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1개월
알코올 그녀와 헤어진 지 11개월이 조금 넘었다. 이제 1년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처음 술을 입에 댄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가 건넨 맥주 한 캔.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들이켰고, 나는 그 모습이 낯설고 두려웠다. 저렇게 마시면 큰일 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때의 나는 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다시 술을 만난 건 고등학교 3학년 겨울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우리는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그 시절의 우리는 자유로웠고 동시에 무모했다. 그때부터였다. 1987년 겨울, 알코올 그녀는 내 삶에 들어왔다.
대학 시절 내내 나는 그녀에게 끌려다녔다. 필름이 끊기고, 길에 쓰러지고, 싸움을 벌였다. 돌이켜보면 흔한 젊은 날의 방황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순간들은 분명 선을 넘고 있었다. 술에 취해 고속도로를 향해 돌을 던졌던 그 밤처럼. 그것은 장난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망칠 수도 있었던 위험한 행동이었다. 술은 그렇게 판단을 지워버렸다.
군대에 가서야 잠시 거리를 둘 수 있었지만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했다. 휴가를 나오면 다시 그녀를 찾았다. 복학 이후 우리는 다시 가까워졌고, 사회에 나가서도 관계는 계속되었다. 신용카드를 긁어가며 술을 마시던 시절, 나는 이미 그녀에게 깊이 잠식되어 있었다.
마흔 중반, 번아웃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이혼까지 겪었다. 그 이후로 알코올 그녀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위로이자 도피처가 되었다. 하루라도 마시지 않으면 불안했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을 채워 넣어야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38년이 흘렀다.
변화는 몸에서 먼저 왔다. 가려움과 붉은 발진이 시작되었고 점점 번져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결국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병원을 다녀도 명확한 원인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내 몸이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그래서 결심했다. 그녀와 헤어지기로.
2025년 5월 1일, 나는 술을 끊었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계속 나를 불렀다. 특히 더운 여름밤이면 차갑게 얼린 잔에 담긴 맥주를 들이켜는 상상이 수없이 떠올랐다. 그리움은 생각보다 집요했고, 때로는 설득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는 속삭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몸은 정직했다. 잠이 깊어졌고, 피부가 좋아졌고, 이유 없이 올라오던 짜증이 사라졌다. 자주 아프던 곳들도 더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알코올은 그저 하나의 물질일 뿐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문제는 언제나 내 마음이었다.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려는 불안. 술은 그것을 잠시 잊게 해 주었지만, 결국 더 큰 갈증으로 되돌아왔다.
지금 나는 술뿐 아니라 몇 가지를 더 끊었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의외로 삶은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간다. 오히려 더 또렷해졌고, 더 단단해졌다. 밤은 조용해졌고, 하루는 길어졌다.
그래도 가끔 그녀가 그립다. 힘들 때마다 곁에 있었던 존재였으니까. 가장 빠르게 나를 위로해 주던 방식이기도 했다. 그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인연에는 끝이 있다. 닿았으면 머물고, 머물렀으면 떠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나는 그녀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나를 여기까지 이끈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를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결국 돌아보게 만든 존재였으니까.
어딘가에서 잘 지내길 바란다.
다음 생에서,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안녕, 알코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