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제국의 전성기와 부를 삼켜버린 타지마할
세계 곳곳에는 역사와 시대를 대변하는 건축물이 많다. 그중에는 ‘피라미드’, ‘진시황릉’처럼 지배자의 시신을 안치한 건축물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왕조의 무덤들이 있지만 규모의 웅장함을 다룰 뿐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에 반해 무굴제국(Mughal Empire, 이하 무굴)의 다섯 번째 황제인 샤자한이 죽은 황후를 안치하기 위해 만들었던 ‘타지마할(Taj Mahal)’은 오늘날 전 세계의 관광객이 그 자태를 확인하기 위해 ‘아그라(Agra)’로 모이도록 만들었다.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연신 탄성을 자아내었고 자신이 들고 온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쌓이는 명성은 높아져갔다.
타지마할은 오늘날 단순한 무덤이 아닌 인류가 만들어낸 예술작품으로 손꼽히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등록(252)되어 관리되고 있다. 인류가 만든 건축물 중에서 가장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었다고 알려진 타지마할은 나중에 묻힌 샤 자한(Shah Jahan)의 관을 제외하고 건축물의 주인공인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의 관을 중심으로 모든 거리와 길이, 넓이가 좌우대칭 되어있는 궁전 형식의 묘지건축물이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지다 보니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해의 높이와 하루의 시간마다 달라지는 빛의 위치에 따라 색도 달라진다.
샤 자한은 무굴 제국 외에도 주변의 이란부터 터키를 포함한 아라비아지역을 넘어 이탈리아, 프랑스에 있던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와 기술자를 불러 모았다. 그 외에도 무굴과 세계각지에서 불러 모은 장인과 기능공의 수가 약 2만여 명이 동원되었다고 전해진다. 22년간 지속된 대공사로 인해 작품은 완성되었지만 많은 백성들이 떠안았어야할 막대한 재정적인 부담도 상당했다. 이런 환경은 샤 자한의 치세 말기에 성인으로 성장한 아들‘아우랑제브(Aurangzeb)’가 아비를 몰아내고 집권을 시도하는데도 샤자한을 옹호하는 저항세력이 하나도 없게 만드는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폭군도 아닌 성군으로 추앙받는 그가 활용도 낮은 건축물이 낭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황후의 죽음을 슬퍼하며 기리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샤자한이 드넓은 무굴을 다스리는데 집중할 수 있었던 원인 중에 하나는 황후였던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의 역할이 컸다. 그녀는 결혼 후 19년간 8남 6녀를 낳았는데 그중에는 아우랑제브도 있었다. 마지막 출산 후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38세의 나이에 사망한 황후는 황제가 가는 곳이라면 주변의 만류도 무시하고 동행했다. 그곳이 전쟁터거나 오지여도 황제를 따라다니며 보필했다. 문제는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주는 공허함이었다. 샤자한의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무굴은 전성기가 이어지면서 정복한 영토를 통해 막대한 인구를 지배하였다. 이를 통해 거둬들인 정복지역의 부(富)와 조세로 무굴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면서 막대한 부(富)를 가진 세계최고의 부(富)국으로 성장했다. 그 막대한 부를 황후를 잃은 슬픔이 컸던 나머지 제국이 가진 부(富)를 황후만을 기리는데 사용한 것이다.
세계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상황은 지배층보다는 피지배층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조세의 대부분을 담당하던 대부분의 백성들이 불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당연하다. 샤 자한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기 위해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무덤건축에 사용할 자재와 장식에 사용할 귀금속을 들여왔다. 여기에 사용한 비용은 전부 당시의 피지배층이었던 무굴백성들의 몫이었다. 샤자한이 중간에 사망했다면 중단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무굴을 다스린 기간은 30여 년이 넘었다.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황후의 무덤을 만드는데 소요된 22년 이상을 황제로 있으면서 타지마할이 완공되는 것마저 보고야말았던 황제덕분에 많은 백성들은 고통을 누려야했다. 다행히 쿠데타를 일으킨 아우랑제브가 무굴을 안정적으로 다스리며 정복지를 더욱 확대하였고 제국은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타지마할로 인한 불만이 더 이상 확대되지는 않고 잦아들었다.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비효율적인 건축물을 만들었던 무굴의 그 부유함은 훗날 광활한 지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반란과 동인도회사의 침탈이 이어지면서 소국들에 대한 통치력이 줄어들게 된다. 이로 인해 제국의 영향력은 점점 축소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무굴에 진출한 잉글랜드 동인도회사의 규모와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무굴의 영향력은 줄어 명맥만 유지하다가 세포이의 반란으로 기회를 잡은 동인도회사와 잉글랜드 정부는 무굴을 멸망시키고 인도제국을 성립시키면서 잉글랜드국왕이 직접통치를 하게 된다.