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n - Carat(Prod. Dosii)
야속하게도 같은 정도의 사랑은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만일 네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내가 사랑한다면, 너의 기대를 부응하려 난 더 가벼운 사람이 될 거야. 내 안의 무거운 생각들을 네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저 이대로 가벼운 말들을 주고받는 게 서로에게 편한 사랑이 될 거야. 이 노래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roon의 화양연화 앨범)
퇴근길에 인스타 스토리를 둘러보다 roon의 ep발매 소식을 접했다. 사클을 통해 활동하는 뮤지션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없어 그냥 음색 좋은 뮤지션 정도의 감상에 그쳤던 기억이 났다. 한 번 들어 볼까? 하는 생각에 ep의 모든 곡을 듣기 시작했고 이내 앨범의 마지막 트랙 '캐럿'에서 다음 곡으로 넘기지 못하고 반복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나도 노래를 하기 때문에 감정에 몰입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노래를 들으면서 어떤 마음으로 불러야 이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보았던 영화의 끝 속에 그 사람은 어떻게 해 이젠 알아야 해 난' - Carat
둘은 어떤 영화를 보았을까 궁금증이 머리를 채웠다. 화자는 영화의 결말을 물어보며 자신을 영화 속 주인공에 대입하고 있다. 아니 대입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가사를 읽으며 한 줄 한 줄 쉬이 눈을 뗄 수 없었다.
'조그만 강물 같았던 너의 눈은 바다야 이젠 내게 없었던 걸 화를 내며 나는 찾고 있어'
처음엔 조그만 강물 같았던 너에 대한 마음은 어느샌가 바다처럼 커져 네가 바라는 내가 되기 위해 나에게 없는 내 모습을 찾는 내가 되었다. 단지 내가 너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네 사랑은 족쇄처럼 나를 옭아맨다.
'그 한마디 말이 내겐 너무 무거워지고 하염없이 가벼워진 너의 나는 조금 더 익숙해져'
네가 기대하고 사랑하는 나의 모습은 무거운 족쇄라 나를 더 무겁게 하지만, 그럴수록 네가 보는 나의 모습은 한 없이 가벼운 네가 사랑하는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나는 지독하게도 너를 사랑하는 것 같다.
'넌 나에게 어떤 말을 할까 차가운 만큼 가벼울까 야속하게 우리 둘은 이게 더 편해질까 봐'
너는 내 마음을 몰라서 내가 느끼는 무게를 몰라서 가볍게도 차가운 말을 던지고는 한다. 나에 대한 부담의 표현일까? 그저 너의 삶이 힘든 하루였기 때문에 꺼내는 투정일까? 많은 물음이 머리를 채우지만 너에겐 항상 가벼운 사람인 게 서로에게 좋을까 싶어 입술은 그저 자리를 지킬 뿐이다.
글을 적으며 생각을 정리하자 잊고 있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랑을 한 없이 가볍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치기 어린 생각에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호감이 가는 상대에게 앞뒤 재지 않고 맘을 꺼내기도 했다. 사랑이 가볍지 않다는 걸 깨달았던 건 예상치 못했던 겨울의 어느 날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간 사람에게서 지금까지도 떠올림에 나를 목 매이게 하는 사랑을 느낀 후였다. 짧지 않은 시간 함께 했던 그 사람은 오랜 고민 끝에 꺼냈을 가벼운 말 한마디로 내 마음을 짓이기고는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은 이내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였던 그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그저 원하는 만큼의 가벼운 모습으로 서로를 대해야만 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아문 상처자욱을 통해 옛날을 돌아보며 생각을 이어나갔지만 사랑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1월의 어느 날 'roon'의 'Carat'을 들으며
-maes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