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신용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유럽의 오지

세계의 격오지 국가에서 세계최고의 북국으로 우뚝 선 스위스

by 필립일세

사람과 신용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유럽의 오지






유럽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알프스는 우리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럽의 최고봉이다. 온라인 검색을 통해 사진이나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알프스의 만년설은 가보지않아도 그곳의 기후를 알 수 있다. 녹지 않고 보존되는 빙하와 눈을 통해 그곳의 추위를 상상할 수 있다.






천혜의 요새이면서도 지금부터 150여 년 전까지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알프스에는 만년설이 늘 쌓여 있어 한여름에도 냉해가 심해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혹독한 기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추위가 일 년의 반이나 되었기에 농사를 짓고 사람이 살기에 척박한 환경이었다. 전 국토가 알프스 산맥에 빙 둘러싸여 있는 고립된 분지였다. 이런 환경은 외부의 침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하나의 세력을 이루어 성장하기에도 어려움을 주는 제약조건이었다.






훗날 혼인으로 유럽을 한때 장악했던 합스부르크마저 원류가 스위스였음에도 오스트리아를 차지한 뒤에는 스위스보다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관리에 집중한 계기기도하다. 스위스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스위스에 대해 통제와 억압으로 일관하자 스위스에 대한 영향력이 느슨해진 틈을 타 1273년에 스위스에서 슈비츠를 비롯한 4개 주(州)가 오스트리아의 탄압으로부터 공동 대응하기로 동맹을 맺고 후에 있을 오스트리아의 공격에 대비를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와 주변을 안정시킨 합스부르크가문의 오스트리아 왕 레오폴트 1세는 군대를 모아 스위스를 침공하기에 이른다. 슈비츠를 중심으로 뭉친 동맹군세력을 진압하려고 스위스를 들어온 이후 대항하는 세력이 없자 방심하고 있던 레오폴트 1세에게 동맹군의 기습(1315년 11월 15일)은 치명적이었다. 이를 모르가르텐 전투라고 부른다. 후퇴한 이후 1318년 휴전을 맺으면서 스위스는 정치적인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전투에서 승리하자 오스트리아에 맞섰던 동맹은 브루넨 협정(1315.12.09.)을 맺고 동맹의 성격과 유대관계를 더욱 강화시킨다.






살다보니 허기를 채워야했고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지 않자 돈을 벌기위해 용병을 수출하기로 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어지럽게 얽힌 혼인관계와 상속으로 갈라진 땅이 많아 다툼이 많았다. 땅이 돈이던 시절 영지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끊이질 않았고 영주(귀족 포함)들은 자국민이 부족할 때는 자신을 위해 싸워줄 용병을 구했다. 전쟁은 혼란이었지만 스위스 인에게 전쟁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였다. 스위스 남성들은 다른 국가들이 전쟁을 할 때 무리를 짓거나 개인적으로 용병이 되었다. 그리고 급여를 본국의 가족들에게 보내 생활하게 했다.






1527년 5월 6일 교황청을 공격한 이탈리아군 마주친 것은 스위스 용병이었다. 교황청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웠던 스위스 용병 147명이 전사한다. 1798년 유럽을 뒤흔든 프랑스혁명에서 루이 16세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던 600명의 병력도 스위스 용병이었다.






이후 스위스 의 용병은 용맹함을 넘어 신뢰의 상징이 되어있다. 오늘날 로마 교황청에서 교황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이탈리아가 아닌 스위스 용병이다. 이는 교황청의 600년 된 전통이 되어버렸다. 19세기 초까지 이어진 용병수출은 스위스가 성장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가톨릭의 타락으로 구교와 신교의 종교분쟁이 심했던 16세기 위그노들이 박해를 피해 스위스에 정착한다. 이들 중에 시계를 만드는 기술자들이 있었는데 스위스인들은 이들에게 시계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형제, 아들, 아버지 목숨을 대신할 시계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계를 가지고 산악지대를 넘어 도이치,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주변나라와 북유럽과 섬나라 잉글랜드까지 가져가 팔았다. 부가가치가 높다보니 돈을 벌 수 있었다. 스위스시계에 대한 우수성이 알려지자 스위스시계를 사려는 주문이 늘어나고 이내 큰돈을 버는 산업이 되었다. 이후 스위스의 자연환경으로 인해 구해기 쉬웠던 약초를 활용한 제약 산업까지 성장하면서 스위스는 남성으로 태어나 성인이 되면 용병이 되어야했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자본력을 확보한 스위스는 이후 취리히 공대를 비롯한 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금융업에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스위스은행을 보유하게 된다. 영세중립국이라는 정치적 안정을 확보했다. 결핍에서 포기하지 않은 스위스는 국가경쟁력을 포함해서 1인당 소득 87,950달러(통계청, 2019년 기준)로 전 세계 5위 안에 드는 부국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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