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에서 비중감 있는 강남의 풍요
중국 왕조의 흥망성쇠는 강남이 쥐고 있었다.
중국 역사에서 알 수 있는 강남의 풍요
중국의 흑묘백묘론을 내세웠던 덩샤요핑(鄧小平)은 1978년 12월 18일 공산당 11기 중앙위원회 3차 회의에서 중국의 개혁 개방을 천명한 이후 내부의 체제개혁과 대외의 개방정책을 이끌었다. 이로 인한 중국의 경제성장은 눈부셨다. 여러 경제특구를 통해서 가져온 과실은 중국을 살찌웠다. 이런 중국의 경제발전을 대내외로 선전하기 위한 상징으로 자리를 잡은 대표적인 곳이 상하이(상해, 上海)다. 상하이는 청(淸) 말기에 열강의 침략이 있던 시절부터 홍콩과 더불어 중국의 진주로 불리던 곳이자 오늘날 강남을 넘어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을 했다.
중국의 역사 속에서는 양쯔강 유역을 기준으로 화북경제권과 강남경제권이 나뉜다. 중국 역사 군웅할거의 주요무대가 화북지방에 집중되다 보니 주목받지 못했을 뿐 수나라로 통일되기 전까지 강남지역에서도 왕조가 계속 이어지면서 양쯔강 유역 이남의 개발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지금까지는 금(金)에 밀린 송(宋)이 강남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고 알려졌지만 현실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강남의 경제력은 송 이전에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있었다. 그에 대한 반증이 통일왕조 중의 하나인 수(隋)다.
수는 고구려를 정복하려다가 실패해 짧게 유지되고 망한 중국의 왕조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수는 400여 년간 고착화되어있던 혼란스러웠던 위진남북조시대를 끝내고 세워졌지만 안정을 찾기보다 동북아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더 큰 과욕이 있었다. 이를 위해 동북아의 또 다른 강자였던 고구려와의 전쟁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국력을 과도하게 소모했다.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물자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화북의 물자로만은 턱없이 부족하자 풍요로운 강남으로 눈을 돌렸다. 수는 육로로 강남의 물자를 가져오는데 비용과 시간의 소모가 많은 것을 알고 이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엄청남 계획을 세운다. 바로 운하다. 현대의 기술로도 어려운 것을 당시의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엄청난 인원이 동원(약 1억 5천만 명으로 추정)되어 남북으로 약 2700km의 길이의 물길을 약 8년 만에 만들어낸다.
그 외에도 다른 토목사업이 동시다발로 진행되었는데 동원된 백성들의 원망으로 돌아선 민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고구려와의 전쟁을 위한 물자를 준비하기 위해 시작된 중국의 운하는 결국 수의 생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경제의 중심이었던 여항(항저우)에서 시작된 운하는 정치의 중심 중 하나였었던 낙양(뤄양)을 거쳐 북방군사의 중심이던 탁군(베이징)까지 이어진다. 운하로 강남의 풍요가 화북까지 이어져 전쟁준비는 마쳤지만 자만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패배는 당연했다. 짧았지만 강하고 단순했던 ‘수’ 덕분에 이후에 들어선 왕조들은 운하를 잘 이용하여 긴 기간 대륙을 통치할 수 있었다.
중국 왕조들은 이후에도 운하를 이용해 장안과 낙양이 있는 화북으로 강남의 풍요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런 경제적인 풍요가 전달되었기에 화북이 정치적으로 힘을 가지고 대륙을 통치할 수 있었다. 중국의 정치에서 운하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 바로 송송(宋)과 금(金)이다.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대로 화북을 점령한 금(金)에게는 운하가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강남을 차지한 남송이 강남의 풍요를 오로지 한 것이다. 덕분에 강남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강남의 풍부한 물자를 화북으로 가져오지 못한 금은 얼마 뒤에 일어난 몽골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반면 남송(南宋)은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몽골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물론 지리적인 영향도 있었겠지만 몽골의 매서운 공격에도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오랜 세월 축적되어있던 강남의 풍요가 일조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결국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왕조나 나라는 유지가 어렵다.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강남의 풍요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초(楚)와 월(越)은 땅이 넓고 사람은 적다. 쌀을 주로 먹으며 물고기로 국이나 탕을 끓여 먹는다. 과일과 어패류는 자급자족할 정도이며 땅의 성질이 좋아 식물이 풍성하게 자리기 때문에 기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강남은 천금의 부(富)를 쌓은 부호는 없으나 굶는 사람 또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