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가 모이는 곳에 있는 부의 기회

물자가 지나가는 곳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by 필립일세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부의 분배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유럽을 정복하려고 전쟁을 일으키지만 둘 다 실패하고 몰락한다. 원인도 비슷한데 영국이라는 적을 놔둔 상태에서 러시아라는 새로운 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전선을 두 곳에 두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력이 분산되면서 효율적인 군수물자배분이 어려워졌다. 이후로 전쟁을 치루면서 같은 기간에 전선을 두 곳에 두는 것을 금기로 여겨지고 있다.






러시아에게는 강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혹한이다. 매서운 겨울추위가 있던 러시아는 강한 적을 상대로 싸우지 않았다. 땅이 넓어 도망갈 곳이 많았던 러시아는 상대가 지치도록 피해 다니며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전술을 사용했다.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던 러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전술이었다. 그래서 러시아와 전쟁을 치룰 때는 혹한의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끝내야했다. 그런 러시아도 무릎 꿇린 나라가 있었다. 바로 몽골이다.






러시아라는 나라가 있기 전 키예프와 모스크바를 비롯해 여러 공국으로 이루어져 있던 이들은 몽골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며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키예프공국에서 세력을 키워 독립했던 여러 공국들 중에서 막내였던 모스크바 공국의 힘은 별 볼 일 없었다. 그렇다보니 몽골과의 전쟁에서도 기여도가 낮았다. 당시 온 세상을 전장으로 만들어 아시아와 유럽을 휩쓴 몽골은 키예프를 중심으로 모였던 이들 슬라브 공국들의 저항을 이겨내고 이들을 지배하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몽골은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항복을 받아주었다. 조공은 공국의 여력에 따라 규모를 나눴다. 몽골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공국들의 조공을 모아서 받았는데 이때 여러 곳에서 보낸 조공들이 모였던 집산지가 바로 모스크바공국이다.






너무나도 추웠던 탓에 모스크바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여러 지역의 조공들이 모이면서 이를 운반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사람들의 왕래도 잦아졌다. 그러면서 조공을 비롯한 물자가 많이 모이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도시가 성장할 수 있었다. 다른 공국들은 몽골에게 패한 이후 가혹한 조건의 조공을 바쳐야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사람이 모이고 물자가 모이던 모스크바는 점점 활기를 띠었다. 이는 새로운 거래가 만들어지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유목민족이던 몽골의 특성상 가장 멀리 있는 땅은 장남의 차지였다. 몽골은 추워서 갈 수 없던 시베리아를 제외하고 말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전부 정복했다. 칭기즈칸의 장남이었던 주치는 가장 멀리 있던 중앙아시아와 키예프를 비롯한 동유럽일대를 차지하고 ‘주치인 울르스(이하 킵차크 칸국)’를 세운다. 그리고 아버지의 못다 한 유럽정복을 위해 흑해연안을 점령하는 등 한동안 지역의 강자로 군림했다. 몽골세력이 커지고 강할수록 모스크바 역시 이들의 지배에 가장 큰 혜택을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이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하던 모스크바는 킵차크 칸국의 세력이 약해지자 그동안 키운 힘으로 독립을 하게 된다. 가장 강력했던 키예프의 주도가 아닌 가장 약했던 모스크바의 주도로 말이다. 키예프는 제 몸마저 가눌 수 없었다.






하찮은 시골이던 모스크바에서 알 수 있듯이 생산도 중요하지만 결국 물자가 모이고 사람이 모여들어야 성장할 수 있다. 조공의 집산지라는 모습을 띠기는 했지만 모스크바는 이로 인해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갖춰지자 러시아라는 오늘날의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 물자가 지나쳐가는 곳이 아닌 물자가 모였다가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거래가 발생하고 부(富)가 움직이며 사람이 모여 성장한다. 일본과 해저터널문제에 망설이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답을 주는 역사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터널이 뚫리는 순간 부산은 물자가 머무는 곳이 아닌 스쳐 지나는 곳이 된다. 모스크바는 역사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받아 오늘날의 러시아로 발전했다. 해저터널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자칫 몰지각한 사고로 나중에라도 해저터널이 진행된다면 키예프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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