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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동서양의 부(富)가 움직이다

태평양과 대서양보다 작지만 강한 인도양

by 필립일세

동서양의 부(富)를 아우르던 인도양의 교역






소규모로 거래되었던 후추, 울금, 계피, 생강이나 마늘 같은 향신료(香辛料)를 구하려던 노력은 동서의 교류와 무역을 열게 된다. 특유의 맛과 향으로 인해 동양을 대표하는 품목으로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인도에서 아라비아 지역으로 전해진 향신료를 거래하던 상인들은 유럽의 상인들과의 거래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향신료에 신화적인 요소를 만들기도 하였다.






아라비아의 상인들은 인도를 비롯한 남부아시아와 동남아시아와의 교역을 통해 확보하는 향신료를 유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운하가 뚫리기 전까지 수에즈는 향신료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운송되는 육상교통의 요지기도 했다.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중심으로 하던 지중해 무역과 인도와 아라비아, 레반트가 중심이 된 무역량은 계속 증가했다. 시간이 갈수록 비단과 같은 면직물보다는 계피나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였다.






인도양이라는 바닷길을 이용해서 확보한 향신료를 비롯한 금과 보석 같은 귀금속을 비롯해 직물과 비단 같은 품목을 거래하며 중계무역을 통한 이익을 가졌다. 이는 중세까지 이어져서 비옥한 초승지대인 레반트와 베네치아 간의 지중해 무역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이런 흐름은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 북아프리카와 발칸반도, 아나톨리아 반도를 비롯한 아라비아를 지역을 차지하는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 무역을 끊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이런 방해는 훗날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포: Vasco da Gama)가 희망봉을 지나 인도양으로 향하는 항로를 개척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1498년)-






중국과 동남아, 인도에서 가져온 교역품을 페니키아와 아라비아, 인도와 유대인들은 인도양, 홍해와 나일 강을 거쳐 알렉산드리아에 이르도록 무역로를 확보했다. 인도양의 계절풍은 인도네시아에서 동아프리카로 가는 뱃길이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이 길을 통해 계피와 후추가 주로 거래되었다. 인도양에서 이루어지던 무역은 아라비아의 여러 부족들이 풍요로워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바다에 접해있던 남부 아라비아에서 살던 아라비아 부족은 무역과 상업에 종사하며 많은 부러움을 샀다. 이들을 부러워하던 그리스인들과 유럽을 제패한 로마를 배경으로 로마의 상인들도 대외무역에 나섰다. 인도양 무역을 지배하던 아라비아인과 인도인들에게 바람을 이용해 항해하는 법을 익혀 해상무역에 참여한다. 홍해를 오가는 무역을 활발하게 진행하던 아프리카의 해상 강국 악숨 왕국은 아라비아 반도 남부를 점령하며 중흥기를 이어갔다.






유럽인들은 이들에게 아라비아해에서 계절풍을 이용해 항해하는 방법을 배워 인도양 무역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듯 인도양을 중심으로 하는 무역은 동양만의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문명들이 교류하는 공간이었다. 덕분에 인도양에서의 무역은 동양과 서양으로 진출하는 관문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주로 활동하기는 했지만 다른 문명권도 바다를 통한 무역활동이 가능했다. 이런 환경을 만든 결정적인 요인은 인도양이 어떤 특정 세력에 의해 좌우되지도 않아 다양한 경로를 타고 무역이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

시간은 향신료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효과를 낳았다. 인도의 영향으로 향신료를 사용하던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을 비롯해 보르네오까지 향신료를 재배하기에 이른다. 아라비아와 인도의 상인들의 유럽에서 향신료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자 이들 지역에서 재배되는 향신료까지 사들여 유럽과의 교역으로 많은 이익을 남기게 된다. 인도양은 동아프리카의 상아를 비롯한 귀금속과 아라비아의 유향,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향신료, 중국의 비단과 직물이 거래되었다.






인도양에서 이루어지던 힘의 균형은 앞서 언급한 대로 오스만이 정복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1453년 비잔틴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오스만이 새로운 제국으로 올라서면서 당시의 유일한 향신료 무역로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통제되었다. 문제는 오스만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가는 물품에 대한 과중한 세금이 매겨지면서 시작되었다. 오스만에서 매겨진 과중한 세금은 유럽에서 판매되는 향신료를 비롯한 여러 물품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판매되는 물품의 가격이 오르자 유럽의 상인들은 이교도인 이슬람을 거치지 않고 무역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노력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었다. 항로 개척에 앞장선 이들은 서양의 여러 국가들로 잉여가 많던 동양의 상인들이 서양으로 진출하기보다 결핍이 많던 서양이 자신들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동양으로 진출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로 인해 포르투갈, 네덜란드, 잉글랜드, 프랑스 등 유럽의 해상 강국들이 아프리카를 지나 동양으로 진출하게 되다. 이들은 동양에서 확보한 여러 품목을 현지 간의 거래를 통한 이익도 거두었지만 유럽에서 필요로 하는 향신료 같은 특산품을 유럽에 가져다 팔면서 많은 이익을 남기게 된다. 유럽 국가들의 이런 활동은 더 많은 이익을 가지기 위해 동양의 식민지화를 시작하는 시발이 되었고 인도양에서 거래되던 막대한 부(富)가 서양으로 흘러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 오랜 시간 계속되면서 궁핍했던 서양은 조금씩 풍요로워졌고 오늘날 유럽의 대부분이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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