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손->실손
호주머니 털어가는 (실)손을 체포해야
실손보험은 과연 필요한가?
올해도 내년 실손 보험의 보험료인상기사가 올라왔다. 그래서 그에 정확한 안내를 위해 필자는 올해도 실손 보험료가 인상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최근 한 주간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는 뉴스가 ‘실손 보험’과 관련된 기사다. 실손 보험 100만원내고 130만원타갔다는 자극적인 제목부터 76만 명이 1000만 원 이상 수령했다는 기사까지 돌아다니고 있다.
보험에 대한 이해자체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성된 기사들이 난무하고 있다. 만약 알고 썼다면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아프거나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상품에서 제시한 내용대로 보장을 받기 위해서다. 회사가 제시한 보장내용을 만족한다면 가입자는 이에 대한 비용을 보험회사에게 지불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보험료다.
서로 간의 동의와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계약은 보험료가 납부되는 동안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보험료 납부를 하는 가입자가 아프거나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보험금을 청구하고 수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보험료를 수령하는 사람이 잘못한 것처럼. 죄인인 것처럼 공격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들은 무슨 의도로 쓰여진 것일까? 보험금 수령자를 공격하는 것일까? 아니면 회사의 입장을 대변(代辨)하는 것일까?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은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익을 위한 집단이 아니다. 이곳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행복이다. 손실을 감안하는 공기업이 아닌 이상 민간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익’. 쏟아넣은 재화와 시간에 대한 이익이 적거나 없다면 민간회사는 이익을 위해 사업을 접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엘지전자다. 엘지전자가 핸드폰사업에서 철수한 이유는 단 하나다. ‘손실’. 돈의 손실이든. 시간의 손실이든. 역량에 대한 손실이든.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에 아쉬움은 있지만 더 큰 이익을 위해 지금의 ‘손실’을 정리하고 지금 발생하는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미래의 ‘이익’을 선점하기 위한 집중을 위해 핸드폰사업에서 철수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실손 보험은 자동차보험이나 건물화재보험처럼 국가를 위한 의무보험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보험 상품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여러분이 일반적으로 대하는 기사들과 반대되는 이야기여서 혼란스럽겠지만 보험회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유지하는 것이 실손 상품이다. 단언하건대 결코 손해가 아니다. 그렇다면 언론에서 왜 실손 보험의 손실을 뉴스로 다룰까? 실손 보험회사가 엄청난 손실을 보는 것에 대한 가슴 아파서일까? 보험회사 도와주려고? 필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기사를 썼을 때 언론사로 들어올 수 있는 이익. 그 이익을 위해 기사를 가장한 보험회사를 위한 홍보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 이익은 검은 거래가 드러나는 현금이 아니다. 정상적인 기업활동으로 보일 수 있는 영업행위인 광고. 광고다. 보험회사의 광고를 언론사의 광고란에 실어주는 계약을 맺어주는 것이다.
보험 회사는 신상품이 나올 때 광고를 한다. 회사는 어차피 집행해야 할 홍보 관련 예산을 기사 잘 써준 곳으로 집행을 한다. 재벌에 대한 내용이 언론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도 같다. 국민들의 알권리마저도 언론사에 의해 돈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거래의 대상이되는 것이다.
