상이 쓰레기장임을 인정하고, 그 악취를 정면으로 맡으며 분노하는 것이 훨씬 인간다운 정직함이다. 곪은 부위는 적당히 가릴 것이 아니라, 생살을 찢어서라도 고름을 짜내야 한다. 자멸의 길로 치닫는 인류라는 기차에서 뛰어내릴 수 없다면, 적어도 이 기차가 벼랑 끝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똑똑히 응시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지키고 싶은 최소한의 존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