실손 보험을 유지하는 회사가 보험료를 갑자기 올리면 충격으로 인해 해약자가 증가하고 회사의 이익은 감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보험회사는 해약자들로 인한 피해를 감내해야 한다. 회사가 운영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사업을 접으면 될 텐데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바로 이런 기사들을 통해 보험료 인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 놓고 정부 당국과 협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적절한 비율만큼 보험료를 올려 받아 이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익이 언론사에 주는 광고비보다 크기 때문에 언론사의 활동이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의 생각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혼자만의 헛다리 생각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이런 각본에서 보험금을 청구해서 받은 소비자는 가해자(피의자), 청구받은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회사는 피해자, 이들 간의 분쟁이 있거나 이해상충이 발생하면 중개하는 역할은 정부는 중개자라는 프레임을 깔고 가는 기사에서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잘난 보험회사가 망할까 봐 걱정까지 한다. 우리는 이제 곧 보게 될 것이다. 보험회사 편에 서 있으면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부가 소비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척하면서 적절한 인상률을 제안하는 중개자 코스프레를 말이다. 이제는 국민들도 알아야 한다. 보험회사의 보험료 인상안이 확정된다는 것은 정부가 소비자들을 대신해서 협상을 해주는 척하면서 보험회사가 원하는 인상 요구율을 최대한 들어주는 장면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게 관료주의가 오래 지속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우리는 보험회사가 처음 제시한 보험료 인상안보다 낮게 나온 결과를 가지고 정부 당국의 노력에 감사해하며 박수를 보낼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리고는 기꺼이 보험료를 더 낸다.
실손 보험이 적자를 보고 있다는 이런 식의 내용들은 일종의 물고기를 잡기위한 ‘밑밥’이다. 기사라는 밑밥을 미리 던져놔야 보험료라는 물고기(이익)를 얻을 수 있고 시장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 연착륙을 가장해서 만들어진 모든 상황에 소비자는 제대로 –작업을- 당했지만 당하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하는 연출기법이다. 보험회사는 은행과 함께 보수적인 금융회사다. 이익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발을 들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 소비자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리한 경기를 하고 있다. 중립을 지켜야할 심판(정부)마저 상대편(보험회사)에서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습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실손 보험을 계속 유지해야 하겠는가? 불필요한 금융상품으로 인해 가입자의 호주머니에서는 고정적으로 돈이 새나가고 매년 보험료 인상의 정당성을 홍보해주는 이런 기사를 봐야한다는 것은 언론에 의한 ‘그림자 노동’이고 국가적인 낭비다. 차라리 실손 보험료를 내며 보험회사의 이익을 보전해주는 대신에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내용을 확대 개편하고 보험료를 더 걷는 것이 국민들의 이익에는 훨씬 유리하다. 작금의 언론보도는 ‘내년에 실손 보험료를 대폭 인상 할테니 너무 충격 받지 마세요.’를 미리 보기로 보여주는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이 대한민국 기성 언론에서 국민을 대하고 있는 수준이다.
필자는 사람이기에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죽기 전에 글이 먼저 멈출지도 모른다. 보험회사가 보험료를 올릴 때마다 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런 종류의 글을 계속 쓸 것이다. 언제 멈출지는 필자도 모르겠다. 보험회사는 이익이 계속되는 한 유지될 것이고 독자들은 계속 보험에 가입할 것이다. 보험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보험회사가 자신들의 이익보전을 위해 판매하는 상품가격인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언론이 보험회사의 작태를 바르게 전달하지도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지 않으면서 금융시장의 약자인 소비자보다는 보험회사의 이익을 위해 정당성과 근거를 자신들의 논리대로 나열하고 이쁘게 포장한 내용을 기사의 형식을 빌려 보험회사의 홍보기관으로 전락한 것이 안타깝다. 그리고 그것을 보험회사와 타협해서 국민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손실을 담보하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관료조직까지... 금융소비자인 국민의 편에서 논리를 펼치는 스피커가 부족하다는 것이 슬프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보험회사와 언론사, 관료집단까지 이익집단에 속한 무리들의 대동단결된 광의(廣義)의 배임은 알려져야겠기에 부득이하게 불편한 내용을 감히 필자 같은 미천한 사람이 글로 담았다.
보험회사가 실손 보험으로 싸놓은 변(便)이 너무 거대하다. 치우지 않으면 변독(便毒)에 회사를 말아 드실 수도 있을 정도다. 정부 당국은 아무리 끼리끼리라지만 같이 있다가는 독이 옮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